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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동독 주민은 패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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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인의 독일통일 이야기 ⑧] 1989년 11월 9일 장벽 붕괴... 동독 주민들이 여전히 느끼는 박탈감

2000년대 후반의 베를린, '동독의 새로운 주역(Actor)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한 정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였다. 동서독의 내적 통합 현황에 관한 발제가 끝난 후 토론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토론자가 대뜸 발제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

발제자가 어디 출신인지 모르지 않았을 것임에도 갑자기 튀어나는 질문에 순간 분위기가 묘해졌지만 이내 세미나는 계속 진행되었다. 통일 후 10여 년이 지난 즈음, 여전히 혹은 당연히 발견되는 동서독의 차이에 대한 동독 주민의 입장을 논하던 가운데 벌어진 작은 돌발 상황을 접하며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단어는 '승자'와 '패자'. 통일 후의 상황을 조목조목 얘기하는 토론자의 모습에서 마치 나라를 빼앗긴 사람의 심정을 읽는 듯했기 때문이다.

'승자'와 '패자'.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이 의도하지 않게 처했던 관계의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벅찬 감격과 감동 속에서 양측은 하나가 되었지만 현실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통일 후 동서독 체제가 통합되는 과정, 정확히 말해 서독체제가 동독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한쪽은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될 것을 요구받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되어야 했던 측과 새 사람이 따라야 할 '전형'이 된 측 사이에서, 갈등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갈등은 통일 초반, 동독이 새로운 조력자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서독에서 온 조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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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장벽 붕괴.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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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이후 동독체제의 개편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서독체제를 동독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체제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서독 출신 인력이 대거 동독 지역에 투입되었다. 대표적으로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반, 행정 분야의 개편을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서독 인력 1만 5000여 명이 동독 지역에 파견되었다. 또한 1만여 명은 구동독의 지방자치단체에, 1500여 명은 주단위의 기관에 파견되었다. 반대로 8000여 명의 동독 인력이 서독지역에서 근무하였다.

대체로 현직 공무원이나 공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은퇴자 등을 중심으로 동독지역 근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력이 파견되었다. 파견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유능한 인력이 구동독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 이처럼 중앙 뿐 아니라 지방 차원의 체제 개편을 위한 인력 파견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구동독의 행정 체계 재편이 추진되었다.

유사한 방식으로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주요 체제 개편을 위해 서독 인력이 광범위하게 동독지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정보 제공, 자문과 같은, 체제 개편과정에서 동독 인력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동독 각 분야의 개편이 빠르게 이뤄졌고, 1990년대 초·중반, 각 분야의 체제개편이 완수되었다.

개혁의 주체, 개혁의 대상?

동독 체제 개편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기간에 급격히 이식된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력의 도움이 절실했고, 서독 출신 인력들이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다. 서독 측 파견 인력은 통일 초기, 열악한 여건에서도 새로운 체제로의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동독 지역 근무를 자원했다. 이를 통해 동서독의 상이한 체제가 단기간에 통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체제 통합이 진행되고 동서독 주민의 접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일부 서독 출신 인력이 보인 점령군과 같은 태도에 동독 주민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동독 주민이 보기에 서독 측 인력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한참 전에 은퇴하였거나 서독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해당 분야의 실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수하고 유능한 인력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서독에서 자리가 없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동독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일부 서독 인력이 동서독의 관계를 일순간에 교사-학생의 관계로 만들었고, 동독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듯이 동독 주민을 부족한 인간으로 취급하였다. 동독을 망한 체제와 동일시하며 "당신들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독 인력 앞에서 동독 주민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입장으로 전락하였다. 마치 패배자인 것처럼.

