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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만물상] 선상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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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선장에겐 독재적 권한이 주어진다. 질서 유지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도를 넘는 폭력도 횡행한다. 그 경우 선원들은 반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파업을 뜻하는 '스트라이크'도 선원들의 집단 반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해양 국가들은 선상 반란에 엄격했다. 해양법 유엔협약은 선상 반란을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모든 국가가 진압·처벌에 최대한 협력하라고 한다.

▶1789년 남태평양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이 벌어졌다. 반란 선원들은 배를 장악하고 함장 등을 보트에 태워 내쫓았다. 48일 표류 끝에 살아 돌아온 함장은 '불굴의 영웅'이 됐다. 영국 정부는 즉각 쾌속함을 반란자들이 머물던 타히티섬에 보내 기어코 체포해 교수대에 매달았다. 잔당들 추적은 1814년까지 계속됐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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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중공군 어뢰정에서 대만 망명을 위한 함상 반란이 일어났다. 2명이 6명을 사살한 뒤 동쪽으로 향했다. 연료가 소진돼 흑산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우리 어선에 발견됐다. 해군이 긴급 출동했고, 어뢰정을 쫓아온 중공군 함대가 우리 영해를 넘었다. 일촉즉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중공은 사과를 하고 승조원들을 인계받았다. 두 사람은 대만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선상 반란에 자비 없다'는 국제법의 원칙이 적용됐다. 이 사건은 한·중 수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 남태평양 바다 위를 항해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에서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선장의 폭력 등에 반발한 조선족 선원 여섯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해 11명을 차례로 살해했다. 칼과 도끼를 사용했고, 산 채로 상어가 출몰하는 바다에 던져 넣기도 했다. 실습 나온 고교생도 던져졌다. 1심 판결문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위'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살인범들의 항소심 변호인이었다.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했다. 여섯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다섯 명이 무기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주범도 특사를 통해 무기로 감형됐다.

▶북한 선원 2명이 가혹 행위에 불만을 품고 선장 등 16명을 살해하고 남으로 넘어왔다. 심야에 차례로 불러내 살해했다니 페스카마 선상 반란과 닮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들 2명은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고 북으로 추방했다. 아마도 즉각 처형될 것이다. 선상 반란에 대한 엄한 처벌 필요성, 사법 주권 포기 논란, 페스카마 사건과 다른 잣대 등 생각해볼 점이 많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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