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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0만명 실손보험···불편한 종이서류, 의료계 왜 매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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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의료계-소비자, 보험 청구 간소화 둘러싸고 대립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병원 신세를 졌다. 밤에 자던 중 배가 아파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았더니 요로결석이었다. 진료비 11만원이 나왔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던 A씨는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청구서를 작성한 뒤 병원비 사진을 보험사로 첨부해 보냈다. 그런데 청구금액이 크니 병원 영수증과 함께 진료확인서와 세부내역서를 추가로 내라는 연락이 왔다. A씨는 “병원에선 본인이 와야 서류를 발급해 준다고 했다. 휴가를 내 지방에 있는 병원을 다녀와야 한단 얘기인데 교통비며 시간비용을 따져보면 그 돈이 더 나간다”고 말했다. A씨는 보험금 청구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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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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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가 3400만명에 달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단체는 “일일이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는 게 비효율적이니 인터넷으로 주민등록등본 떼듯 절차를 전산화하자”고 주장한다. 치료 내역이 병원을 통해 보험사로 전송되는 자동차보험처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보험사 배불리는 법이다.” “민간보험사의 농간에 국회의원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일 강대식 부산광역시의사회장 등 해당 의사회 소속 20여명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낸 한 여당 의원 지역구 사무소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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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부산광역시의사회가 한 여당 의원 지역구 사무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관련 항의집회하고 있다. [사진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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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에서 “의료기관에게 부당한 의무를 강제해 보험업계만 배불리는 보험사 특혜 ‘악법’으로 규정하고 결사 저지의 뜻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지역 의사회가 속속 같은 뜻을 밝히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가입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별도로 보험사에 진료비를 청구하지 않아도 자동 청구될 수 있도록 절차를 전산화하자는 게 골자다. 보험연구원이 2016년 성인 1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만원 이하 진료비 미청구가 51.4%에 달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복잡하다는 게 소비자단체의 주장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환자가 요청할 경우 병원이 의료비 증명 서류들을 보험사에 의무적으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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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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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은 그러나 “청구대행 강제화를 통해 환자들의 진료정보 등 빅데이터를 모두 수집하겠다는 것”이라며 “보험회사의 손해율을 낮추겠다는 것이 본질적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간 청구 절차가 복잡해 소비자가 포기했던 소액 보험금까지 지급하게 되면 보험회사 손실이 커질텐데 간소화에 찬성하는 이유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의협은 “가입자의 질병 정보를 축적해뒀다가 자주 아픈 환자의 보험 갱신을 거절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손해율이 높다고 아우성인 보험업계에서 도덕적으로 공익을 위해 지급률을 높이고 싶다고 하는 건데 황당한 얘기”라며 “순수하게 청구를 간소화하고 싶다면 3400원짜리 진료 행위에 대한 보험금 청구에도 진단명이 적힌 서류를 요구하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병원이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닌데 왜 진료 관련 정보를 보험사로 넘기는 부당한 의무를 져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료 자료를 넘기는 것도 일인데, 아무 대가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속내는...



의료계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게 따로 있다고 소비자단체는 주장한다. 법안에서 해당 서류의 전송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게 한 부분이다. 병원이 20개가 넘는 보험사들에 일일이 환자 진료 정보를 보내는 게 비효율적이니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하고 그곳에서 보험사로 전송하게끔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심평원은 진료를 심사하는 곳이다. 심평원이 청구 중개기관으로 개입하는 순간 과잉진료 등을 심사할까봐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의 박명희 대표는 “건보수가와 연관돼 심평원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이 높다”며 “그간 비급여 진료는 자유롭게 했는데 관련 통계들이 언젠가 드러날 테니 최대한 이를 지연시키자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지난 국회 때도 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다”고 말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의료계는 비급여 의료비 정보가 쌓이면 향후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서류전송 업무 외에 심사 등의 목적으로 정보를 열람·집적할 수 없도록 법률에 명시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반대가 심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구 대행 업무로 인한 행정과 인력 등 비용 부담 문제를 어떻게 할지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민영보험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만큼 보상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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