배제된 동독의 엘리트

동독 주민이 패배자 감정을 느끼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체제 개편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동독 각 분야의 주요한 지위를 대거 차지한 반면, 동독 인력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에 있다. 서독 출신 인력이 각 분야의 개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야별로 상이한데, 경제 분야에서는 서독 출신이 주요 위치를 거의 대부분 차지하였다. 통일 후 동독 기업, 산업이 대부분 파산절차를 거친 후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이 대거 기용된 까닭이다. 서독에서 주요 직위는 대체로 해당 분야의 오랜 경험을 가진 인사가 기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제, 금융 분야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독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반면, 연방의회를 비롯한 정치 분야에서는 동독 출신이 높은 비율로 포진하면서 동독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동독 출신 인사가 연방의회의 주요 상위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낮았지만, 적어도 엘리트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서 동독 출신의 비중은 높았다. 그러나 중앙 행정부, 학계 등은 동독 출신 인력이 저조한 비율로 포진하였다.

전체적으로 통일 초반, 정치 분야(32%)를 제외한 전체 독일의 주요 분야에서 동독 측 인력이 포진하고 있는 비율은 12% 정도로 나타나, 전체 인구에서 동독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2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주민들은 '승자'인 양 행동하는 서독에 대해 '패자'와 같은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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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워져 있던 베를린 곳곳에 상징으로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 표시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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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주민들은 동독체제의 개혁을 희망했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서독으로의 빠른 통합을 희망했다. 결과적으로 통일 직전에 치른 전체 동독선거에서 빠른 통일을 추진하는 정치 세력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을 붕괴한 체제 출신의 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데 스스로 기여했고 그렇기 때문에 통일 이후 통일된 사회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체제 개편 과정에서 서독 출신 인력은 새 시대의 주인인 양 주도권을 쥐고 가르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아무것도 배울 것 없는 동독을 빨리 정리하고 서독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러한, 동독의 것은 전부 틀린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동독 주민들은 깊은 반감을 보였다. 체제가 그랬으니까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쉽게 단정하는 태도에 대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큰 좌절감을 느꼈다.

여전히 바뀌지 않은 상황

통일 30년이 가까워 오면서 체제 개편이 이뤄지던 통일 초반의 혼란과 갈등은 점차 줄어들었고 동독 주민들도 어느덧 새로운 체제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서독 출신이 통일 독일을 주도하고 동독은 배제되어 있는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2017년 조사 결과, 16개 연방주 헌법재판소장 가운데 동독 출신은 1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서독 출신이었다. 학계도 마찬가지여서 89개의 국립대학 총장 가운데 동독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연방정부의 각료(Staatsekretaer) 64명 가운데 동독 출신은 단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서독 출신이었다. 연방정부 각 부처의 실장급(Abteilungsleiter) 고위 공직자 109명 가운데 4명만이 동독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증시(DAX)에 상장된 상위 30개 대기업의 총수 가운데 동독 출신이 아무도 없는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통일 이후 동독의 엘리트 계층이 서독에 의해 교체·대체되면서 서독 출신이 주류를 차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서독 출신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독 주민들은 적지 않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런 상황은 능력에 따른 차이를 넘어 동·서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통일 사회

동·서독 간, '승자'와 '패자' 등식이 여전히 유효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의 상황은 동독의 서독 편입 방식으로 이뤄진 독일 통일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서독 주도의 통합이 이뤄지면서 통일의 주체가 아닌 주변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동독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동독 지역에 소재한 괴를리쯔 대학 사회학과 콜모르겐 교수는 "동독 출신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극우 성향의 정당이 동독지역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사회의 엘리트집단으로부터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동독주민들이 단순히 그것을 인식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집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체제 변혁의 주도 세력에서 '실패한 체제의 후예'로, 통일 독일의 '배제된 주류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독의 상황은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많은 과제를 제시한다. 통합의 동등한 주체로서 양측이 새로운 사회를 함께 만드는 것 뿐 아니라,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 없이 양측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아빠 찬스'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는 횡행한 근래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에게 통일은 미래의 과제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문제이다.

강구섭 기자(mcumlau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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