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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투입 임박-4] 천안문 사건 때는 어떻게 투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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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날로 격화하고 있는 홍콩 사태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민해방군(이하 인민군) 투입 여부다. 홍콩의 시위가 격렬해지고 친중· 반중 시위대가 충돌, 내전 양상을 보이는 등 홍콩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곳곳에서 인민군 투입 징후가 감지되는 등 인민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인민군 투입 가능성을 집중 조명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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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건 당시 탱크맨. 맨몸으로 탱크 행렬을 막고 있다. 천안문 사건을 상징하는 시대의 한 컷이다. - NYT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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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베이징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대학생들이 1989년 4월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에서 대규모 시위에 들어가자 서구 언론은 베이징에도 ‘민주화의 봄’이 찾아왔다고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위대는 처음에는 개혁파의 거두인 후야오방을 재평가해줄 것을 요구하다 후반부에 들어서자 전면적인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의 실권자인 덩샤오핑은 5월 17일 공산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 다섯 명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계엄령 선포 여부를 다섯 명이 투표해 결정하라고 했다. 당시 덩의 집에 모인 사람은 자오쯔양, 리펑, 후치리, 차오스, 야오린이었다. 자오쯔양 혼자만 계엄령에 반대했고, 리펑과 야오린은 찬성했다. 나머지 두 명은 기권했다. 보수파인 리펑 진영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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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참석해 성화를 들고 있는 리펑 전 중국 총리.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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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을 쥔 리펑은 학생들의 시위를 난동으로 규정하고 베이징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학생들의 요구에 유연한 대응을 보이던 자오쯔양은 덩의 집에서 열렸던 회의에 참석한 직후 천안문 광장으로 달려가 학생들에게 “내가 너무 늦게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오쯔양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으며, 이후 다시는 복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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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자오쯔양, 덩샤오핑, 후야오방 - 바이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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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권을 쥔 리펑 일파는 6월 3일 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해 천안문 광장의 시위 군중을 무차별 살상한 끝에 6월 4일 완전히 굴복시켰다.

중국 정부는 시민과 계엄군의 충돌로 학생 36명을 포함한 319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부상자 3,000명, 계엄군 측 부상자 6,000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숫자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구의 전문가들은 민간인 사망자가 천여 명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천안문 사건 이후 서방은 정치범의 석방 등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중국에 대한 투자를 일시에 중단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는 거의 제로로 추락했고, 1988년 14%였던 경제성장률은 1989년 8.4%로 급락했다.

서방세계는 이뿐 아니라 천안문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 공산당에 대한 항의로 티베트 독립운동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등 다각도로 중국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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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 © AFP=뉴스1 © News1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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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입장에서 초조할 만도 했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연했다. 그는 나무랄 데 없는 인프라와 싼값의 노동력이란 단물을 서방의 자본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실제로 2~3년 후 서방의 자본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서구의 자본이 포기하기에는 중국은 너무 크고 기름진 먹잇감이었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 홍콩 시위에 인민군을 투입한다면 서방은 각종 경제 제재를 중국에 가할 것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또 달라이 라마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조슈아 웡 등 홍콩의 민주인사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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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인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 AFP=뉴스1 © News1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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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홍콩 사태가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왔다고 보고 개입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이 이같이 방향을 굳힌 것은 서방이 중국이란 시장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사상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서방이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기름진 고깃덩어리인 것이다.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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