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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췌장암 훌훌 털고 일어나라, 월드컵 4강 기적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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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인천감독, 4기 암투병 고백 "난 괜찮아 동요하지마라"]

팀은 2부리그 강등 위기에 몰려… 항암치료 받으며 그라운드 지켜

"끝까지 포기않고 버티고 버텨… 1부 잔류, 암과 싸워서 이길 것"

"동요하면 안 돼. 난 괜찮으니까. 앞으로 남은 중요한 일들을 먼저 생각하자."

지난주 초 유상철(48)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훈련 시간에 선수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자신이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지만 절대 흔들리지 말 것을 부탁한 것이다. K리그 1부 10위인 인천은 남은 2경기 결과에 따라 1부 잔류냐, 2부 강등이냐가 결정된다. 내심 짐작만 하고 있던 선수들은 크게 놀랐지만 좀처럼 내색할 수 없었다. 유 감독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결연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02년 폴란드전 쐐기골 터뜨린 후 환호… 올 원정 승리 후 기뻐하는 유감독 -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유상철 감독이 걱정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다. 유 감독의 투병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던 팬들은 그동안 K리그 경기에서 '건강하게, 강하게 우리와 함께하자'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왼쪽 사진은 유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D조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2대0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 골을 터뜨린 뒤에 환호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유 감독이 지난 5월 28일 제주 원정에서 2대1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과 포옹하며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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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주일 지난 19일 오후 유 감독은 편지를 통해 팬들에게도 자신의 병명을 직접 알렸다. 원고지 6장 분량의 글에서 그는 '여러 말과 소문이 무성해 제가 직접 팬들에게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저 때문에 선수들과 팀에 피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중략) 사활을 걸어 팀을 잔류시키고,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텨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경기일(24일)이 가까워지면 선수들이 영향을 받을까 봐 감독님이 오늘 오후 갑자기 편지를 공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축구계 동료와 팬들이 바라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됐지만 유 감독은 정작 팀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유 감독의 건강 이상설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달 19일이었다. 당시 성남FC 원정 경기에서 인천이 1대0으로 이기자 선수 대부분이 유 감독에게 안겨 펑펑 울었고, 이천수 인천 전력강화실장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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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 감독이 황달 증세를 심하게 보이고 있었던 데다 승리에 대한 기쁨치고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유 감독에게 뭔가 일이 생겼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유 감독은 경기 직후 병원에 입원했고,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지난주 초 췌장암 판정이 났다고 한다.

그날부터 유 감독은 병원을 오가며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일반인 같은 경우 이미 힘겨운 생활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유 감독은 워낙 체력이 좋아 감독직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야외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19일도 24일 경기(상주 상무전) 시작 시각과 같은 오후 2시부터 문학경기장에서 1시간 30분 동안 훈련을 직접 지휘했다.

자신도 팀도 위기를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그가 지휘하는 인천은 K리그 1부리그에서 승점 30으로 10위에 처져 있다. 시즌 종료까지 2경기를 더 치러 최종 11위가 되면 승강 플레이오프를 벌여야 하고, 12위가 되면 곧바로 2부로 강등된다. 11위 경남(승점 29), 12위 제주(승점 27)와 승점 차가 크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 감독이 자리를 비우지 않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인천 관계자는 "본인이 팀 잔류와 암 극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하다"며 "시즌 끝까지 원래 자리에 계실 것"이라고 했다.

유 감독은 현역 시절 멀티 플레이어의 대명사로 꼽혔다. "골키퍼만 빼고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말을 그라운드에서 실현했다.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1994년엔 수비수로, 1998년엔 미드필더로, 2002년엔 공격수로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다. K리그 역사상 김주성과 유상철만 갖고 있는 진귀한 기록이다.

이 덕에 대표팀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유 감독을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리는 축구 팬이 많다. 당시 대표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유상철 감독이 강력한 오른발슛으로 골키퍼를 뚫고 득점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은 승승장구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4강 진출을 이뤄냈다. 그때 그 기적의 사나이에게 다시 기적이 찾아오길 팬들은 기도하고 있다.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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