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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맥 끊기는 뿌리산업]②'기술단절' 뿌리산업…"5년 내 위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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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악화보다 인력 고령화로 인한 '기술 단절' 우려

40대 이상 근로자 비율 60% 수준으로 늘어

뿌리기업 인력난 해소할 '파견법'은 3년째 국회 계류

"젊은 인력 유입 끊기며 사업 의지도 잃어가"

이데일리

15일 방문한 충남 천안 소재 삼천리금속. 회사 직원 중 절반인 30여명 가까이가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다. (사진=김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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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충남)=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회사에 젊은 인력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말자. 그게 우리가 내린 결론입니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주물업체 삼천리금속 조현익 대표는 뿌리산업 인력 현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선박엔진용 금속케이스와 발전설비 부속품을 만드는 이 업체에는 현재 80여명의 근로자가 재직 중이다. 이 중 외국인 근로자와 임시직 10여명을 제외하면 절반인 30여명이 60대 이상 근로자다. 20~30대 근로자는 단 3명뿐이다.

공장 현장에서는 올해 75세가 된 근로자가 가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 대표는 “현대중공업에서 퇴직하고 20년 가까이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분”이라며 “사람이 없으니 일을 못할 때까지 있어달라고 붙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이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뿌리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다. 한국 뿌리기업들은 빠른 납기일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조선과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추격으로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정부는 뿌리산업 고령화에 대비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1년 7월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를 근거로 2012년 3월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설립,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부처로부터 뿌리산업 발전에 필요한 사업들을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지원’ 예산을 2017년 72억 5000만원에서 올해 107억원으로 늘리는 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뿌리산업이 살아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선 조선·자동차·기계 등 전방산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양태석 중기중앙회 뿌리산업위원회 위원장은 “경기불황에 가장 타격이 큰 분야가 뿌리산업이고, 경기 회복 때 가장 늦게 회복하는 것도 뿌리산업”이라며 “당장 조선사나 철강소에서 발주를 안 내고, 발주량 자체도 전 세계적으로 많이 줄었다”라고 설명했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2015년 2만 6840개이던 전국 뿌리산업 기업은 2017년 2만 5056개로 2년 만에 약 1800개가 줄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도 1000개 이상 기업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경영환경 악화보다 더 큰 문제는 인력 고령화로 인한 ‘기술 단절’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점이다. 정부는 △뿌리기술 전문가 양성 △뿌리산업 기반 인력양성과정 심화 △숙련기술인력 양성 등 사업을 통해 청년 인력 유입책을 펼치고 있다. 산업부와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지난해 5월 ‘뿌리산업 일자리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8800여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정부 사업을 통해 청년들이 뿌리기업에 입사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는 점이다. 한 주물업체 대표는 “폴리텍대학이나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간혹 오지만, 대부분이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1년 안에 그만둔다”며 “국가 예산을 들여 하는 사업인데 과연 실효성 있는 제도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용접전문기업 한토의 최기갑 대표도 “매년 용접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채용하기 위해 높은 급여도 제시해봤지만 거의 오지 않고, 간혹 오는 이들도 6개월에서 1년이면 모두 그만둔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분야 기술인력 중 입사 1년 이내에 퇴사한 이들의 비율이 40.6%에 달했다.

낮은 임금도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해 뿌리기업 종사자 월 평균 급여는 253만원이었다. 이는 일반 도시근로자 월 평균 소득액인 292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오히려 나이든 숙련공들만 쓰다보니 인건비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금형업체 대표는 “60살 이상 숙련공 급여를 300만원 이상으로 맞춰주는데, 그래도 힘들다며 잔업을 거의 안 한다”며 “젊은 인력이 와야 기술 전수도 하고 사업을 잇는데, 갈수록 생산성은 떨어지고 고정비만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뿌리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난 2016년 뿌리산업 종사자의 파견근무를 허용하는 ‘파견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노동계 반발에 법안은 3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뿌리공정 스마트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기술고도화를 통해 인력 고령화 문제를 해소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7년 뿌리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뿌리기업 중 스마트공장 추진 의사가 있거나 구축 중인 사업체는 3.7%에 불과했다. 뿌리기업 88.9%는 비용 등 문제로 스마트공장 구축에 부정적이다. 금형이나 열처리 분야처럼 비교적 공정이 단순한 업종은 자동화가 쉽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이나 사람 손을 많이 타는 주물이나 용접, 소성가공 분야는 스마트공장 구축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뿌리산업 종사자들은 인력 고령화로 인한 기술 단절이 곧 제조업 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양태석 위원장은 “뿌리기업은 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장수기업들도 쉽게 문을 닫고 있어 안타깝다”라며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뿌리산업은 곧 고령 근로자들과 사업 의지를 잃어버린 업체 대표들만 남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15일 방문한 경인주물공단 내 삼창주철. 50대 이상 고령 근로자들이 산업용 밸브 조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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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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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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