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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3명이 16명을…北 어선 엽기살인 8가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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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태범 기자] [the300]나포에서 추방까지 속전속결, 증거는 모두 사라져

머니투데이

통일부가 공개한 북한 선박의 모습



북한 어선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해상 살인사건, ‘북한 선원 3명이 동료선원 16명을 죽였다’는 스릴러 영화와도 같은 이번 사건을 놓고 정부가 이들의 추방 조치를 하기 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됐다. 정부가 북한주민 2명(다른 1명은 북한에서 붙잡혔다고 설명)을 지난 7일 강제추방한데 이어 8일에는 이들이 타고 온 어선도 북측에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사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①실제 살인이 가능했나 - 3명이 16명을 죽였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단 3명이서 16명의 선원을 살해하는게 가능했냐는 부분이다. 이들이 탔던 어선은 길이 15미터의 작은 목선이다. 총 19명이 타고 있는 15미터의 작은 선박에서 혈흔이 튀고 큰 소리가 발생하는 둔기 살인을 들키지 않고 저질렀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특히 정부가 어선을 북측에 인계하며 공개한 사진을 보면, 어선 맨 앞 위치에서 뒷부분이 보이는 구조였다. 선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취침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둔기로 가격하고 사체를 바다에 빠트리는 일련의 행위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들이 ‘순차 살인방법’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진술에 따르면 3명은 10월말 어느날 밤 가혹행위를 지속해온 선장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우선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2명의 선원을 죽였다.

이후 조타실로 가서 선장을 살해했다. 좁은 공간으로 인해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는지 선장은 첫 가격에도 몸을 일으켰다. 이에 다른 공모자가 곧바로 두 번째 가격을 가해 살해한 뒤 시체를 바다에 유기했다고 한다.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보복이 두려워 남은 13명도 모두 죽였다. 취침 중인 선원들을 40분 간격으로 2명씩 깨워 배 위로 올리면 선두와 선미에 대기하던 2명이 가격하는 방식으로 살해가 이뤄졌다. 총 16명에 대한 살인은 해가 뜨기 전에 마무리됐다고 한다.

범행을 주도한 2명이 20대로 젊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선장 살해 이후 4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들키지 않고 13명을 차례로 죽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둔기 살인의 경우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②제대로 된 조사를 했나 - 정부, 혈흔감식 안하고 소독


정부 중앙합동조사본부가 이들의 혐의를 제대로 조사하고 입증했는지 여부도 쟁점이다. 북한 어선이 지난 2일 오전 우리 군에 나포됐을 당시는 범행도구와 시신이 모두 바다에 유기돼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고 정부는 밝혔다.

선박에서 혈흔이 발견됐지만 정부는 해당 혈흔에 대한 정밀감식도 안했다. 선박 내부를 단순히 육안으로만 확인하고 배를 돌려줬다.

더군다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국정원으로부터 소독 및 검역 요청을 받고 선박·선원에 대한 소독까지 했다. 혈흔감식 등 증거수집·보존조치를 하지 않고 선박을 소독한 것은 증거를 인멸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있다.


③정부 발표 외 아무런 증거가 없다 - 진술에 의존한 사건


정부가 살인 혐의를 확신한 것은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서다. 살인에 대한 일관된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정보당국은 SI정보(Special Intelligence·특수정보)를 통해 어선 내 살인사건 정황을 사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SI는 북한의 유무선 교신을 도·감청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다. 정보당국은 북한 당국이 이들 2명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특수정보가 살인자에 대한 추적인지, 단순 귀순자에 대한 추적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정부가 제시한 2가지 범죄혐의 확신 증거, 진술과 SI정보를 일반국민들이 믿어도 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정보사안’을 명분으로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실체적 진실을 충분히 왜곡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④선원들이 존재는 하나 - 선박은 유령선?


정부가 북한주민 2명의 판문점을 통한 추방 장면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의심을 키운다. 정부는 다른 북송 사례에서는 북한주민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뒤 송환 장면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추방의 경우 정부가 공개한 선박을 제외하고 선원들의 모습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하나도 없다. 몇 명이 타고 왔는지, 몇 명을 죽였는지 진술로 확인했다지만 그 진술을 했다는 선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⑤왜 먼저 공개하지 않았나 - ‘은폐·축소’ 의혹의 출발점


이번 사건은 지난 7일 오전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모 중령에게 받은 문자메시지가 뉴스1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알려졌다. ‘북한주민 2명을 오후 3시 판문점에서 송환한다’는 내용이다. 발신인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 확인됐다.

