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잔인한 죽음’을 증명하라](1)법정에 선 ‘개 전기도살’…얼마나 ‘잔인’하게 죽여야 죄가 될까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개 도살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 1년

경향신문

케이지 안의 개들. 오른쪽의 쇠꼬챙이에 전선과 스위치가 연결돼있다. 손잡이는 절연 테이프로 감겨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기로 감전 도살한 농장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기소

“식용 위해 죽인 것 정당” 항변


사람을 죽이면 처벌받는다. 소·말·양·돼지·닭·오리·사슴·토끼·칠면조·거위·메추리·꿩·당나귀는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 다만 죽이려면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 규정한 방법을 써야 한다. 이 법은 사람이 먹는 용도로 이 동물들을 죽일 수는 있되 고통을 받지 않게 죽이도록 방법을 정해뒀다.

‘개’는 어떨까. 축산물위생관리법 대상에 개는 빠져 있다. 고양이도 없다. 개와 고양이는 가축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개를 죽이는 방법을 규정한 법은 어디에도 없다.

“동물 잔인하게 죽여선 안돼”

동물보호법에만 규정 명시


동물보호법은 “누구든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즉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는 게 증명되면 처벌된다. ‘잔인’이란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질다’는 뜻이다. ‘동물’엔 개와 고양이도 포함된다.

1·2심 무죄, 대법은 파기환송

1년간 10번 파기환송심 공판


법원이 이른바 ‘개 도살 사건’의 파기환송심 심리를 1년 만에 끝냈다.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입에 대 감전시켜 죽인 한 남성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지난해 11월15일부터 지난 5일까지 열린 10번의 파기환송심 공판과 그 안팎을 취재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사건은 복잡하게 굴러간다. 재판 쟁점을 파고들면 ‘개 식용’ 문제도 드러난다.

재판부는 전기도살이 ‘잔인한 방법’인지를 증명하라고 검찰에 요구하면서도 검사의 입증 시도를 상당 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은 형벌은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내세운다. 개를 먹을 목적으로 도살하는 방법을 연구한 자료가 이 세상에 거의 없다는 점을 변호에 활용한다. 식용을 위해 개를 죽인 것은 정당하다고도 했다. 법정에 이 범죄 피해 대상인 도살당한 개는 없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재판이다.

■ 파기환송심 재판 1년

공소사실은 한 문장이다. “피고인은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개농장의 도축시설에서 개를 묶은 상태에서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어 감전시키는 방법으로 죽여서 도축하는 등 연간 30두 상당의 개를 도살하여 동물을 학대하였다.”

누군가가 이씨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고발자는 “적재차량에서 개를 내리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개농장에 직접 방문해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이씨는 도살을 인정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도살 도구인 쇠꼬챙이를 촬영해오라고 했고, 이 사진은 수사기록에 첨부됐다. 이씨는 2017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5일 재판에선 이씨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열렸다. 이때 이씨의 개 도살 전후 사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원래 돼지를 키우려고 해당 농장에 들어간 이씨는 수입이 적고 재미가 없어 개를 키웠다고 했다. 가장 많을 때는 20~30마리를 키웠다. 18~20㎏ 무게의 개들이다.

이씨는 개를 잡아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개고기를 팔았다고 했다.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5부 김형두 재판장이 ‘(잡을) 개는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개고기 사러온 사람이 자기 집에서 키우다가 가지고 오는 것도 있고, 동네에 있는 개도 (도살)한다”고 답했다.

“개 잡는 방법, 감전에서 해체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했던 방법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검사)

“전기를 대면 감전으로 뻗어버립니다. 그러면 끌고 나와서 토치로 그슬려가지고 잡았습니다.”(이씨)

“전기를 넣으면 반항하지 않나요? 소리를 지른다거나?”(검사)

“소리 지를 시간이 없습니다. 그대로 쫙 뻗으니까요.”(이씨)

개 입에 전기 쇠꼬챙이를 갖다대면 개가 쇠꼬챙이를 물고, 그대로 감전된다는 게 이씨 말이다. 그 후 가스 토치로 개의 털이 탈 때까지 30여분 그슬린 다음 머리와 다리를 자르고 내장과 간을 제거하는 등 해체 작업을 한다고 했다. 작업장 바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비닐봉지에 싸줬다고 했다.

