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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르포]24주째 시위 홍콩 청년들 "열심히 일해도 미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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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시위대 탓"…시위대는 "경찰 탓"

밑바탕엔 10년새 3배↑ '살인적 집값'·양극화로 인한 박탈감

뉴스1

16일 오후 홍콩 이공계대학 인근에 위치한 크로스 하버 터널 톨게이트에 학생들이 세워둔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2019.11.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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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뉴스1) 한상희 기자 = 24주째 열리고 있는 홍콩 시위가 시위대와 진압당국 모두 폭력성을 더하고 있다. 시위대는 시위대는 '평화의 날'을 선언한 지난 15일에도 경찰을 마주하면 손가락 욕(凸)을 날리고 야유를 보냈다. 오는 24일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화 제스처를 보내던 대학가에선 같은 날 오후 7시30분(현지시간)부터 차량을 막고 차량을 폭파시키는 등 경찰과 극한 대치를 이어갔다.

16일 아침 홍콩 도심 편의점 앞 신문 가판대. 시위대에 친화적인 빈과일보부터 친중매체인 동방일보,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까지 모든 매체의 1면이 시위로 도배됐다. 홍콩중문대 앞 시위대가 폭파시킨 차량,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바닥이 파인 홍콩이공대 수영장. 조금씩 사진은 달랐지만 초점은 '시위의 폭력성'에 맞춰졌다.

시위 최전선에 서는 건 20대 대학생들이다. 아시아 최고 명문 홍콩중문대와 이공대, 홍콩대에선 학생들이 불화살을 쏘고 대낮에도 끊임없이 화염병을 제조하고 있다. 시위를 피해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홍콩 링난대의 한 교환학생은 "시위하는 쪽에서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법, 즉 도시 전체를 그냥 멈춰버리는 방법 아니면 (시위대의) 5대 요구가 수용되기 어렵다고 느낀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폭도들(반정부 시위대)의 폭력성을 꼽지만, 이 학생은 반대로 시위가 격화한 이유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들었다.

실제 15~16일 시위 현장에서 만난 많은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며 경찰을 향한 분노를 드러냈다. 거리 곳곳에는 '경찰은 권력자들의 개'라는 뜻의 '구관'(狗官), '경찰이 당신을 강간하고 살해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는가'라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전일 오후 센트럴 차터가든 '노년층 경찰 폭력 규탄 집회'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도 같은 이유로 분노감을 표출했다. 오른쪽 눈이 멀고 목발을 짚은 그는 시위에 나선 이유를 묻자 "우리에겐 힘이 없다"고 답했다. "우린 나이가 들었고 거의 매일 시위에 나오는 것으로 (정부에) 항의 표시를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목숨까지 바쳐 싸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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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홍콩 중문대학교 시위 현장에 세워진 바리게이트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19.11.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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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만큼이나 시위대도 위험해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경찰과 우리의 힘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 그들은 무장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마스크뿐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위대가) 불을 지르는 건 그들(시민과 경찰)을 해치려는 게 아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바리케이드용이다. 물론 (시위대의 행동이) 위협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신 아버지(정부)가 당신(시민)을 때린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코즈웨이베이의 한 인력사무소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50대 정부 관계자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시위대의 행동은 거친(wild) 수준을 넘어섰다. 테러(terrorism)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해선 시위대의 테러에 대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찰의 진압이 과격하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 지난 11일 20대 시위대 한 명은 경찰이 쏜 세 발의 총에 맞아 간과 신장이 파열됐다.

홍콩 반정부 시위가 폭발력을 가고 지속되고 있는 기저엔 주택난과 극심한 양극화가 작용하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평균 14억원인 홍콩의 집값은 최근 10년새 무려 3배가 뛰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5명 중 1명이 극빈층인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다.

벤츠, 아우디, 테슬라 등 수입 차량이 즐비하고 명품 매장이 몰려 있는 코즈웨이베이. 이곳은 매일 시위가 열리는 지역이다. 그러나 취재팀은 저소득층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호텔 청소부와 경비원, 택배기사, 식당 종업원 같은 이들 중 누구도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시간당 4.82달러(약 5682원)의 돈을 받고 한 칸짜리 방에 산다.

2.7평짜리 집에 가족 2명과 산다는 한 27세 시위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며 "많은 홍콩 사람들이 주택 가격과 같은 심각한 재정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 돈을 벌어도 더 넓은 집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시위대는 언제까지 거리에 있을까. 이들은 자신을 겨누는 총과 최루가스가 두렵진 않을까. 시위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이런 질문에 망설임 없이 "우리가 여기에서 멈춘다면 경찰이 우리를 쓸어버릴 것이다. 우린 이 자리에서 정부에 맞서 싸우겠다"고 분명하게 답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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