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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금 115만원 있어야 노숙? 노숙자 처벌 높인 라스베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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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시 노숙자 처벌 조례 통과

“최대 벌금 1000달러, 최소 징역 6개월”

노숙자 안전 및 공공 안전 보장이 목적

미국 내 노숙자 처리 놓고 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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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라스베이거스시 시의회에서 한 시민이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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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과연 범죄일까?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시(市)는 8일(현지시간) 도심의 노숙을 막기 위해 길거리에서 자거나 야영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안에 따르면 노숙하다 적발될 경우 최고 1000달러(115만원)의 벌금이나 6개월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시행은 10일부터다. 다만 형사 처벌은 노숙자들의 거주지 확보 등을 위해 내년 2월 1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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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암흑기를 거쳐 복합 관광지로 거듭난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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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 굿맨(Caroyln G. Goodman) 라스베이거스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이 조례가 노숙자들에게 혜택이 되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라스베이거스 시의회는 노숙자 시설에 1600만 달러(185억원)를 투입해 주거 환경을 정비하고 의료 시설 등을 갖추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같은 조치가 시행된 배경엔 관광 수입에 의지하는 라스베이거스 시의 절박한 고민이 녹아 있다. 라스베이거스 시는 홈페이지에 올린 공고문을 통해 "거리 노숙자들이 부동산 가치를 5~15%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역사회의 우려를 전했다. 이어 "야영이나 음식물 쓰레기, 기타 폐기물의 증가는 인근 지역에 전염병과 공중 보건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공공 장소에서 배회하는 노숙자들은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공공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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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라스베이거스 시청 앞에서 노숙자 벌금 부과 조례안 시행에 항의하는 시민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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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라스베이거스엔 6500명 이상의 노숙자와 그 가족들이 있다. 시는 "도심 사업장 점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3%가 시의 조례안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노숙자들은 반발하는 분위기다. CNN에 따르면 조례에 반대하는 한 노숙자는 “집이 없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게리 펙 전 네바다주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대표는 “결국 경찰과 검찰이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갇힌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법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례안 지지자들은 “노숙자들을 보호소로 보내는 것은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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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미 라스베이거스 노숙자 보호시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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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는 노숙자들을 시설에 수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시설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다. 라스베이거스 시가 2016년 노숙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년간 노숙자 보호 시설을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55%나 됐다. 이들 중 31%는 침대벌레(bed bugs) 때문에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8%는 시설의 더러운 환경 때문이라고 했다.

노숙자 문제는 라스베이거스시 만의 일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노숙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A 타임스가 인용 보도한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 보고서에 따르면 LA 주민의 24%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노숙자 문제를 꼽았다. 로스엔젤레스 관리들이 주지사에게 노숙자 문제를 재난 상황으로 규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을 요청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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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아파트에서 노숙인이 귀가 중이던 여성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C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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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샌프란시스코에선 정신 착란 증상을 보이던 노숙자가 귀가하던 여성을 공격하는 장면이 찍힌 CCTV가 미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숙자 문제는 정치 쟁점으로도 비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수많은 도시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국가적 망신”이라며 “노숙자들을 청소(clean up)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도심의 노숙자 캠프를 해체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교외 시설로 집단 이주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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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시민들이 노숙자를 돕는 장면. [사진 에드 유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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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민주당은 “노숙자들은 적절한 주거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며 “그들을 연방 수용 시설에 몰아넣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도 “거리에 있는 미국인들을 악마 취급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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