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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 돈 문재인 정권, 공수처 설치 뜻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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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게 몇 가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도 그렇다. 공수처 설치는 대선 때 노무현 후보뿐 아니라 이회창 후보도 같은 공약을 했다. 오히려 이회창 후보 공약이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법안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중략)… 당시 국민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말기에 나타난 대통령 아들 비리 사건과 권력형 비리를 보면서 굉장한 분노와 특단의 대안을 요구했다. 공수처 공약은 당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국민의 지지여론이 높고 양대 후보가 함께 제시했던 공약인데도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가 생겼다. 공수처의 수사대상 때문이었다. 대통령 주변 측근과 친인척, 청와대 주변 권력형 비리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기본 대상이다. 그 외 고위공직자들도 모두 망라된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포함됐다. 국회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문재인의 운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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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제11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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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고비처’로도, ‘공수처’로도 불렸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제 임기의 절반을 남겨놓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핵심과제로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책에서도 밝혔듯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공수처 설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안만 10여 건 넘게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공수처는 지난 23년간 실패의 역사만 갖고 있는, 그래서 검찰의 비대해진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설로 남은 유물인 셈이다.

공수처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은 참여연대가 1996년 11월 7일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을 하면서부터다. 검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된 공수처를 신설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리만 따로 수사하자는 내용이 당시 부패방지법에 담겨 있었다. ‘검찰은 권력형 부패범죄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기소할 수 없다’는 전제가 담긴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당시 국회의원 151명과 시민 2만3521명의 찬성 서명을 받고, 부패방지기본법이라는 수정안도 도출했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2001년 6월 28일 부패방지법이 제정됐지만 공수처 설치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참여연대는 2002년 7월 18일 다시 공수처 신설안을 입법청원했지만 이 법안 역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참여정부의 추진 번번이 실패

정부안이 나온 것은 공수처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이후인 2004년 6월 29일이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앞서 연이어 터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1997~1998), 대전 법조비리 사건(1999)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은 의정부지원 소속 판사 15명이 변호사 14명으로부터 명절 떡값, 휴가비 명목 등으로 수백만원씩 받은 사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이어 터진 대전 법조비리 사건은 부장검사 출신 이모 변호사 사무실 소속 사무장이 해고당하자 앙심을 품고 변호사의 비밀장부 내용을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1992년 변호사 개업 후 5년간 법원과 검찰, 경찰 직원 300여 명으로부터 사건을 소개받고, 소개비를 지급한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당시 수사로 검사 25명의 금품수수혐의가 적발됐다. 고법 부장판사 2명이 이 일로 사표를 냈다. 금품을 받은 판·검사만 30명에 달하는 대형 법조비리로, 지금도 손꼽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 모두 처벌은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약했다. 사법부와 검찰 역시 의원면직 처리를 하거나 자체징계를 하는 식으로 서둘러 봉합했다. 고위공직자들은 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된 셈이다. 공수처 신설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총선공약으로 공수처 설치를 내걸었다. 그만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일 강한 요인은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역시 공수처 설치에 실패했다. 사실상 국회마다 공수처 신설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 폐기됐다.

1996년 11월 7일 첫 공수처 신설 제안이 나온 이후 정확히 23년이 흘렀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0월 29일 공수처 법안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사법개혁 법안 4건을 오는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개혁안 중 공수처 법안을 분리해 먼저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말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동시에 올라와 있는 법안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안’ 등 2건이다. 하나의 법안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자 두 건을 모두 올려 표결에 부치기로 한 것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권은희 의원안을 기본 골자로, 백혜련 의원 안의 일부를 가져다 수정하는 형식의 법안 조정이 12월 3일 전에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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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4년 7월 1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바람직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 당시의 모습. /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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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키로

두 의원이 각각 발의한 공수처 설치법안은 공수처를 설치해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분산하고, 고위공직자가 공직을 이용해 벌이는 범죄행위를 수사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당초 국회의원은 수사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두 안 모두 대통령,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비서실 소속의 정무직 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무직 공무원, 광역단체장, 교육감, 국무총리,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장성급 장교, 고위공무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또 고위공직자의 가족(배우자·직계존비속)도 수사대상이다. 대통령은 가족의 범위를 4촌 이내 친족까지 넓힌 것도 같다.