사진기사 형식으로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북한주민의 송환에 관한 이야기는 정부·언론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사가 뜬 이후 송환 업무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오후 4시로 언론 브리핑을 준비했다.

그날 마침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등 외교안보 관련 상임위가 열리는 날이었다. 사진기사를 접한 야당이 ‘강제북송을 멈춰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슈화됐다. 통일부는 오후 3시 40분으로 앞당겨 브리핑했다.

뉴스1이 김 1차장의 스마트폰 화면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그 사진을 토대로 국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다면 정부가 이번 사건을 조용히 묻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는 의심도 든다.


⑥왜 청와대 문자에는 ‘살인’ 언급이 없었나 - 핵심키워드 빠진 보고


이번 사건의 핵심 키워드는 ‘살인’과 ‘추방’이다. 북측에서 내려온 주민들이 귀순의사를 표시했지만 정부는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죄자들을 우리 사회에 편입할 수 없다”며 이들을 추방했다.

그런데 ‘문제의 청와대 문자’로 되돌아가보면 JSA 대대장이 김 차장에게 보낸 내용 중 어디에도 ‘살인’이라는 단어가 없다. 추방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고 ‘송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전에 보낸 문자에서 사용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JSA 대대장이 “송환될 예정인 북한주민들은 지난 11월 2일 삼척으로 내려왔던 인원들”이라며 처음 설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해당 문자는 판문점 송환을 맡고 있던 JSA 대대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패싱’해 가면서 청와대에 직보(직접보고)한 내용이다. 첫 보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살인·추방’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⑦자해 위험, 그리고 경찰의 에스코트


JSA 대대장은 김 차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북한주민 2명의 판문점 송환 계획을 전하며 “자해 위험이 있어 대한적십자사가 아닌 경찰이 에스코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해(自害)’란 자신의 몸을 해치는 행위다. 북한주민들이 북측으로의 송환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이들의 송환에 관례대로 적십자사 직원이 아닌 경찰을 배치한 것은 자해 행위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경찰의 ‘에스코트’다. 경찰 내부 경호 규칙에 따르면 에스코트는 해외 유력 인사들이 방한할 때 상대국 요청에 따라 이들의 동선을 호위하는 경우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경찰이 ‘동행한다’고 표현해도 되는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에서 요인 경호용 단어인 ‘에스코트’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살인·추방이라는 단어가 빠진 JSA 대대장의 청와대 보고, 에스코트라는 표현은 여러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⑧통일부-국정원 입장차?


JSA 대대장의 청와대 보고 문자에는 “이번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간 입장정리가 안 돼 오전 중 추가 협의 예정”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리할지를 놓고 이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지난 2일 북한주민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5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이들의 송환 방침을 통보했다. 북한은 6일 수용한다는 답변을 보냈고 7일 추방이 이뤄졌다.

16명 살인이라는 유례없는 초대형 사건임에도 나흘 만에 끝난 정부의 조사, 엿새 만에 이뤄진 추방이다. 통일부와 국정원의 입장차는 이 같은 ‘속전속결’ 절차 속에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의 경우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보호와 정착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귀순을 희망하는 이들에 대한 국내 보호를 주장했을 수 있다. 반면 국정원은 모종의 ‘판단’에 따라 북한 추방을 요구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3차례 성사시키며 남북관계 개선을 사실상 주도해온 국정원이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고려해 북한주민들에 대한 빠른 추방을 성사시키려고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통일부는 9일 국정원과의 입장차 논란에 대해 “실무 절차적 문제 협의였다는 점을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북한주민의 첫 추방 사례라는 점에서 실무적 절차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8가지 미스터리의 핵심…믿느냐 믿지 못하냐


결국 이번 사건의 시작과 끝은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 여부로 귀결한다. 믿는다면 정부는 북한주민이 귀순의사를 표시했더라도 ‘흉악범죄자는 안 된다’는 원칙을 처음 보여준 것이 되고, 믿지 못한다면 정부가 정치적 의도로 헌법상의 우리국민을 희생시킨 것이 된다.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은 사건, 말로만 확인된 사실들 속에서 정부가 여러 미스터리를 해소하려는 구체적인 입증 노력에 나설 것인지, 과거 ‘북한 여종업원 기획탈북’ 논란 때처럼 새로운 의혹을 만드는데 그칠 것인지 정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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