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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고려 임금의 침실? '도교 제사공간?'…출토 청자로 추정하는 개성 만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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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 개성만월대에서 출토된 ‘소전색’명 청자. ‘소전색’은 고려왕조가 도교의례인 초제를 지내기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이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제공


불교국가였던 고려가 궁성인 개성 만월대에서 왕실 차원의 도교의식을 벌였던 방증자료인 ‘소전(燒錢)’명 청자잔이 확인됐다. 또 고려 임금들의 침실과 같은 사적인 생활공간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편들이 집중 출토된 곳이 있었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15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리는 ‘고려 도성 개경 궁성 만월대’ 학술심포지엄의 발표논문(‘개성 만월대 출토 청자 유형과 특징’)에서 만월대 출토 청자의 특징을 살펴보고, 당대의 궁성 건물지의 용도 등을 추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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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명 청자편. 불교국가인 고려왕조가 저승의 조상들이 사용할 종이돈을 태워 바치는 도교의례를 받들면서 ‘소전’ 의식을 펼쳤다는 방증이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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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학예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간 진행된 제8차 남북공동조사에서 확인된 3점의 ‘소전’명 청자에 주목했다. ‘돈을 불사른다’는 의미의 ‘소전(燒錢)’은 도교 의식중 하나였다. 지전(紙錢·종이돈)을 태워 저승의 조상들이 사용할 돈을 바치는 풍습이었는데, 중원(中元·백중·망혼일·7월 15일)에 행해졌다. 고려왕조는 불교의례와 더불어 도교의례인 초제(醮祭·성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냈는데, 국왕이 친히 거행하는 친초(親醮)가 빈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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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명 청자와 함께 출토되는 ‘○’, ‘⊙’ 기호 및 ‘성(成)’명 청자들. 13세기 전반의 유물로 편년된다.|박지영 학예사의 논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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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도교행사를 벌이기 위해 구성한 임시기구가 ‘소전색’이며, 지난해 8차 발굴에서 출토된 ‘소전’명 청자는 초제(혹은 친초)에 쓰인 청자일 가능성이 짙다. 이곳에서는 ‘소전’명 청자잔 외에도 50여 점의 그릇(잔)과 함께 잔 받침대인 잔탁도 10여점 발굴됐다. 박지영 학예사는 “가마터가 아닌 곳에 이처럼 집중적으로 청자잔이 나왔다는 것은 도교의식이나 연회 등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높여준다”며 “이중 ‘소전’명 청자잔의 존재로 보아 도교의례인 ‘소전’, 즉 ‘초제’를 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고려사> ‘충렬왕조’는 “1378년(충렬왕 4년) 나라에서 행하는 제향이나 초제에 쓰이는 술은…소전색에서 청하면 갖출 수 있도록 한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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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임금이 차를 마시는 여가공간이거나 잠을 자는 침전일 가능성이 7건물지군에서 확인된 용문양, 봉황문양, 쌍어문양 청자편들.|박지영 학예사의 논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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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색’은 조선왕조 개국과 함께 폐지됐다. ‘소전’명 청자와 함께 출토되는 ‘○’, ‘⊙’ 기호 및 ‘성(成)’명 청자들은 13세기 전반 유물로 편년된다. <고려사>에 따르면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1232년·고종 19년)하기 직전 도교의식이 거행된(1220년·1222년·1228년) 곳은 만월대 중에서도 중심건축군인 선경전(회경전)이었다. 강화도 천도 이후에는 초제가 거행됐다는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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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임금이 도교 의식을 거행한 것으로 보이는 만월대 7~8건물지에서 출토된 청자잔과 잔받침대. ‘소전’명 잔 등 50여점이 나왔고 잔받침대도 10여점 출토됐다.|박지영씨의 논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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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차 조사에서는 12~14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제7건물군 발굴성과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양질의 중기 청자들과 그보다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후기 청자들이 보였는데, 특히 문양과 그릇의 종류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즉 청자주발과 대접, 접시 등 일반적인 생활유물은 물론이고 베개와 타호(唾壺·침뱉는 그릇), 투합(套盒·찬합그릇), 매병, 주전자, 화형반(상판이 꽃 모양인 소반), 향로, 청자판, 합(뚜껑·입이 홀쭉한 그릇) 등이 그것이다. 문양과 시문 기법도 음각, 양각, 상감 등 다양한데 흑상감과 백상감을 동시에 시문하여 화려함을 더하기도 했다. 특히 문양 중에는 용문양과 봉황문, 어문 등이 보인다. 임금과 황제를 의미하는 이들 문양은 다른 유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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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대에서 확인된 청자베개편. 베개가 확인된 곳은 정전이나 편전이 아닌 침전이나 휴게실이었을 가능성이 짙다.|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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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학예사는 “이 7건물지군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청자들은 국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어용(御用)으로 여겨진다”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이 7건물지군은 어떤 건물지군일까. 차(茶)와 관련된 기명(타호·투합·주전자·화형반)과 베개가 집중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정전이나 편전 같은 정사를 돌보는 공간이 아닐 가능성이 짙다, 박지영 학예사는 “임금이 휴식이나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거나 사적인 생활공간, 즉 침전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물론 제7건물지군에 어떤 전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려도경>은 ‘만령전이 침실이며, 양쪽 행랑이 있고 건덕전 뒤편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구가 심하게 훼손돼 있어 더이상의 확인은 불가능했다.

박지영 학예사는 “임금의 침실이 여러곳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7건물지군의 성격을 100%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용·봉황문 문양 등 임금을 의미하는 격이 높은 문양과 특수 기종의 청자들이 집중되는 것으로 보아 임금의 침실과 같은 사적인 공간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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