핵심적인 차이는 수사권 및 공소제기·유지권에 있다. 즉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부 부여하느냐, 따로 떼어놓느냐에 따른 차이다. 백 의원의 안은 공수처가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는 공수처에 기소권을 당연 부여하고, 공소제기 및 유지에 필요한 행위를 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권 의원의 안은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대상자 백 의원 안과 동일)에 대한 기소권을 주되 공수처가 공소제기를 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를 열어 결정하도록 중간장치를 마련했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과거 한 건설업자가 MBC <PD수첩>을 통해 20여 명의 검사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던 ‘스폰서 검사’ 사건(2010)을 계기로 만들어진 ‘검찰시민위원회’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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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는 가운데 공수처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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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만들어진 검찰시민위원회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변형된 ‘기소배심제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검찰과 피고인 측이 공방을 통해 정리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과 달리 수사기관이 일방적으로 제공한 공소자료만으로 일반인이 기소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 법조 관계자는 “검찰시민위원회에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의견 개진을 하는 절차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기소심의위원회도 현재의 검찰 내 검찰시민위원회 정도의 역할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또 공직자의 직무 관련 범죄 전체(백혜련)냐, 부패범죄(권은희)에 한정하느냐 등 대상 범죄에도 차이가 있지만 이 역시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두 안 가운데 어떤 법안이 최종안으로 확정돼도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을 해칠 만큼의 차이는 없다고 봐도 되는 셈이다.

당장의 문제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을 가결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공수처 검사가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좌파 법피아’들의 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에 정치색을 묻혀 보수의 반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매번 정치적 입지에 따라 공수처에 대한 입장을 바꿔왔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제17대 총선 공약으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설치’를 내걸었다. 또 “특별검사가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독립적 사정기관인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공수처 설치를 위한 정부법안을 발의하자 2004년 8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추진계획 백지화 촉구 결의안’을 발의, 공수처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그러나 여·야, 보수·진보의 대결을 위한 산물이 아니다. 국민은 수십 년 동안 감히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각종 부패범죄, 권력을 이용한 범죄를 저지르는 고위공직자들을 지켜봤다. 헌정 이후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고, 촛불정권을 세운 국민이 원하는 사회는 더이상 고위공직자들의 범죄가 권력 뒤에 숨어 보호받지 않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사회다.

모든 범죄자가 법정에 서서 죄에 대한 판단을 받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범죄자가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검찰의 기소가 있어야 하고, 앞서 검찰의 수사가 있어야 한다. 검사는 수사개시권부터 수사종결권·기소권·공소유지권까지 모두 갖고 있다. 이 말은 곧 티끌만큼의 죄라도 나올 때까지 파헤칠 수 있고, 반대로 명백히 혐의가 드러나는 범죄도 축소해 기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위 ‘폭탄돌리기’라고 불리는 부실한 공소유지를 통해 무죄판결 받아내는 것도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특히 검찰은 공수처 법안에서 수사대상으로 명시한 고위공직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이용해왔다.

여·야의 대결을 위한 산물이 아니다

2012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은 김기춘·허태열 등 박근혜 정부 실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도래 등을 이유로 수사대상에서 제외했고,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의 개인적 일탈로 사건을 축소·마무리했다.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을 비서관 개인의 일탈사건으로 축소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것도 검찰이다.(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개혁과제로서 고위고직자비리수사처의 도입 필요성’ 인용)

10억원대의 금품로비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실형이 선고된 김광준 부장검사에 대한 최초 수사는 2012년 당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벌이고 있었다. 검찰은 그러나 특임검사를 임명해 경찰로부터 ‘사건 가로채기’를 했다. 경찰은 검사를 수사할 수 없다는 ‘명제’가 또다시 증명된 사례다.

공수처는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그동안 꾸준히 공수처 설치를 주장해온 법학자나 시민단체, 심지어 김선수 대법관(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 회장)까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상대를 겨냥하는 ‘칼’이 되지 않는 독립된 기구 설치를 강조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선수 대법관은 과거 검찰개혁 원탁토론에서 “공수처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할 경우 중립성과 공정성에 의문이 있으므로 독립기구로 해야 한다. 공수처장 및 구성원들의 자격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고,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하면 현재의 검찰이 권력의 의도나 조직이기주의에 따라 검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개선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공수처를 ‘보복 수단’이 아닌 ‘선량한 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공수처 설치가 곧 검찰개혁의 완성이 될 수는 없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를 향해 공정한 칼날을 들이댈 수 있도록 감시·견제하는 몫은 시민사회의 또다른 과제일지도 모른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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