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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기전에 꼭 가야할 은행나무길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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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서울의 시장 통에서 자랐기에 단풍나무는 찾기 어려웠다. 대신 늦가을이면 길에 나뒹구는 은행나무 잎을 찾아 나서곤 했다. 노랗고 잎이 아주 큰 걸로 몇장을 골라 일기장에 테이프로 붙였다. 매년 그렇게 일기장에는 은행나무 잎이 쌓여갔고 ‘센티멘털 가을’ 사라져 가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

소년시절에는 은행나무 잎이 가을의 상징이었나 보다. 하기야 단풍과 은행만큼 가을을 대표하는 것들이 또 있을까. 가을 산을 찾아 나서는 여행객들의 목적은 사실 은행보다 단풍이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는 멀리 가지 않아도 도심 곳곳에 쉽게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번잡한 도심을 떠나 은행나무 숲으로 가보자. 전혀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자연속에서 강렬하게 가을 풍경을 만들어 내는 단풍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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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괴산에 단풍놀이를 함께 간 일행들이 멋진 은행나무길이 있다며 가자고 재촉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길인데 뭐 별거 있을까해서다. 가보면 놀랄 것이라는 말에 꾀여 여행에 지친 몸을 끌고 괴산읍에서 19번 괴산로를 따라 나섰다. 10분 남짓 자동차로 달리니 오른쪽에 문광저수지가 나타나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수지를 따라 끊임없이 늘어 선 짙은 노란빛의 은행나무들. 400∼500m 정도로 저수지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데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도화지 반을 접어 한쪽에만 물감을 칠한 뒤 접었다가 다시 편 듯 저수지가 은행나무 풍경을 거울처럼 그대로 담고 있어서다. 도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마침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어서 차를 세우고 급하게 달려가 마구 셔터를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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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저수지 은행나무길


문광저수지 주변에 은행나무가 조성된 것은 1979년. 모두 300그루가 심어졌는데 40년이 지나 거대한 은행나무길이 만들어 졌다. 어떤 이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을 캔버스 삼아 풍경화를 그릴 줄 아는 심미안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으리라. 매우 칭찬한다. 고맙다. 은행나무들은 매년 10월 중하순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데 특히 새벽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노란 은행나무길과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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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저수지 은행나무길 포토존


올해는 포토존과 조명이 설치돼 밤에도 은행나무길의 운치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걸어놓은 동그란 투명 아크릴의 문구가 인상적이다. 노란색 글씨로 ‘넌 내게 반했어’ 적어 놓아 연인들은 이곳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나도 반했다. 이 아름다운 은행나무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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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문광저수지 주변에는 숲과 오래된 고목이 많고 아담한 낚시터도 있는데 강태공에게는 천국이다. 수상좌대 5개 설치됐고 전기와 화장실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붕어, 떡붕어, 메기, 잉어, 동자개, 가물치 등이 풍성해 강태공들은 시간가는 줄 모를 듯하다. 은행나무길 바로 위에는 소금의 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금문화관과 염전 체험장 등을 갖춘 소금랜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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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 은행나무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양평 용문 은행나무길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은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절벽들이 펼쳐져 있어서다. 덕분에 가을이면 등산객들은 단풍놀이 푹 빠지게 만든다. 더구나 용문산 동쪽 기슭에는 신라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용문사를 만날 수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요즘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맑은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아우르는 ‘양평 물소리길’이 조성돼 걷기 여행자들에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모두 6개 코스로 이뤄졌는데 출발점이 경의중앙선 기차역인 양수역, 신원역, 아신역, 양평역, 원덕역, 용문역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가 은행나무때문이다. 용문역에서 시작되는 6코스가 은행나무길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흑천 부근에서 용문산 자락까지 길이 이어지는데 물소리와 숲의 새소리,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가을 정취 흠뻑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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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30호 용문사 은행나무. 한국관광공사 제공


6코스가 끝나는 길에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천연기념물 30호 용문사 은행나무가 기다리고 있으니 끝까지 걸어보길. 높이가 무려 42m에 달하는데 수령은 11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니 인간의 삶이 덧없게 느껴진다. 다양한 얘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정미의병때 일본군이 용문사를 불태웠지만 이 은행나무만은 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나무를 베려고 톱을 대자 피가 흐르고 천둥과 번개가 쳐 벌목을 중단했다거나 고종 승하때 커나란 나무가지가 부러졌다는 얘기 등이 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령스러운 존재다.

용문역 3번출구~용문양묘사업소~용문농협벼건조저장시설~용문생활체육공원~마룡2리마을회관~용문단위농협창고~풀향기펜션~애화몽펜션~천주교용문수련장~버드힐펜션~오촌리마을회관~구름산책펜션~현미네민박~용문산주차장~용문산관광안내소 코스를 따라가는데 10.3km로 2시간 50분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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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가을에 충남 아산 현충사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길이 있다.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인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다. 아산시 염치읍 충무교 입구 송곡사거리에서 백암리 현충사 사거리까지 2.1km에 달하는데 은행나무 350그루가 가을이면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1973년에 10여년생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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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은 무려 2000여그루가 심어져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개인이 조성한 숲인데 사연이 있다. 만성 소화불량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소화불량에 효험이 있다는 삼봉약수가 나는 오대산 자락에 정착했다. 남편은 아내의 쾌유를 기도하며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 둘 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숲을 이뤘다. 2010년부터 일반에게 개방됐는데 1년중 10월에만 개방한다니 좀 아쉽다. 내년에는 늦기전에 꼭 가봐야겠다.

괴산=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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