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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훈길의뒷담화]'조작의혹' 통계청엔 3가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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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무책임→통계청장 말 바꾸기

②무지→정책실패를 통계탓으로

③무관심→국가통계위 ‘개점휴업’

내달 국가통계위, 3無 통계청 개혁해야

이데일리

※모든 정책에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습니다. 세종관가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통계로 국민을 속이려는 통계청장’ 제목의 글을 올려 통계조작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유 의원은 비정규직이 1년 새 87만명 급증한 것은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실패의 결과인데, 통계청장이 이를 감추려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통계를 생산하는 일은 결코 없다”며 “이제까지도 계속 그래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통계청 내부에서도 “통계조작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통계를 관장하는 기관이자 최고의 통계 전문가들이 모인 통계청이 왜 ‘통계 조작’이라는 참담한 의혹을 받게 됐을까요? 최근 비정규직 통계 논란을 보면 통계청에는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통계청장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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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욱 통계청장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해석을 염두에 두고 통계를 생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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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제는 무책임입니다. 강 청장은 통계 조사 결과를 놓고 잇따라 말을 바꿔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심지어 청장의 발언을 직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경활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748만1000명(올해 8월 기준)으로 작년 8월(661만4000명)보다 86만7000명 늘었습니다. 이는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로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입니다.

강 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비정규직이 87만명이 급증한 원인에 대해 “조사 변화 때문에 과거에 정규직이었다가 올해 비정규직으로 (바뀐 게 87만명 중) 35만명에서 50만명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년도 부가조사와 전년도 결과를 증감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번 조사결과를 과거 데이터와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

그러나 통계청 직원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35만~50만명이 정규직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통계청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작년 8월과 올해 8월의 조사방법이 같아 비교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지난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증인석에서 이 같은 입장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했습니다.(참조 이데일리 11월5일자 <통계청·부총리, 비정규직 통계해석 ‘엇박자’>)

그러자 강 청장은 지난 5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100% 바뀐 게 아니라) 정규직에서 넘어온 비중이 60% 이상일 것”이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강 청장은 60% 이상이라고 밝힌 근거를 이날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현재 (통계청) 데이터로는 정규직에서 넘어온 비중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 청장이 또다시 정확한 근거 없이 말을 바꾼 셈입니다.

◇ 국가통계에 무지

두 번째 문제는 무지입니다. 유승민 의원은 통계청장이 비정규직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강 청장이 사기를 쳤다기보다는 국가통계를 제대로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고의가 아닌 무지에 따른 실수일 것이란 얘기입니다.

앞서 통계청이 비정규직 통계 결과를 발표하자,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습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통계청 통계가 비정규직을) 정확히 발라내지 못한 통계”라며 가구 표본을 정해 설문조사로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병행조사(추가 설문조사) 자체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설문 내용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일례로 고용예상기간을 추가로 묻는 경우 사업체 대상 설문 결과와 근로자 가구의 설문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회사는 고용을 유지하려고 하더라도 근로자가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심지어 통계청 병행조사가 개인의 느낌을 물으면서 비정규직으로 생각하게끔 꾸며져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김효순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정책관은 브리핑에서 “(통계청 조사 결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수치”라며 “인사노무 담당자를 통한 사업체 조사(사업체 기간제근로자 현황조사)는 굉장히 정확하다”고 말했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통화에서 “고용 형태는 (통계청처럼 가구 설문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고용부처럼) 사업체에 묻는 게 맞다”고 거들었습니다. 사업체 조사의 경우 기간제 근로자 수가 작년 6월 192만5000명에서 올해 6월 179만1000명으로 13만4000명(7%)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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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748만1000명으로 작년(661만4000명)보다 86만7000명이나 늘었다. 1년 새 비정규직이 86만명 넘게 증가한 것은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자료=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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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비정규직 수, 비중이 모두 작년보다 증가했다. [출처=통계청,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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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청장은 이 같은 의혹 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통계청 내부에서조차 강 청장이 국가통계 설계, 조사 방식을 정확히 몰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 통계청은 억울해 할만 합니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는 작년 8월과 똑같은 설문지·조사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부가조사는 2003년부터 17년째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올해 추가 설문조사(병행조사)가 진행돼 조사 방식이 바뀐 시점은 3월·6월·9월뿐이었습니다. 지난 17년간 부가조사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는데 유독 지표가 악화한 올해만 통계 탓을 하는 상황입니다.

