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실수 두려워 마” 88세 디자인 거장, 테렌스 콘란 경의 조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테렌스 콘란 경 인터뷰

영국 모던 디자인 창시자

“열의 넘쳤던 한국 학생들 기억”

“즐기면서 디자인 하라” 조언도

지난 15일 국내 처음 문을 연 롯데백화점 강남점의 ‘더 콘란샵(The Conran Shop)’이 화제다. 더 콘란샵은 1974년 영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테렌스 콘란(Terence Orby Conran)’ 경에 의해 설립됐다. 올해 88세를 맞는 콘란 경은 1983년 영국 디자인을 혁신한 공로로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그가 ‘콘란 경(sir)’으로 불리는 이유다. 영국 모던 디자인의 창시자이자 영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꾼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더 콘란샵 서울 오픈을 맞아 콘란 경을 서면 인터뷰했다.

중앙일보

올해 88세의 디자인 거장, 테렌스 콘란 경은 1950년대 이후 영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꾼 인물로 거론된다. [사진 더 콘란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왜 영국은 회색빛일까”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아트스쿨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한 젊은 디자이너에게 1950년대 영국의 풍경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를 여행하며 심플하고 멋스러운 음식,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주방용품 등을 본 그는 영국에도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953년 문을 연 콘란 경의 첫 번째 레스토랑 ‘더 수프 키친(The Soup Kitchen)’은 프랑스식 빵과 치즈, 에스프레소 커피 등을 파는 이국적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1956부터 콘란 디자인 그룹을 시작했고 이후 많은 상점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1964년에는 가구 브랜드 ‘해비타트’를 만들었다. 당시 해비타트에서 만든 ‘듀베(duvet·이불 커버)’와 ‘치킨 브릭(닭을 넣고 식탁에 올리는 조리 도구)’은 영국인들의 집 안 풍경을 바꾼 기념비적인 아이템이 됐다.

중앙일보

콘란 경이 설립한 가구 브랜드 '해비타트'의 대표적인 히트작, 치킨 브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콘란 경은 자신의 디자인을 비범하지 않다고 여긴다. 콘란 경은 “나는 한 번도 획기적이거나 패셔너블한 것을 디자인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디자인 작품을 묻는 말에 단순한 디자인의 나무 테이블인 ‘비블리오테크 테이블’을 꼽았다. 콘란 경은 “있는 그대로 단순하면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것이 나의 디자인 철학”이라며 “시골집에서 가족 모임을 할 때마다 그 테이블을 사용한다”고 했다. 가장 자랑스러운 디자인 작업으로도 꾸밈없는 흰색 티 컵을 고른다. 콘란 경은 “아름다운 유기적 형태를 지닌 캐스퍼 디너 웨어 티 컵은 단순하면서도 편안하다”고 했다.

중앙일보

콘란 경이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디자인 작품으로 꼽는 '비블리오테크 테이블.' 단순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콘란 경의 취향은 1973년 런던 첼시에 처음 문을 연 더 콘랍샵에 반영됐다. 콘란 경은 “해비타트보다 젊은 세대가 쇼핑할 수 있는 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더 콘란샵에는 보다 창의적이고 대담하며 현대적인 물건들이 진열됐다”고 했다. 이름난 거장의 작품들부터 재능 있는 젊은 디자이너의 제품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그러면서 그는 ‘콘란 아이(Conran Eye)’를 강조했다. 유용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을 골라내는 콘란만의 심미안이다. 콘란 경은 “최근 런던에 있는 패션&텍스타일 뮤지엄에서 1950년대의 더 콘란샵 제품을 봤다”며 “상당히 거칠지만 그런데도 아주 ‘콘란스러운’ 제품들이 많았다”고 했다.

여러 디자이너의 제품을 한 번에 보여주는 셀렉숍인 더 콘랍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콘란스러움’이다. 콘란 경은 좋은 제품을 고르는 방법을 묻는 말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무엇보다 처음 봤을 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대답했다.

중앙일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강남점 '더 콘란샵' 전경. 정면에 콘란 블루 컬러로 마감된 벽면이 보인다. [사진 롯데쇼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 더 콘란샵 오픈을 앞두고 콘란 경은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런던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의 학장이었을 때 열의 넘쳤던 한국 학생들을 기억한다”며 “한국의 디자인 산업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령으로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한국에 방문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중앙일보

더 콘란샵 서울 스토어. 전 세계 더 콘란샵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 롯데쇼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콘란 경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든 즐겁게, 즐기면서 할 것,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며 “어떤 성공한 디자이너도 자신의 경력 한 부분에선 반드시 실수를 한다”고 했다. 이어 “실수에서 배우고, 그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라”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믿는다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콘란 경은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공예를 배우라"고 조언했다. [사진 더 콘란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모든 방향에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콘란 경은 “디자인 페어나 박물관, 전시, 갤러리에 방문하고 책과 잡지를 읽고 좋은 기사를 클리핑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마음속에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디자인 스크랩북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좋은 디자인은 돈을 받을 가치가 있다”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일을 따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중앙일보

더 콘란샵 서울 2층에는 콘란 경의 서재를 모티브로 한 별도의 룸이 있다. 평소 콘란 경이 즐기는 위스키와 시가 등이 함께 놓여있다. [사진 롯데쇼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88세의 콘란 경은 요즘 느리게 사는 삶을 만끽 중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매우 조용한 보폭의 삶’이다. 그런데도 그의 디자인에 대한 야심과 열정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콘란 경은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대여섯 개는 있었으면 한다”며 “물론 누군가 나를 대신해 마무리 지어줄 사람이 있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더 콘란샵 서울 스토어 오픈을 기념해 영국 하이엔드 스피커 브랜드 'KEF'와 콘란 경이 함께 작업한 'LSX 사운드웨이드 에디션.'



평생 즐기면서 디자인을 할 수 있어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디자인 거장은 최근에도 디자인 작품을 공개했다. 서울의 더 콘란샵 오픈을 기념해 영국의 하이엔드 스피커 브랜드 ‘KEF’와 함께 작업한 LSX 사운드웨이브 에디션이 그것이다. 마치 물이 흐르듯 유려한 곡선으로 음파의 생동감을 재현한 이 스피커 측면부에는 젊은 시절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한 콘란 경의 직물 패턴이 담겨있다. 콘란 경은 “런던 배터시에 있는 내 아파트에 앉아 템스 강을 바라보다가 잔물결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며 “방 안을 가로질러 흐르는 소리의 파도를 상상했고, LSX 사운드웨이브의 패턴에 이것을 새겼다”고 디자인 스토리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LSX는 조용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귀를 잡아끌 것”이라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