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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갈기갈기 찢긴 홍콩 지지 대자보···中유학생, 한국 대학 옥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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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한양대서도 홍콩 시위 두고 한중 학생 충돌

중앙일보

11일 오후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부착한 대자보가 훼손됐다. 찢긴 대자보는 인근 쓰레기통에서 조각난 채 발견됐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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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사라졌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노연)이 작성한 이 대자보는 인근 쓰레기통에서 조각조각 찢긴 채 발견됐다.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 ‘고파스’와 ‘에브리타임’ 등에서는 “인근 쓰레기통에 찢어진 대자보가 들어 있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와 대자보를 뜯었다”는 목격담이 돌았다.

다음날 노연은 대자보를 다시 붙이며 “대자보 훼손은 비겁한 행위”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자보 훼손 당사자로 지목된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은 의혹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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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대자보를 보기 위해 몰려든 학생들.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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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유학생 모임 "홍콩 시위는 폭동"



다만 중국 유학생 모임은 “홍콩은 중국의 불가분한 일부분으로서 국가통일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홍콩 동포를 포함한 모든 중국 공민의 책임”이라는 반박 대자보를 써 답했다.

이들은 대자보에서 홍콩 시위대에 관해 "그들의 시위행동을 법률적으로 허가하지 않는 것이고 폭동이라고 하는 것이 과언이 아닌다(아니다). 반대의견을 가진 시민들에게 폭행을 할 뿐만 아니라 가연성 액체를 쏟아져(쏟아) 불태버린(불태워버린) 사건도 있었다"며 "민주가 이런 것인가"고 반문했다.

이어 "시위유행을(시위행렬을 뜻하는 것으로 보임) 참가한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대학생이 아닌다(아니다)"라며 "불법 행위자, 그리고 홍콩 독립주의자와 야심을 가지는(가진) 정치가들이 홍콩이 대륙과 다른 법치제도를 악용하고 파괴하면서 홍콩의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노연은 “중국 정부의 폭력 진압이 문제”라며 재반박했고, 이후 노연 소속 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이 교내에서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기도 했다.

13일 한양대에서도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두고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 간 충돌이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이날 오후 ‘홍콩인들은 민주주의와 정의,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인문대 1층에 붙였는데, 이에 반발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십명이 몰려왔다. 목격자에 따르면 이들간에 잠시 몸싸움도 벌어졌다고 한다.

또 지난해 11월 고려대에선 일부 중국인 학생들이 “교내 외국인 학생 축제(ISF) 부스에서 티베트가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소개되고 있다”며 티베트 망명정부의 ‘설산사자기’가 사용된 것에 대해 반발했다. 중국 학생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주한중국대사관 측은 고려대를 직접 찾아와 공식적으로 후속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대는 “부스 배정 기준은 국적이 아닌 문화로, 본교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한다”며 사과했다. 고려대는 올해 외국인 학생 축제에서 모든 깃발과 지도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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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자신을 중국인이라 밝힌 이들이 서울 연세대학교 교내에서 홍콩 지지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연세대 학생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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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를 계기로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 간의 갈등이 각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를 위해 설치된 ‘레논 벽’에 “너희 한국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냐” “한국 친구들은 중국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등 비난 메모지가 붙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반박 메모를 붙여 대응했다.

연세대에서는 ‘홍콩을 해방하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하루도 되지 않아 철거되는 일이 반복됐다. 몇몇 학생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학생이 현수막을 철거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대학생들 모임'은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대 학생 김모(25)씨는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설치하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존중 받아야 한다"며 "중국인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김모(24)씨는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 있는 만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화하려 들지 않는 자세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6개월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강원대 학생 박모(24)씨는 “주위의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홍콩과 중국은 하나’라는 주장을 하면 깨어 있는 지식인처럼 대접받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만 7만명...대학생 사회 여론 형성



국가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국내 대학(고등교육기관)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16만명(2019년 4월)이다. 이중 중국인 유학생은 약 7만명(43.3%)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 유학생이 대학가에서 하나의 여론을 형성할 정도의 규모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국 유학생 수가 증가하고 중국의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외국에 머무는 중국인들의 자신감도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만큼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의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홍콩 시위는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없는 문제다. 홍콩 사람들의 민주주의와 독립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외세로부터 침탈당한 땅을 다시 뺏기지 않겠다는 중국인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인식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폭력을 사용해 상대방의 입을 막으려는 행위는 대학과 경찰 등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책임을 갖고 교양 교육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과 표현의 자유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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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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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달라이 라마 방문에 중국 학생 반발도



중국인 유학생과 현지 학생 및 학교 측과의 갈등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UCSD)에서는 학교 측이 졸업식 연사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선정하며 중국인 유학생들과 이주민들이 대거 반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중국인 유학생 및 학자 연합회(CSSA)’는 “학교 측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결연히 저항하기 위해 강력한 수단을 취할 것”이라며 LA에 있는 주미중국공관에 문제를 제기했다.

NYT는 또 2008년 달라이 라마가 미국 워싱턴 대학을 방문할 당시, 방문 몇 주 전부터 중국 학생들은 대학 총장을 만나 “(달라이 라마의) 방문에 정치적 목적이 없으며 달라이 라마가 캠퍼스 내에서 어떤 반중국 정서도 불러일으키게 하지 않을 것”에 대한 확답을 구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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