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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왜 ‘선넘규’에 빠졌냐고? 꼰대·갑질 가뿐히 넘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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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청문회]<1>선을 넘는 장성규

편집자주 :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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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규의 통쾌한 발언들.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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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틀을 깨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선넘규’라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장성규.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화제성에서 첫 주자로 선정한 인물입니다. 2011년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에서 처음 대중에 얼굴을 알린 그는 JTBC 아나운서로 입사한지 7년 만에 프리랜서를 선언, 현재 유튜브와 예능, 라디오를 오가며 활약 중인데요. 특히 ‘세상 모든 JOB것들을 리뷰’한다며 그가 아르바이트로 직업을 체험하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은 구독자수가 무려 326만명(11월 8일 현재)을 기록할 정도입니다. 영화관, 키즈카페, PC방, 놀이공원 등 밀레니얼 세대에게 친숙한 ‘알바’ 장소에서 하루 동안 일하며 젊은 알바생들의 애환을 온몸으로 겪습니다. 상사, 손님, 고용주 등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풍자 방식은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뒤에서 자조적으로 분을 삭이는’ 밀레니얼 감성과 묘하게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알바ㆍ취준ㆍ갑질 2030 공감 콘텐츠 ‘장성규의 재발견’

마이마이= 난 이번에 ‘워크맨’을 처음 봤는데 재밌던데. 장성규 특유의 입담이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잘 드러난 듯 해. 지상파 방송에서는 그렇게 재미있게 살려낼 수 있었을까? 편집 방식부터 짧은 영상 길이까지도 2030을 잘 공략한 콘텐츠 같아.

미트볼 샌드위치(이하 미트볼)= 나도 ‘워크맨’이 타깃을 잘 잡았다고 생각해. 컷이 빨리 돌아가고 자막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젊은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잖아.

피곤한 칸트(이하 피칸)= 우리가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아르바이트를 체험 하는 거잖아. 나도 카페 알바를 한 적이 있으니까 공감이 가더라.

마이마이= 변호사나 의사처럼 괴리감 있는 직업이었다면 이렇게 반응이 없었을 것 같아.

숭례문 뽀글이= 난 최근에 장성규가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취업컨설팅 해 준 영상이 기억에 남아. 장성규 본인이 공무원이나 회계사 준비도 해보고 아나운서도하면서 도전해 본 게 많잖아. 직접 경험해봤으니까 해줄 말도 많고, 그 말들이 더 진솔하게 느껴졌어. 장성규의 재발견 같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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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직 노동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장성규. '워크맨'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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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바할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날펭= 직장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짠하면서도 공감이 갔어.

피칸=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카페에서 주말에 하루 9시간 알바를 했는데 사장님이 ‘점심시간 외에는 손님이 없어도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더라고. 점심시간이 30분이었는데 그러면 8시간 30분 내내 서 있으라는 말이잖아. 같이 일하던 선배 알바생은 CCTV로 감시하고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첫 알바니까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찍소리 없이 하루 종일 서서 일했어.

할많하않= 난 ‘음악방송 조연출 리뷰’ 편에 엄청 공감이 가. 장성규가 거기서 ‘워크맨’ 인턴인데 JTBC 음악방송에서 조연출을 하는 친구를 만나잖아. 그때 장성규가 “어, 현희(인턴)야. 너 왜 여기 있어? 투잡이야?”라고 말하는데 인턴이 “인턴이라서 시키는 거 해요”라고 답하잖아. “돈 두 배로 받냐”고 물으면서 “한 배로 받아? 우리 한 배를 탔네” 이런 부분. 엄청 웃기면서도 씁쓸했어. 인턴도 그 일에 뜻이 있고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런 고려 없이 ‘막 굴려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은 듯해.

마이마이= 영상마다 마지막에 돈을 정산하면서 ‘생각보다 돈 얼마 안되네’라고 하잖아. 편의점은 밥값도 안 주고.

미트볼= 나도 알바비를 세는 게 뼈가 있다고 생각했어. 건설현장 일용직 알바 했을 때는 일급으로 받은 돈을 센 다음에 ‘1년 동안 내가 이거를 한 푼도 안 쓰고 아이들한테 옷 하나 안 사주고 이렇게 모아도 래미안 아파트 한 평도 못 산다’고 말하잖아. 나도 친구들이랑 모이면 ‘매일 숨만 쉬고 돈만 모아야 아파트 살 수 있다’고 얘기해.

숭례문 뽀글이= 난 술집에서 알바한 적 있어. 알바 중간에 밥 먹다가 벨이 울려서 계속 주문을 받으러 갔어. 손님들이 계속 부르니까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한 거야. 그런 상황에서 장성규는 ‘먹으라는 거야 일하라는 거야’라고 말하잖아. 내가 알바할 때 완전 하고 싶었던 이야기야.