이씨는 개를 감전시키면 죽은 것 같아 보여 의식을 잃었는지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피고인이 개들을 쇠꼬챙이로 감전시킨 다음 개에 의식이 있는지 확인해봤나요?”(검사)

“제가 목숨이 두 개 같으면 한번 시범이라도 보여드리는데. 그냥 가버립니다 전기가 세서.”(이씨)

“무의식 상태였는지, 의식은 있는데 운동신경만 마비됐는지 확인하지는 않았겠네요?”(검사)

“그냥 죽어버렸다니까요. 숨도 안 쉬고.”(이씨)

경향신문

전기 도살봉의 끝 부분. 개의 입에 물리는 부분에 이빨 자국이 나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 연구자료 없는 개 도살 방법

쟁점은 이씨가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잔인한 방법’으로 개를 죽였다고 볼 수 있는지다. 1·2심은 모두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의 전기도살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정해진 ‘전살법(電殺法)’과 비슷해 잔인한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도살 방법의 허용이 동물의 생명존중 등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 동물별 특성 및 그에 따라 해당 도살 방법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정도와 지속시간, 대상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개가 인간 삶에서 차지하는 ‘동반자’ 의미를 감안해 전기도살은 잔인하다는 취지의 판단으로 해석됐다.

파기환송심에서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형두 재판장은 대법원 판결의 한 문장을 짚었다. “쇠꼬챙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 개가 감전 후 기절하거나 죽는 데 소요되는 시간, 도축 장소 환경 등 도살 방법의 구체적인 행태, 개에게 나타날 체내·외 증상 등을 심리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문장이다.

전류 크기를 확인하려면 도살 도구인 쇠꼬챙이가 있어야 하지만 압수되지 않았다. 이씨도 지금은 쇠꼬챙이를 갖고 있지 않고, 개농장은 처분해버렸다고 했다. 이씨는 농업용 380V 전압의 전기를 농장에 끌어왔다고 주장했다. 강한 전류를 사용했기 때문에 개가 단번에 고통 없이 죽었다는 것이다.

동물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지 인간은 근본적으로 알기 어렵다. ‘잔인한 방법’ 입증을 위해 검사는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재판부는 상당 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는 이씨가 사용한 것과 유사한 쇠꼬챙이로 작동 원리를 알 수 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씨 도살과 무관하다고 했다. 검사는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부르자고 했지만 재판부는 1명만 수용했다. 전문가는 동물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증언은 할 수 있지만 이씨 사건은 모른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씨 후임자의 개농장과 다른 동물 도살장에 대한 현장검증, 사건을 초기 수사한 경찰관 증인신문도 거부됐다.

동물권연구단체 피앤알(PNR)의 서국화 변호사는 “목을 졸라 사람을 죽였을 때 목을 어느만큼의 힘으로 졸랐는지 재연할 수는 없지 않으냐. 통상적인 방법으로 졸랐을 테고 재연해도 똑같은 힘도 아닐 것”이라며 “쇠꼬챙이는 같은 원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법원이 판단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동물 생명존중 등 고려 않고

‘잔인한 방법’ 증명하라는 법원

동물권행동 “판사 각성해야”


도살 도구가 없다면 개 도살과 관련한 연구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개 도살 연구자료가 없다. 기본적으로 도살 방법을 연구한 자료들은 식용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살하는 경우 고통을 느끼지 않게 죽이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개를 먹는 국가는 드물다. 개를 도살하는 방법을 연구할 이유가 없었다. 이씨 측은 연구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유리한 정황으로 활용한다. 먹지 않기 때문에 도살 방법을 연구하지 않았는데, 연구가 없으니 아무 방법으로 도살해도 된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경향신문

지난 1월 북인사마당에서 열린 ‘개·고양이 도살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 참석자들이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개 도살 자료가 없잖아요. 다시 말하면 개 도살하는 곳이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거예요. 근거자료를 판사가 찾으라는 것 자체가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것은 배제하고 동물이니까 죽여도 된다, 그 죽이는 게 잔인했느냐 평가만 하고 있다는 것이죠. 판사들이 각성해야 됩니다.” 박운선 동물을대변하는목소리 행강 대표가 말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의 말이다. “(잔인하지 않게 동물을 죽이는) 프로세스의 철학은 절명 전 의식소실이에요. 한국에서 과연 그것을 지키고 있느냐? 전혀 안 지켜집니다. 개는 인지능력이 높아 자기가 죽는 것을 알고 있어요. 케이지(우리)에 가두기만 해도 펄펄 뛰고, 의식소실 전 공포를 많이 느껴요. 전기도살은 의식이 있는 채 감전으로 죽는 거예요.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죽이다가 갑자기 (재판에서) 전류를 따지는데 법원의 무책임한 태도라고 봅니다.” 파기환송심 판결은 다음달 19일 나온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