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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닫힌 듯 열린… 문학관 꿈꾸는 중정 많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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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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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두동면에 낮게 자리한 ‘닫힌 집 열린 집’은 외부에서 보면 내부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길이가 40m로 긴 직사각형의 집의 서쪽에는 벙커를 연상시키는 18m 상당의 벽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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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적인 공간일까, 공적인 공간일까. 지난 9월 울산 울주군의 나지막한 산 아래에 들어선 견고한 콘크리트 주택 ‘닫힌 집 열린 집’은 공과 사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영역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으려는 곳이다. 울산 도심에서 평생 약국을 운영해온 유태일(69)ㆍ조순옥(65)씨 부부가 노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 위해 지은 사적인 집인 동시에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공적인 문학관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농막 하나 짓고 소박하게 밭을 일구면서 노후를 보낼까 했어요.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다 보니 ‘무엇을 남기고 갈까’라는 생각에 이르더군요. 나를 위한 집도 좋지만 아무나 와서 즐기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집 하나 남겨두고 가는 것도 좋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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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m의 긴 벽이 마주보는 외부공간은 집일 때는 파티공간으로, 문학관일 때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닫힌 외부 공간을 구성하는 벽은 안과 밖에서 빛의 변화와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면이 거친 콘크리트를 썼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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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으로 쓰일 집

건축주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지금도 시와 수필을 즐겨 쓰고, 올해 경북 경주시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수필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타기도 했다. 7년 전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문학그룹 ‘일광(日光)’을 만들어 함께 활동한다. 유씨는 “이 나이쯤 되니깐 살아오면서 뒤엉켜 있던 일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글로 쓰면서 그런 마음들이 조금씩 풀려나갔다”며 “개인적으로는 글을 쓸 공간, 좀더 넓게는 문인들과 교류할 문학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문학관으로도 쓸 수 있는 집을 지어달라’는 흔치 않은 건축주의 요구에 설계를 맡은 정웅식(온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는 집과 문학관의 공간적 공통점을 찾는 데서 작업을 시작했다. 정 소장은 “기능적으로는 집과 문학관의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집은 자연과, 문학관은 인간과 소통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유동적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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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집 열린 집’의 콘크리트 표면의 질감에도 표정이 담겨 있다. OSB합판을 이용해 짚이나 나무껍질이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을 냈고, 또 다른 면에는 콘크리트 표면을 정으로 쪼아 거친 흙과 같은 질감을 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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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집은 산 아래 760㎡(약 230평) 부지에 긴 직사각형 단층집으로 지어졌다. 길이 40m, 높이 4m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친 집은 창 하나 없이 폐쇄적이다. 시내 아파트에서 시골 집으로 주거를 옮기는 부부가 느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정 소장은 “아무래도 시골은 밤에 무섭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철저하게 닫힌 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동쪽과 남쪽이 산으로 가로막혀 서쪽으로 집을 두고, 서쪽은 벽을 쌓지 않고 텄다. 18m의 두 개의 긴 콘크리트 벽이 이어져 있어 보고 싶은 풍경을 잘라낸 듯 확보하고, 외부시선은 막아준다.

집의 반전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실내는 151.75㎡(46평)이지만 방은 딱 한 칸이다. 안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의 구획을 없앴다. 안방의 문 하나만 제거하면 모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셈이다. 심지어 기둥이나 벽체도 없다. 거실과 주방, 서재 등이 경계 없이 연결돼 있다. 다만 중간에 폴딩도어(접이식 문)를 설치해 언제든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정 소장은 “기둥과 벽체를 없애고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천장 높이를 각각 달리해 역보(지붕을 받치는 ‘보’를 구조물 안으로 넣는 형태)를 만들었다”며 “용도에 따라 공간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으로 쓸 때는 TV를 두는 곳이 거실, 책꽂이를 두는 곳이 서재, 싱크대가 있는 곳이 부엌이지만, 향후 문학관으로 쓰일 때는 가재도구와 가전제품 등을 다 걷어내고 문화공간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부부는 “아파트에 살 때는 공간마다 주어진 용도가 있으니, 거기에 맞춰서 살았는데, 정해진 용도가 없으니 ‘뭘 할까’ 하는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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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집 열린 집’의 중앙에 있는 중정을 중심으로 놓여진 다섯 개의 중정은 집안 어디서나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빛과 그림자가 중첩되면서 시시각각 공간은 달라진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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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방울처럼 놓여진 중정 사이로 모든 내부 공간은 구획 없이 이어진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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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소통하는 5개의 중정

이 집의 핵심은 다섯 개의 중정(中庭)이다. 방은 한 칸이지만,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중정이 5개나 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현관 중정에서 시작해 현관 맞은편에도 중정이 나타난다. 현관 맞은편 중정은 안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땔감이 쌓여 있다. 김장 등 가족 행사 때도 요긴하게 쓰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집의 중앙에 놓인 중정이 보인다. 이 중정을 중심으로 공간은 순환한다. 벽이 아닌 중정을 향해 싱크대를 배치해 가사 일을 하면서도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중앙에 있는 중정 너머로 다른 중정이 겹쳐 보인다. 싱크대 옆 중정은 바비큐를 하거나, 장독을 두기에 좋다. 마지막으로 서쪽으로 길게 난 열린 중정은 집으로 쓸 때는 테이블을 두고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파티 공간으로, 문학관으로 바뀌면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위치와 크기가 제각각인 다섯 개의 중정을 통해 실내 곳곳에 빛과 그림자가 중첩되고, 서로 교차하면서 공간의 켜를 만들어낸다. 집 어디에서나 하늘과 빛과 바람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정 소장은 “살아 숨쉬는 공기방울처럼 놓인 중정 덕분에 집은 빛과 어둠, 높고 낮음, 따뜻함과 차가움, 안과 밖 등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중용적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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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아닌 중정을 향해 싱크대를 배치해 부엌일을 하면서도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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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불을 지피거나 김장을 하거나, 장독을 두는 등 생활공간으로 쓰지만, 문학관으로 쓸 때 중정은 방문객의 휴게공간이면서 토론회나 전시회 등이 열리는 문화행사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정 소장은 “도시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내부 중심적인 공간을 지향하고, 이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강하게 만들었다”며 “마당, 중정 등 외부와 내부에 소통 가능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사회는 소통 가능한 다양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독주택의 특권처럼 여겨졌던 중정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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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집 열린 집’의 다섯 개의 중정은 건축주 부부에게 한옥 툇마루에 앉아 있던 유년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공간이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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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이 많으면 사는 데 불편하지는 않을까. 부부는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시내 아파트에 살 때는 바깥을 내려다봐야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침에 눈 뜨면 빗소리가 들리고, 자연스럽게 날씨를 알 수 있지요. 우리 어렸을 땐 한옥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처마 위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어둑어둑해지면 방에 들어가 창호지에 그림자 놀이를 하면서 잠이 들었어요. 그런 정취가 이 집에서도 느껴져요. 고향에 정말 돌아와 어렸을 때 살았던 기분이 들어요. 사계절의 변화를 집 구석구석에서 느끼고, 지켜보고, 시간의 풍요를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이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생각해봐야지요.“

울산=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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