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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대만행(臺灣行)과 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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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대만에 다녀왔다. 타이페이에서 열린 대만 국제 미용성형외과학회에 안면윤곽수술 즉 얼굴뼈수술 세션의 연자로 초빙되었기 때문이다. 타이페이 공항에서 개별 픽업, 그랜드 하얏트 호텔 2박 제공, 학회등록비 면제, 성대한 환영 만찬, VIP 만찬에 공항 배웅까지 받았으니 극진한 환대를 받고 온 셈이다. 필자의 발표내용은 돌출입수술에 대해서였다. 청춘을 바쳐 20년 가까운 시간을 열중해온 돌출입 수술에 대해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의사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마치 인생의 반환점을 기념하는 흑백사진을 찍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건 행복했고 감사했다.

‘전방분절절골술(ASO)과 턱끝 수술을 통한 정제된 돌출입 수술법 : 20년간의 수술경험’ 이라는 영어제목에는 굳이 20년간의 경험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쿨하게 인정하는데 사실 (실제로는 어떻든) 필자가 다소 젊어보일 것 같은 두려움을 반영했다. 의사가 젊어보이는 것은 자칫 임상경험이 적은 것으로 오인받아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사회자는 대만 장궁병원 성형외과의 세계적인 양악, 윤곽수술 권위자인 유레이첸(Yu Ray Chen) 교수였다. 필자의 발표를 대가(大家)다운 넉넉한 미소로 유심히 본 첸 교수는 필자의 수술 결과를 높이 평가하며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답변과 토론이 모두 끝나고 다른 대만 의사, 일본 의사, 그리고 유레이첸 교수와 기념촬영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마지막 날, 공항에 필자를 배웅하는 차량을 기다리기 전까지는…

같은 차로 공항으로 이동하는 의사가 더 있었다. 그는 태국에서 온 성형외과 의사였다.

필자는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이 밉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누군가 공공장소에서 그 나라 언어로 크게 떠들며 이야기하는 걸 보면 배려심 없고 염치없다고 느낀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그 나라 이미지를 깎아 먹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자는 늘 조심하려고 한다. 국제학회에서 만난 의사들에게 한국의 성형수술 수준을 알리고 학술적인 것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방지거나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래서, 다른 의사를 만나면 최대한 먼저 머리 숙여 공손히 인사하는 편이다.

얼핏 보기에 연배가 꽤 되시는 그 태국 의사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기 위해 백팩의 앞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성난 칼처럼 우뚝 서있던 여권 표지 모서리가 엄지손톱 밑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을 뺐지만 살과 손톱이 분리된 곳에서는 기분 나쁜 통증과 함께 피가 났다.

이것이 완벽했던 이번 대만 행에서 유일한 ‘옥에 티’였다.

이 글을 자판으로 쓰는 필자의 엄지손가락에는 아직도 반창고가 붙어있다.

엄지손가락 하나에 반창고를 붙인 것이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다행히 수술하는 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엄지 손가락이 평소에 참 많은 일을 했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 스마트폰에 우측 엄지로 터치가 안되니 오타가 작렬한다. 무엇보다 황당했던 건 퇴근 무렵이다. 출입문 경비 시스템에 지문인식이 안 되는 것이다. 병원이 주인을 못 알아보니 낯설고 서글프다. 조금 전 단단히 동여맨 반창고를 다 떼고서야 지문인식에 성공한다.

행복은 소소한 것들을 목표로 했을 때 더 잘 찾아온다.

이번 대만 행의 ‘옥에 티’인 다친 엄지가 다 나아 반창고만 떼면 세상 행복할 것 같다.

* * *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티’라는 외마디에는 무려 10가지의 뜻이 있다.

‘옥에 티’의 ‘티’는 부스러기, 먼지, 결점, 하자라는 뜻이지만, 성형외과에 오는 환자들을 통해 듣는 ‘티’는 태도나 기색, 표시를 뜻한다.

돌출입 수술 환자들이 종종 “수술하면 티가 많이 나나요?” 라고 묻는다.

이럴 때 필자는 빙그레 웃음부터 나온다. 어떻게 대답해드릴까?

만약 “네 티가 많이 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럼 안되는데요. 수술한 티 안나게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할지도 모르고, 반대로 만약 “아뇨, 티가 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큰 맘 먹고 비용을 들여 돌출입수술을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수술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 인가요?"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문답의 딜레마는, ‘티 난다’라는 말이 긍정적인 뜻과 부정적인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성형수술을 한 뒤 티가 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효과적인 수술결과’를 뜻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느낌’을 뜻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형수술을 기피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증편향’ 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코수술을 너무 티나게 해서, 누가 봐도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코를 보고 각인이 된 사람은, 코수술을 하면 다 저렇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티나는 코만 눈에 더 잘 들어오는 확증편향을 통해 코수술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이 본 수많은 예쁜 코, 자연스러운 코 중에는 코수술을 한 코가 많이 있었고, 그 사람이 알지 못한 것 뿐이다.

‘돌출입’하면 잊히지 않는 여자 배우가 있다. 살짝 돌출되었던 매력적인 입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변해서 나타난 후 ‘얼굴을 망쳤다, 합죽이 같다, 할머니 같다’ 등등의 엄청난 비난과 악플이 쏟아졌다. 본인은 발치교정을 했다고 해명했음에도, ‘교정만으로 저렇게 얼굴이 바뀔 수는 없다’ ‘양악수술이나 돌출입수술을 했다’는 의혹들이 쏟아졌다. 어찌되었건 대중들은 입이 너무 많이 들어가 보이면 어떤 악결과가 나오는지를 목도하고 입을 잘못 넣거나 얼굴뼈 수술이 잘못되면 큰일이라는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대중에게 각인된 이 효과가 얼마나 큰지, 세월이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돌출입 수술을 하려는 환자들로 하여금 ‘그 배우처럼 합죽이가 되면 어떡하죠?’ 라는 걱정을 유발시키고 있다. 만약 합죽이를 만든다면 그야말로 ‘티가 나게 잘못된’ 실패한 수술이 될 것이다. 성공적인 돌출입수술이 되려면 반드시 자연스러운 정도로 입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필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결국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티나지 않게 그러나 티나게’ 수술해달라는 것. 즉, ‘자연스러운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돌출입 수술의 효과가 나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수술하고 싶고, 수술받고 싶다. 그러나 돌출입 수술뿐만 아니라 간단해 보이는 쌍꺼풀 수술이라고 하더라도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이 정점을 찍는 데에는 시간과 재능이 모두 필요하다. 고작 몇 년 수술로 완성되기 어렵고, 또 십수 년 같은 수술을 해도 솜씨가 못 따라줄 수도 있다. 몇십 년 같은 그림 그린다고 모두 명화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수술할 환자도 그렇지만, 돌출입이 심할수록 자신의 인상이 촌스럽고 빈(貧)해 보인다는 불만을 자주 이야기한다(村, 貧을 낮추어보는 것이 아니고 환자들의 표현이다). 돌출된 입 자체도 소위 촌티가 나는 이유지만, 돌출된 인중 부위 때문에 팔자주름 부위가 꺼져보이는 것이 빈티가 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곧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귀티, 부티 나는 입매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티나지 않게 그러나 티 나게 수술할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대만에서 가져온 티 한 모금 머금어 본다.

한상백 서울제일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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