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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의 IT세상읽기]만인에게 평등한 인터넷?..원칙과 현실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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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진영, 트래픽이 아무리 많아도 접속해 줘라

인터넷 연결성을 위협하는 것은 거대 미국 기업들

플랫폼단에서의 망개방, 트래픽 기반 유지, 접속료 수준 인하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7일 오후 서울중앙우체국 강당(명동포스트타워 21층)에는 자유롭고 공정한 인터넷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설립 초기 구글의 지원을 받았지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시민의 권리를 높이는데 기여한 (사)오픈넷과 비슷한 성향의 학자들이 모인 체감규제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죠.

인터넷 진영, 트래픽이 아무리 많아도 접속해 줘라

연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상호접속고시’ 개정을 앞두고, 인터넷 진영 사람들이 모인 행사였습니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교수,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한 목소리로 “현재의 트래픽 기반의 인터넷 접속 정책이 꽃밭인 인터넷을 정글로 만들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①인터넷은 KT 가입자와 SK브로드밴드 가입자간 접속(인터커넥션·Interconnection)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해 이뤄지는데, 이미 이들은 통신사에 통신료(이용료)를 내고 있으니 콘텐츠 기업(CP)에서는 접속료를 받아선 안 되고(무정산) ②접속료 정책을 무정산이 아니라 트래픽 기반으로 하면 통신사들은 네이버·카카오 같은 트래픽이 CP에 적극적으로 영업하지 않아 망대가를 맘대로 올릴 것이란 얘기입니다.

자신이 접속한 대형 CP로부터 오는 트래픽 량이 많아지면 경쟁 통신사에 내야 하는 접속료가 증가할 테니 꺼리게 될 것이란 얘기죠.

다른 말로 하면, 이미 소비자들이 접속료를 냈으니 통신사들은 특정 CP가 유발하는 트래픽이 아무리 많아도 돈을 더 받으려 하지 말고 무조건 접속해 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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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열렸던 체감규제포럼과 오픈넷 세미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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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연결성을 위협하는 것은 거대 미국 기업들

오픈넷 등의 주장은 ‘만인에게 평등한 인터넷’이란 원칙에서 보면 수긍 가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국내 통신사들은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돼 누구가 맘대로 다운 받는 앱 생태계가 열릴 때까지 ‘네이트’, ‘매직N’ 같은 버튼을 통해 자사가 배치하는 무선인터넷만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할 말이 없죠.

그런데, 저는 오픈넷 주장은 좀 과도하지 않은가 합니다. 현실과 안 맞고 미국 거대 기업 중심의 인터넷 역차별 생태계를 간과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우선 ①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은 모두 통신사나 케이블 회사 등에 돈을 내고 연결성을 제공받지만, 콘텐츠기업(CP)와 망사업자(ISP)간 비용 분쟁으로 특정 콘텐츠의 접속 속도가 지연되거나 제대로 보기힘든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페이스북 접속지연 사태는 물론, 구글 트래픽이 늘자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Orange)가 접속을 거부한 사례 등이 있죠. 자유로운 인터넷 세상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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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망비용구조. 역차별이 심하다. 트래픽이 적은 중소CP가 오히려 네이버, 구글 등보다 많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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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②접속료 정책을 트래픽 기반으로 하면 통신사가 특정 CP의 접속을 좌지우지해서 결과적으로 망대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점 역시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죠. 동의하는 점은 상호접속료 산정방식이 바뀐 뒤 통신사 영업팀에서 이를 근거로 CP들에게 “경쟁 통신사에 내야 하는 돈이 늘었으니 망이용대가를 더 달라”고 할 수있는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네이버처럼 큰 CP는 오히려 통신 3사 망을 다 이용하니 상호정산 접속료의 영향이 거의 없고, 일반 CP의 입장에서도 ‘투명한 트래픽 정보’만 공유된다면 국내 3개 통신사를 경쟁붙일 수 있는 기회도 되죠. 예전 무정산일 때는 큰 CP에게만 집중됐던 통신사 영업 경쟁이, 이제는 접속료를 덜 내도 되는 일반 CP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 경쟁이 활성화된다면요.

더 큰 문제는 ③접속료가 무정산으로 돌아가면 구글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국내 망을 거의 공짜로 쓰는 외국 CP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근거(한계비용)조차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전기통신사업법은 외국과 달리 무조건 접속해줘야 하기에,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많이 일으키는 외국 CP에 협상력을 갖기 더 어렵기도 합니다.

오픈넷 등의 자유로운 인터넷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나, 무정산 요구가 AT&T나 구글 같은 힘 센 미국 기업들에만 유리한 상황이 될까 염려됩니다. ‘형식은 공정성을 표방하나, 실제로는 정글로 가자’는 얘기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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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단말기에 붙어있던 ‘네이트’ 버튼. 소비자들은 이것을 누르면 통신사가 배치한 순으로 콘텐츠에 접근해 왔다. 출처: 세티즌




플랫폼단에서의 망개방, 트래픽 기반 유지, 접속료 수준 인하

대안이 뭐냐고요? 통신사들이 예전처럼 폐쇄적인 인터넷 플랫폼 정책을 가져가지 않도록 감시하고(망 개방), 접속료의 수준은 인하하면서도 외국기업에 망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트래픽 기반 접속료 정책은 유지하는 겁니다.

망 비용 부담으로 스타트업(초기벤처)들이 혁신성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은 막아야죠. 중소 CP들에 대한 제로레이팅(소비자 접속시 통신료 무료)이나 데이터센터(IDC) 무료 상면 제공 등이 필요합니다.

다만, 국내 기업 중 왓챠나 아프리카TV 같은 대기업이 아닌 트래픽 유발이 큰 CP들은 걱정입니다.

정부가 접속료 정책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겠고, 구글이나 넷플릭스에서 망 이용대가를 받게 되면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이들에 대한 망 이용대가를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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