김상조 실장이 표본 한계를 지적했지만 표본오차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상대표준오차는 2018년 8월·2019년 8월에 각각 0.4%에 불과했습니다. 캐나다 등 국제 기준에 따르면 오차가 2% 미만이면 ‘매우 우수(엑설런트)’ 등급입니다.

통계청은 고용예상기간을 묻는 설문조사(설문지 22-1)의 오류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용예상기간은 응답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묻는 게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고용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프로젝트(일거리)가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을 물어보는 것”이라며 “조사원들에게도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묻는 게 아니라고 사전 교육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고용예상기간 관련 병행조사 문항(22-1)에 대한 응답 결과로 ‘기간제’와 ‘기간제 외 근로자’가 구분되는 것”이라며 “이 병행조사 질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게 아니다. 병행조사 응답 결과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는 주장, 설문이 비정규직으로 생각하게끔 꾸며져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간제 외’ 근로자는 정규직과 기간제가 아닌 비정규직(시간제·파견·용역·특고·일일근로·가정내근로 등)이 섞여 있습니다.

고용부의 사업체조사가 통계청의 경활 부가조사보다 더 정확하다는 근거도 불투명합니다. 사업체조사는 5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합니다. 반면 통계청 경활 부가조사는 5인 미만의 열악한 사업체, 초단기 알바, 농림·어업 취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까지도 파악합니다.

통계청의 병행조사 여파를 제외하더라도 비정규직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강 청장 주장대로 비정규직 증가분(86만7000명)에서 병행조사 도입 여파(최대 50만명)를 제외해도 36만5000명입니다. 비정규직이 1년 새 36만명 넘게 증가한 것도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입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급증 상황을 통계 문제로만 돌리기엔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국가통계에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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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12월에 국가통계위원회를 열고 통계 전반에 대해 짚어보는 기회를 가질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가통계위원회 출석회의는 2014년 11월 이후 5년 만이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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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제는 무관심입니다. 국가통계위원회는 2014년 11월 이후 5년째 출석회의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올해는 출석·서면회의조차 없었습니다. 통계법이 개정된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국가통계위원회 위원장은 기재부 장관이, 간사는 통계청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유는 황당했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장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다 보니 대면회의 스케줄을 잡는 게 어려웠다”며 “해당 부처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통계 안건에 대해선 관심이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장관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국가통계 현실에 무관심하다 보니 1년에 한 번 출석회의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대면위원회로 활성화하는 내용까지 포함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12월에 국가통계위원회를 열고 통계 전반에 대해 짚어보는 기회를 가질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주문을 쏟아냈습니다.

유경준 전 청장은 “조사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경기부진, 공공일자리, 정책실패 등으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는 게 팩트”라며 “이 팩트를 반영해서 보여준 국가통계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청와대와 통계청장이 정권에 유리하게 편의적으로 해석한 게 문제다. 이런 현실을 직시했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국가통계위원회 한 민간 전문가는 “경제관료들이 국가통계위원회 위원으로 포함되면 경제 통계 관련한 이해 당사자가 된다”며 “미국처럼 경제관료들을 제외하고 민간 위원만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기영 통계청 노조위원장(국가공무원노동조합 통계청 지부장)은 “통계조작이라고 몰아붙여서 통계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가 망가지는 것”이라며 △기재부 산하인 통계청 조직 체계를 독립시키는 방안 △청장 임기를 명시적으로 규정해 임기를 보장하는 방안 △통계청장의 전문성, 행정능력을 검증하는 청장 청문회 도입 방안 등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은행처럼 기관장 임기를 보장하고 청문회를 도입해 검증하자는 지적입니다. 최근 통계 논란이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국가통계의 독립성·신뢰성을 높이는 해법을 찾는 쪽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통계 탓으로 돌리며 통계청 실무진에게 책임을 돌리는 ‘꼬리 자르기’ 방식으론 대처하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내달 열리는 국가통계위원회는 이 같은 ‘3무(無) 통계청’ 문제를 개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통계청이 신뢰받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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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통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2009년부터 집계한 결과, 5년째 출석 회의가 없었다. 올해는 출석·서면회의도 없었다. [출처=통계청,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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