미트볼= 그게 사실 손님들 잘못이 아니라, 밥 먹을 시간을 안 주는 사장님 잘못이잖아. 그렇게 일해도 정산하면 한 시간에 8,350원(최저시급)이야. ‘의류 매장 알바’를 봐도 알바할 때 입어야 할 옷을 다 본인 돈으로 사야 하잖아. 결국 일급에서 옷값을 빼면 마이너스(-) 1만7,350원인거야.

할많하않= 옷 가게에서 알바를 구할 때 처음부터 그런 걸 고려해서 뽑더라. 나이키 매장 알바 같은 경우 나이키 신발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 이게 우대사항이더라고. 황당한 건 직원 복지 차원에서 공짜로 제공한다 해놓고 퇴사를 할 때는 옷값을 빼고 주는 경우도 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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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규가 PC방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는 모습. '워크맨'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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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발언 통쾌하지만… “을은 참는다”

미트볼= 장성규가 선배 알바생한테 ‘여기 제일 진상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게 좋았어. 나도 알바를 이것저것 해봤는데, 진상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

마이마이= ‘항공사 직업 리뷰’ 영상 보면 스튜어디스가 손님한테 햄버거로까지 맞는다는 얘기가 나와. 거기서 항공사 직원이 ‘햄버거는 맛있는 거잖아요’라고 받아 치고. 실제로 스튜어디스인 내 친구도 손님이 던진 물건에 맞아 봤다고 하더라.

피칸= 나도 공감이 갔어. 직업이 안 겹쳐도 입장은 나랑 비슷하니까. 또 아무리 사내 분위기가 수평적이라고 해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잖아. 예를 들어 상사가 술을 권할 경우, 술을 강요하진 않아도 되도록이면 분위기 맞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마시게 돼. 우리가 보이는 모습들이 다 평가 대상이 된다고도 생각하니까 언행에 조심하게 되고.

날펭= 그런 상황에서 장성규는 당당하게 속마음을 얘기해주는 게 너무 통쾌했어. 우리가 감히 못 하는 선택지를 장성규가 대신 해주니까, 대리만족하는 느낌이야.

마이마이= 내 주변 또래를 보면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보여. 무책임하다기보단, 자기가 맡은 일 외에 부담을 지기 싫어한단 거지. 근데 사회에 나오면 상사를 만나는 것부터 회식자리까지 모든 게 책임의 영역이잖아. 업무나 메신저 하나하나 신중해야 하고. 업무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그런 스트레스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냥 눈치보지 않고 행동하고 싶다는 심리를 장성규가 대신 채워주는 듯해.

할많하않= 조직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만이 있어도 참거나 싫어도 웃어야 할 때도 많잖아. 특히 우리는 을의 입장이고 갑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장성규는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

날펭= 워크맨 속 장성규의 태도가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권위주의를 더 거부한다거나….

할많하않= 난 아니라고 생각해. 장성규를 보면서 속 시원함을 느끼긴 하지만, 우린 내일이 있으니까. 현실에서 내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해.

숭례문 뽀글이= 맞아. 웃고, 댓글 달고, ‘아, 내일 출근이다’ 하고 잠드는 정도 아닐까.

피칸= 알바할 때 손님들이 반말을 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해도 난 웃으면서 참았어. 내가 절대적 ‘을’인 알바생이기 때문이었지. 잘리거나 미움 사는 걸 각오하지 않는 이상은 참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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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에서 알바를 한 후 힘이 들어 상사에게 역정을 내는 장성규. '워크맨'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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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선 넘으니까 열광한다

할많하않= 댓글을 보면 장성규가 애 아빠인지 모르겠단 이야기를 많이 해. 철도 없고 막 행동하는 것 같다는 거지. 어려운 일을 두고 ‘나 못하겠어’라거나 상사한테 ‘대가리 박아’라거나. 장성규가 선을 넘나든다고들 하던데, 나는 장성규가 선을 넘나들면서 깐죽거리는 대상이 직장상사나 고객처럼 우리가 평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선을 넘는 게 좋았어.

피칸= 맞아. 장성규가 체험하는 게 을의 입장이고 흙수저 청년이라고 생각했어. 선을 넘는 발언들이 을이 갑한테 하는 거니까 ‘사이다’였어.

할많하않= 만약 장성규가 선을 안 넘나들었다면 이만큼 인기가 없었을까?

부자되고싶다= 선을 넘는다는 게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할많하않= 사람과 사람 간에 지켜야 할 예의를 무시하는 거?

