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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판 '우리가 남이가'… 왜 그들은 연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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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썰' 푸는 국제부 기자들(썰국열차)] 쇠퇴기 들어선 '핑크 타이드'의 심리적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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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대선 부정 논란 속에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망명지인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 도착해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장관의 환대를 받고 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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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1992년 12월, 부산의 한 초원복국집에서 이뤄지던 대화는 전국민이 아는 명대사가 됐습니다. 현직 정부기관장들이 여당 대통령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자는 대화가 반대파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것인데요. 이 발언은 이후 지역주의 또는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이가'는 2019년 지구 반대편 중남미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대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사퇴했습니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멕시코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고, 멕시코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쿠바, 아르헨티나 지도자들도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두고 "쿠데타의 희생양"이라며 지지를 표했습니다.

국경을 넘어 뭉친 중남미의 연대. 이들이 손잡은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요?


'핑크 타이드'가 뭐길래?… 1990년대 흥한 좌파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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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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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두고 "20여 년 전 라틴아메리카를 휩쓴 '핑크 타이드'의 마지막 멤버"라고 칭했습니다.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남미 12개국 중 10개국에 좌파 정권이 파도치듯 연달아 집권한 흐름을 뜻합니다. 2005년 당시 뉴욕타임스(NYT)의 남미지국장이었던 래리 로터가 처음 붙인 용어죠. 공산주의 물결인 '레드 타이드'와 비교해 온건 좌파라는 뜻으로 색이 옅은 '핑크'로 이름 지어졌습니다.

2006년 당선돼 무려 14년 동안 집권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볼리비아의 최초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역시 좌파 성향인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당'(MAS)당 소속이었습니다. 남미 좌파 혁명의 상징적 인물인 체 게바라를 동경하고 유사한 정책을 펼쳐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라고 불렸죠. 2006년 선거 당시에는 체 게바라의 딸이 공개 지지 선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모랄레스를 지지한다고 밝힌 베네수엘라, 쿠바, 아르헨티나 지도자들 역시 모두 좌파 성향입니다. 결국 이들이 '우리'가 된 배경에는 '좌파'라는 이념이 있었던 셈이죠.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몰락길 걷는 핑크 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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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이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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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션(The Nation)에 따르면 핑크 타이드의 집권 배경에는 "긴축정책, 국영기업 민영화 등 미국 및 국제 금융기관이 옹호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석유·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핑크 타이드는 쇠퇴기를 맞습니다. 핑크 타이드의 포문을 열었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이 2013년 사망하고,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된 일이 결정적인 계기였죠.

2015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우파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그해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선출되고, 지난해 3월 칠레에서 억만장자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 같은 해 10월 브라질에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되죠. 베네수엘라에선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부채 위기로 민심을 잃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며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맞았습니다.

중남미 우파 정권들은 모랄레스 대통령 사퇴를 두고도 환영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콜롬비아와 페루는 성명을 통해 새 선거를 합법적으로 치를 것을 촉구했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심지어 모랄레스의 몰락을 반긴다는 입장까지 밝혔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핑크 타이드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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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자가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자인 휴고 차베스가 그려진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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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핑크 타이드'가 사라졌다고 보긴 힘듭니다. 지난해 멕시코는 89년 만에 좌파 집권에 성공해 모랄레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선 좌파 성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당선되며 핑크 타이드의 부활 가능성을 내비쳤죠. '남미 좌파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8일 석방돼 "2022년 대선 때 후보를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우파 정권이 집권한 칠레는 최근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촉발한 대규모 시위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까지 포기하는 등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친미 성향의 우파 정권들 역시 연대를 꾀하는 조짐을 보여 눈길을 끕니다. 14일 볼리비아 임시정부는 베네수엘라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볼리비아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자니네 아녜스와 과이도 모두 우파 정당 소속이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 맞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은 앞서 말했듯 모랄레스와의 연대를 표명한 인물입니다.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는 과연 부활을 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역사 속에 스러지게 될까요? 부패와 극심한 빈부차, 경제 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는 중남미. 언제쯤이면 좌파든 우파든 집권당의 성향과 상관없이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만한 정권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강민수 기자 fullwater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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