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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우린 오늘 결혼하지만, 내일 혼인신고를 거절 당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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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화환과 축가, 하객과 드레스. 여느 결혼식과 똑같습니다. 신부가 둘이라는 점은 조금 생경해 보일 수 있지만, 하객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신부가 결혼서약서를 읽습니다.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 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안 되겠지."

지난 10일, 김규진 씨가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날 결혼식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결혼 축하'가 상위 검색어로 올랐습니다.

결혼식 이틀 전 KBS '뉴스9'도 <우리 시대의 '新가족'…동성 부부·간헐적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규진 씨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방송에서는 차마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달 두 차례 진행한 사전 인터뷰와 대면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연관기사]
동성혼·간헐적 가족…혈연 넘어선 새로운 가족 공동체
가족인데 장례도 못 지낸다…곳곳에 남은 차별


■ 결혼은 하지만 혼인신고는 거부당하는, 우리 시대의 '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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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셨는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은 응원했고, 가족들은 우려가 컸어요. 저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오픈했지만 와이프는 아니기 때문에요. 좋지 않은 댓글이 많이 달려서 걱정했어요. 또, 좀 더 제가 하는 말들의 파급력이나 좋은 영향력에 대해 생각을 하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사람들에게 편견을 줄 수 있을까 봐서요."

―적극적으로 본인을 알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당장 저처럼 동성애자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니까요. 일반 시민사회에는 법적으로 보장받지 않은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는 일반 시민이고, 자기 실명을 걸고 의견을 내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2등 시민' 아닌,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동성결혼은 불법이 아닙니다. 다만 아직 법제화돼 있지 않습니다. 관련 법률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규진 씨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혼인 신고를 마쳤습니다.

―혼인 신고를 위해 미국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현재 28개 나라에서 동성혼이 가능하지만, 외국인이 영주권이나 거주를 하지 않고 결혼할 수 있는 나라는 정말 몇 개 되지 않거든요. 미국은 언어적 장벽이 없고 거리 문제도 없었고, 여행자 신분에서 24시간 안에 가능한 것도 장점이었어요. 또 도시 자체가 굉장히 동성애자들에게 친절해서, 동성혼을 위해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질의응답을 정리해 둔 게시글이 뉴욕시 홈페이지에 있을 정도였어요."

―뉴욕에서 혼인 신고를 했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굳이 뉴욕까지 가신 이유는요?

"첫째는 일종의 의식이었어요. 둘째는 미국 내에서는 인정되는 결혼이니, 둘 중 한 명이 이민을 가게 된다면 나머지 한 명을 배우자로 초대하기가 쉬워져요. 셋째는 서류 하나라도 남길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 일본에서 동성 간 사실혼을 인정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배경 중 하나가 미국에서 혼인한 기록이었어요. 행정 기관은 늘 증명하길 요구하니까요."

―누군가는 '같이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되지 왜 굳이 법적인 보장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법·제도적인 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010년 초반에 오래 동거하던 할머니들이 서로 보호자·반려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카가 유산을 탈취한 사건이 있었어요. 나머지 한 분 할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고요. 저의 경우, 이미 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이미 6, 7년 전부터 제가 레즈비언인 걸 다 알고 계셨고, 아버지는 '대만도 동성결혼이 법제화됐는데 이상할 것이 없다'고 얘기를 하세요.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제도 안에 가능하면 들어가고 싶어요.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고, 제도 안에 들어가야만 보장되는 것들이 있고.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느끼는 주거 문제에서 신혼부부 특별청약 같은 건 전혀 넣을 수가 없어요. 대출을 받게 돼도 신혼부부 합산 소득이 인정되지 않으니까 이런 제도를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거죠. 또 둘 중 한 명이 아프면 수술을 할 때 제가 보호자로서 사인해 줄 수가 없어요. 사인은 동의를 의미하죠. 둘만이 온전히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모나 형제를 끌어들여서 보장받아야 하는 거에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2등 시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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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이니까 보통의 결혼식을 하는 거예요"

―그 때문일까요? 서로 간의 의무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것 같습니다.

"네. 살아 있는 동안 서로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최근 정부에서도 장려하는 성년후견제 일부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어요. 수술 시 동의를 후견인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법정에서 다퉈볼 만한 이슈라고 하더라고요. 또 부부가 지니는 경제 공동체로서의 이점을 위해서 아내와 공동대표인 법인을 세워 보험 수익자를 법인으로 돌리는 방법을 조언받았어요. 가장 큰 걸림돌은 상속인데, 아무래도 한국에선 상속 순위가 가장 중요하고, 유류분도 피할 수가 없겠죠."

―최근에는 회사에 결혼휴가를 신청하고 결재까지 났는데요, 의미가 작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회사를 고르고 골라 찾아온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공식화된 복지혜택을 받는 건 또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이 안건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하고 혹시나 기사화됐을 때 '우리는 괜찮다'라는 판단을 회사에서도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회사라는 '기관'에서 받은 거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 사람도 세금을 내는 일원이고 회사에서도 괜찮다고 하는데, 공공기관에서도 해야 하지 않을까' 검토하게 될 거고요. 이런 사례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그리고 정부에서 우리를 알아주고 제도를 마련할 거로 생각합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 시대 '新 가족'들에게 아주 보통의 결혼식은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규진 씨는 결혼식 다음 날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일단 계획을 접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난처해지는 상황과, 거절됐을 때 받을 상처를 우려했다고 합니다.

가족의 의미는 변화하고 있고,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규진 씨가 청첩장을 돌리는 날 한 대학 친구가 전한 말로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해요. 다른 분들은 왜 굳이 이렇게 보통의 결혼식을 하려고 하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보통의 사람이니까 보통의 결혼식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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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슬 기자 (moon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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