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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메스 내려놓고… 안마의자 연구하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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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의사가 병원에서만 일하라는 법 있나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고 과감하게 가운을 벗었습니다."

조수현(47) 바디프랜드 메디컬R&D (연구개발)센터장은 2015년까지 강북힘찬병원에서 의무원장을 지낸 외과의사다. 한양대 인공관절 전임의를 거친 그는 관절 수술 잘하기로 유명해 멀리서도 환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본사에서 만난 조 센터장은 "잘 다니던 병원을 관두고 기업에 취직한다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가 심했다"며 웃었다.

조선비즈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본사에서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메디컬R&D(연구개발)센터를 이끄는 조수현(사진 가운데) 센터장과 함께 일하는 의사들이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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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의사가 안마의자 연구자로

조 센터장의 의사 인생을 바꾼 것은 2015년 박상현(44) 바디프랜드 대표와의 만남이었다. 회사 내 메디컬R&D센터를 만들려던 박 대표는 당시 센터를 이끌 적임자를 수소문하고 다니던 참이었다. 조 센터장은 "외과의사가 안마의자 만드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을 안고 박 대표를 만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에게 박 대표는 다짜고짜 "무조건 현재 연봉에서 20%를 높여 주겠다"고 제안했다. "도대체 왜?"라고 묻는 조 센터장에게 박 대표가 말했다. "안마의자의 효과에 대해 아무도 과학적 연구를 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 의료진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안마의자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돈 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 의사들이 의학 지식을 기술과 결합하는 연구에 뛰어들어 더 많은 사람의 건강을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센터장은 2016년 3월 메스를 내려놓고 연구자로서 바디프랜드에 합류했다. 그는 영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박 대표보다 연봉이 높은 유일한 사내 인사다.

메디컬R&D센터의 핵심 연구 주제는 안마의자와 혈액 순환·수면·소화·두뇌 피로 등 사용자의 건강 사이 상관관계를 찾는 것이다. 조 센터장은 바디프랜드로 옮긴 후 의사들을 추가로 영입했다. 안마의자를 주요 제품군으로 하는 헬스케어 기업 중 R&D 조직에 의사가 있는 곳은 바디프랜드가 유일하다. 조 센터장을 포함해 신경외과, 한방재활의학과, 내과, 치과, 정신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 8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뇌공학박사·간호사·의료기기 제품 설계사 등을 합쳐 총 25명이 가히 '종합병원급' 진용을 이뤘다. 이들은 연구 틈틈이 직원들에게 무료 진료도 제공한다.

◇8명의 의사 포함한 종합병원급 진용

R&D센터는 설립 3년 만에 굵직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수면 프로그램'(수면상태에 따라 안마 세기와 각도를 자동 조절)은 특허로 등록됐다. 안마를 통해 두뇌에 더 많은 혈액을 돌게 하는 '브레인 마사지'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바디프랜드 관계자는 "브레인 마사지는 SCI급 저널에 게재됐다"고 했다. 조 센터장은 "매일 비슷한 치료를 반복하는 병원과 달리 회사는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보여야 하는 곳"이라며 "타성에 젖기 쉬운 삶을 살다가 기업에서 처음 겪어보는 보고의 압박은 의사로 살아온 삶에 새로운 자극제였다"고 말했다.

메디컬R&D센터의 성장과 함께 바디프랜드의 실적도 지난 3년간 급속도로 성장했다. 센터가 출범하기 전인 2015년 2636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504억원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안마의자에 전문 의료진이 임상 실험을 통해 직접 연구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조 센터장이 이끄는 R&D센터는 내년 상반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메디컬 안마 프로젝트'라는 새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의자가 사용자의 혈압·체성분·심박수 등을 자동으로 체크해 빅데이터로 쌓은 뒤 평소와 다른 징후가 나타나면 "질환이 의심되니 병원에서 진료를 받길 추천한다"고 안내해주는 기술이다. 조 센터장은 "해외에서는 의사들이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아직 드물다"며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광범위한 사용자가 건강한 삶을 오래 누릴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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