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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쉐린 별’ 현지 코디가 돈받고 달아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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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와 ‘평가 정보 공유’ 의혹 / 2016년 서울판 최초 발간 앞두고 / 미쉐린가이드 현지 코디役 인사 / 컨설팅 계약 맺고 내부정보 알려줘 / 기밀 유지 요구한 계약서 쓰기도 / 컨설팅 받은 식당들 3스타 받아 / 미쉐린측 “우리 소속 직원 아냐”

세계일보

미식업계의 바이블로 불리며 올해로 발간 119년째를 맞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높은 평가 등급을 받은 일부 식당들이 미쉐린 가이드 측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와 거액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사전에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의 방문 정보와 정부의 예산지원 사실 등을 전달받고 평가를 대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인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제작 과정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식당에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12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미쉐린이 2016년 11월 한국에서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발간을 준비하는 동안 일부 식당들은 미쉐린 가이드 측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인사와 연간 5000만원 상당의 컨설팅 비용과 항공료·숙박비 등을 부담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사전에 미쉐린 가이드의 한국판 발간 사실을 입수, 익명의 평가원(인스펙터) 방문 사실 등도 공유받으면서 평가 준비를 해왔다. 현지 코디네이터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A호텔의 B식당과 C사의 D식당 두 곳은 2017∼2019년 3년 연속 가장 상위 등급인 별 셋을 받았다.

미쉐린 측은 미쉐린 가이드 발간 2년 전부터 한국시장 진출을 준비했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와인 판매상으로 미쉐린 가이드의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온 미국인 어니스트 싱어로부터 식당 개점 제의를 받은 윤경숙 ‘윤가명가’ 대표는 2014년 11월 서울 도심에 한식당 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싱어로부터 미쉐린 가이드의 한국판 출간 계획과 정부와의 협상 내용, 평가원들의 한국 방문 일정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았다. 싱어가 알려준 정보는 미쉐린 가이드 내부자만 알 수 있는 정보로, 실제로 가게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미쉐린 평가원들이 식당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윤 대표는 한국관광공사가 미쉐린 가이드 작성에 20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정보도 사전에 공유받았다. 싱어는 2015년 2월 윤 대표 측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한국관광공사가 가이드 비용으로 예산을 지원한다. 4월까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는 미쉐린 가이드 발간 전 1억3000만원, 2016년부터 4년간 매년 4억원 등 총 20억원 규모의 예산을 지급했다가 2017년 뒤늦게 국회 국정감사에서 예산 낭비 지적을 받았다.

특히 싱어는 윤 대표에게 미쉐린 가이드 평가를 위한 자문 명목으로 항공료·숙박비 등을 포함한 5000만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요구했다. 싱어는 이어 홍콩 소재의 한 회사와 대리인을 내세워 윤 대표와 컨설팅 비용으로 연간 4만달러(약 4600만원)와 기타 비용을 지불하는 계약서를 맺었다. 계약서에는 기밀 유지 내용도 포함됐다. 윤 대표는 “싱어는 ‘3개의 식당과 일하고 있다. 다 같은 조건을 제안하고 있다’며 미쉐린 가이드의 좋은 평가 결과를 위해 협박과 권유를 섞어 계약 체결을 종용했다”며 “별 3개를 받은 업체들도 해당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우리에게 계약을 체결하라고 압박을 넣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계약서 체결 후 미쉐린 가이드 평가 공정성 문제를 우려해 계약금 납부를 거부, 계약이 자동 취소됐다. 이후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서 윤 대표의 식당은 어떠한 평가 등급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싱어는 미쉐린 소속 직원이 아니다. 미쉐린 가이드와 어떤 관계인지 확인 중”이라며 “미쉐린 가이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독립성이다. 평가원이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서 영리를 취하는 활동 방식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해명했다. 싱어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다각도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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