날펭= 난 한편으로 ‘선넘규’에 대한 인기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어느 세대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민감하게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선을 넘는 데 열광하기도 하잖아.

숭례문 뽀글이= 선을 넘는 데도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 하나는 권위에 도전하는 거. 이건 우리가 취준생이나 직장 막내로서 느끼는 부당함을 잘 짚어내서 통쾌해. 다만 욕을 하거나 19금 드립으로 선을 넘는 건 좀 불편해.

피칸= 맞아. 단순히 ‘선을 넘는다’고 뭉뚱그려 얘기할 게 아니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열광하는 건 권위주의의 선을 넘는 거 아닐까?

미트볼= 맞아. 장성규가 상사한테 ‘시키면 하세요 좀’이라고 말하는 건 조직 내부의 수직 구조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통쾌하고 재밌었는데, 다른 프로그램에서 한 성희롱성 발언은 오히려 남녀 간에 위계 질서를 더 강하게 만드는 거 같아서 불편했어.

날펭= 장성규가 선을 넘나들면서 편하게 말 하는 게 정치적 올바름을 귀찮게 생각하는 일부한테 힘을 실어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

할많하않= 난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어. 그 정도 욕설은 친구들끼리 쓰는 말이니까 오히려 장성규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 19금 드립은 이전에도 지상파에서 접할 수 있었던 수준 아냐? 남성 연예인이 나와서 복근 공개하면 중년 여성 출연진이 ‘복근에 빨래하고 싶다’거나 ‘집 사주고 싶다’ 이런 발언들 말야. 19금 드립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부적절한 선을 넘었다는 주장엔 고개를 갸웃하게 돼.

피칸= 선을 정의하는 게 쉽지는 않아. 좀 더 평등해지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수직적인 선을 넘는 건 무례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지만 예의의 선을 넘겼을 때는 불편하지.

할많하않= 예의의 선을 넘지 않되 권위의 선을 넘는다?

날펭= 난 그게 애매해 보여. 상사나 선배가 조금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제안을 할 때 내가 받아들이는 건 꼭 권위에 순응해서만은 아냐. 직장 선후배 사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잖아.

미트볼= 그러고 보니 난 최근에 부당한 권위의 선을 넘은 것 같아. 선배들이랑 식당에 가면 먼저 수저를 깔고 물을 따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거든. 근데 처음 식사자리를 같이 한 선배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 사실 그런 게 막내는 번거롭고 상급자는 부담스러운 문화잖아. 요샌 수저는 먼저 깔아도 물은 안 따라. ‘목 마르면 알아서 따라 마시겠지’ 생각하기로 했어.

◇꼰대가 있는 한 선 넘는 캐릭터는 계속된다

할많하않= 요새 장성규만큼 핫한 캐릭터가 펭수(EBS의 펭귄캐릭터)잖아. 펭수도 선을 넘는다고들 하던데. 펭수 좋아해들?

숭례문 뽀글이= 엄청 좋아! 나는 펭수가 EBS연습생이 되려고 오디션 보는 영상이 제일 좋아. 심사위원이 ‘결과는 다음주에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펭수가 ‘아니, 지금 알려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잖아. 또, 감히 사장 이름도 호명하고. 그게 펭수의 정체성 아닐까? 생각지 않게 선을 넘어버리는 거. 장성규랑 비슷한 지점도 있는 듯 해.

미트볼= 유병재도 장성규보다 먼저 선 넘는 캐릭터로 인기 얻었던 것 같아. 우리가 불만을 갖고 있던 부당한 구조에 대한 저항도 보여줬고. ‘경력직만 뽑으면 난 경력을 어디서 쌓아’ 이런 말들. 자조적 캐릭터가 밀레니얼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어.

날펭= 이런 선 넘는 캐릭터의 인기가 얼마나 갈까?

숭례문 뽀글이= 계속되지 않을까? 요새는 10대 때부터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 그들이 대학을 가고 취업준비를 할 때가 오면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문화가 더 강해질 것 같아.

할많하않= 이렇게 기득권층을 거부하는 캐릭터는 예전에도 있었잖아. 우리가 나이를 먹고 기득권이 되면 또 그 때는 더 어린 친구들이 열광하는 비슷한 캐릭터가 생길 거야. 지금이야 586세대가 그 대상이지만, 그 다음엔 우리가 될 수도 있겠지.

피칸= 우리가 만약 갑이라면 장성규를 재밌게는 못 볼 것 같아. 을의 입장이니까 선 넘는 캐릭터가 재밌는 걸 수도 있어. 지금 꼰대들이 장성규를 봤을 때 우리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할많하않= 찔릴걸?

정리= 이미령 인턴기자

참여= 김민준, 노희진, 도희연, 윤소정, 이미령, 임태형, 한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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