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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강찬수의 에코파일] 찌~익 칠판 긁는 소리…귀가 제일 짜증나는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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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던 음악이 소음 될 수도

로켓발사 땐 170㏈이나 돼

불안·스트레스·동맥경화 등

다양한 심리적·생리적 영향

소음은 시끄러운 소리, 원하지 않는 소리를 말한다. 같은 소리도 소음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평소에 내가 즐겨 듣던 음악이라도 원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듣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낸다면 소음이 될 수 있다.

소리의 크기를 수치로 표시할 때 보통 데시벨(deci-Bel, ㏈)이란 단위를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듣는 소음을 데시벨로 표시한다면, 조용한 주택의 거실은 40㏈, 전화벨 소리는 60~70㏈, 지하철이나 자동차 소음은 80~90㏈ 정도다.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과 브라질 국립아마존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새인 방울새의 울음소리는 최대 125㏈에 이르렀다. 발사대를 떠나는 로켓 소음은 170㏈이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시끄러운 소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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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의 크기와 건강 영향.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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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은 인체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불안·초조·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생리적 영향으로는 맥박 증가, 혈압 상승, 위액 분비 저하, 호르몬 분비 이상을 일으킨다. 동맥경화, 위궤양, 태아의 발육저하로 연결되기도 한다. 소음은 일시적·영구적 난청을 낳기도 한다.

사람들이 특별히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있다. 영국 뉴캐슬대학 연구팀이 2012년 발표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 목록’에는 병을 칼이나 자로 긁는 소리, 유리잔을 포크로 긁는 소리, 칠판을 분필이나 손톱으로 긁는 소리, 여자의 비명, 아기 울음소리, 자전거 브레이크 소리, 전기 드릴 소리 등이 들어있다.

연구팀은 13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촬영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들려주면 뇌 측두엽 편도체에서 청각을 담당하는 피질이 활성화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구팀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16㎐~20㎑(2만㎐) 사이인데,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2000~5000㎐ 주파수 범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의 귀가 가장 민감한 영역이다.

우리 귀가 왜 이 영역에 가장 민감한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비명도 이 영역에 들어있다. 이 주파수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생존에 유리했고, 이것이 인류 진화과정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

소음은 무기로도 사용된다. 지난 9월 2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과학원의 발표를 인용해 중국이 세계 최초로 소요 진압에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음파총(sonic gun)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총 모양으로 생긴 이 장치는 저주파 음을 사용하는데, 고막·안구·위·간·뇌 등에 진동을 일으켜 극도의 불편함을 유발해 군중을 해산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영국에서는 아마추어 발명가가 10대 청소년들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소음총을 개발했다.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거나 몰려다니며 싸움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가청주파수 중에서도 높은 쪽인 16~18.5㎑의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이 소음총은 이듬해 ‘모스키토’라는 상품으로 출시됐는데, 유럽연합 인권기구는 2010년 판매 금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백색소음’ 마음 편하게 해줘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은 군중 통제용으로 ‘지향성 음향장비(LRAD, Long Range Acoustic Device)’를 사용했다. 이 ‘음향대포’는 2.5㎒의 고음을 최대 125㏈까지 낼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10년 경찰 시위진압용으로 이 장비를 도입하려다 반대 여론이 거세 백지화했다.

‘좋은 소음’도 있다. 바로 백색 소음(White Noise)으로 다양한 주파수 대역에서 동일한 강도를 갖는 혼합된 소리를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소리가 뒤섞인 형태로,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보호감을 느낄 수 있는 소리다.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의식하지 않게 돼 고요한 상태보다 오히려 공부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이 조용한 집이나 도서관이 아닌, 다소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백색 소음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백색소음이라도 복잡한 카드 분류 작업 등에서는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보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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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와 일반 소음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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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난청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34만9000명이다. 2012~2017년 사이 난청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연평균 4.8%씩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의 38%가 노인성 난청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난청을 방치하면 우울증이나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힘들고, 이 때문에 사회적 고립에 빠져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소음지도를 작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역별 소음도, 특히 소음이 심한 구역을 지도에 표시한 것이 소음지도다. 건물의 층수까지 고려한 3차원 소음지도도 있다. 소음 피해가 심한 곳을 시민들이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고, 지자체는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어디에 집중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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