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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매출 올린 '장난감 대통령'… 트로트 작곡하며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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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장난감서 노래까지… 최신규 총감독

조선일보

탑블레이드, 한복 인형 연지, 영혼기병 라젠카, 헬로 카봇, 터닝메카드…. 1990~200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장난감 대통령' 최신규 총감독이 자신의 작품들이 걸린 서울 양천구 목동 초이크리에이티브랩 앞에 서 있다. 그는 최근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신곡을 작곡·작사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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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떨어질 시간에 어딜 간다고 어무이 어무이 내 걱정은 하덜 말아요. 꼬깃꼬깃 접은 돈 손에 쥐여주고 돌아앉아 우시던 어무이."

초이락컨텐츠팩토리의 서울 목동 연구실인 초이크리에이티브랩에서 만난 최신규(63) 총감독은 노래 '어무이'가 담긴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신곡 앨범부터 꺼냈다. 수록곡 16곳 중 3곡이 최신규 작곡·작사였다.

최 총감독은 1996년 완구기업 손오공을 창업해 '영혼기병 라젠카' '하얀마음 백구' 등을 만든 '장난감 대통령'. 2001년엔 '탑블레이드' 팽이 하나로 전 세계에서 매출 1조원을 벌어들였다. 추억의 장난감 '거미 문어 끈끈이' '팝콘(점핑아이)'도 그의 작품이다. 2014년 초이락컨텐츠팩토리를 창업한 후에는 애니메이션 '헬로 카봇' '터닝메카드'도 성공시켰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트로트 앨범을 만든 것일까. 지난 4일 만난 그에게 이 대목부터 물었다.

김연자의 '어무이(어머니)'

―갑자기 왜 트로트 앨범인가요?

"어릴 때 꿈이 가수였어요. 여덟 살 때부터 동네 어른들 앞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구성지게 불렀지요. 독학으로 기타를 배워서 작곡·작사도 하고. 좀 커서는 정진성 작곡가 밑에서 공부도 했어요. 김연자 선생님도 제가 정 작곡가 밑에서 배울 때 알고 지내던 형의 부인이에요."

―그런데요?

"제가 젊었을 때 대학가요제 붐이 일어났죠. 거길 출전해 입상해야 가수가 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전 학벌이 없었거든요. 국민학교(초등학교)를 3학년 때 그만뒀어요."

―초등교육은 의무 아닌가요?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어요. 전 오 형제 중 막내였지요. 행상 시작한 어머니가 자식들 모두 학교 보내긴 어려우셨죠."

―가난은 고통이었나요.

"더 무서운 건 외로움이었어요. 오 형제가 다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집엔 저밖에 없었거든요. 그 시절엔 집이 가난하면 자식들을 남의 집에 한 명씩 맡겼어요. 그러니 어머니가 행상 나가면 저 혼자 집에 있는데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땐 어머니 손잡고 행상 따라다니는 게 제일 좋았었어요. 험한 산길이었는데도. 그런데 어린 절 데리고 나가면 어머니가 빨리 못 걸으시니까 자주 데려가진 않으셨지요."

―집에 혼자 있을 때 뭘 했나요?

"방에 있는 모든 게 장난감이었어요. 폐건전지 하나로 기차 놀이도 하고 비행기 놀이도 하고 버스 놀이도 하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아이스케키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 3일간 장사했는데 그 많은 걸 다 판 거예요. 그때 번 돈을 그대로 어머니께 갖다 드렸지요."

―좋아하시던가요?

"그날 반쯤 맞아 죽었어요(웃음). 절 때리면서 막 우세요. '왜 이런 짓을 했느냐. 누가 너더러 돈 벌어오라고 했느냐.' 그렇게 맞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보니 머리맡에 고구마와 김치가 있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고구마와 김치였어요. 때리고 미안하니깐 이걸 놓고 행상을 나가신 거죠. 그러다 며칠 뒤 절 부르더니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손잡고 영등포로터리 쪽으로 걸어가는데 속으로 생각했어요. '나를 버리나 보다.'"

―정말 버려졌나요?

"아니요. 목적지는 '백성당'이라는 금은방이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금은세공 기술을 배우길 원하셨던 거죠. 그러다 주물 기술도 배워 선반(旋盤·금속·나무·돌 따위를 회전시켜서 갈거나 파내거나 도려내는 데 쓰는 공작 기계) 기술 배운 셋째 형과 협성공업사를 창업했고요."

―공부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초등학교 때 공부도 잘했어요. 그런데 이사하면서 학교와 집이 너무 멀어졌어요. 육성회비도 부담이었죠. 회비 못 낸 사람은 선생님이 학생들 있는 데서 불러서 손바닥을 때려요. 정말 끔찍한 기억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널 못 가르친 게 평생 한이다'고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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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메카드'에 나오는 로봇 '에반'을 소개하는 최신규 총감독.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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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 할아버지

그의 첫 회사는 셋째 형과 함께 만든 '협성공업사'였다. 옥편 보고 직접 만든 이름이었다.

―시작은 어떻게?

"그때 제 나이가 열여덟 살. 제겐 주물 기술이 있고 형에겐 선반 기술이 있으니 회사를 만든 거였어요. 처음 개발한 '두꺼운 수도꼭지'가 대박이 나고 뒤에 플라스틱 제작 회사인 '서울화학'을 만들며 형에게서 독립했어요. 그 무렵 고객 한 분이 '장난감 자판기 좀 만들어 보라'며 의뢰해 완구를 시작했지요."

―첫 개발품이 독성 없는 끈끈이였지요?

"그때 아이들 사이에서 끈끈이가 유행이었어요. 처음에는 파리 잡는 독성 물질로 만들던 시절이었죠. 아이들은 장난감 갖고 놀다가 입에도 넣고 하잖아요. 독성 없는 끈끈이를 만들고 싶어 8개월을 매달렸어요. 송진부터 파라핀 오일, 주변에 끈끈하다는 물질은 다 가져다가 실험했지요. 그땐 제가 결혼해 아내랑 사글세 살 때예요. 집에서 연탄불에 재료 녹여 혼합하고. 그러다가 불도 날 뻔하고. 동네에서 화학약품 냄새 난다고 항의해 쫓겨날 뻔도 했지요. 여관살이도 했어요. 사글세보다 여관살이가 더 힘들어요. 오전 9시면 방을 빼줘야 하거든요. 낮 장사를 받아야 하니깐. 전 출근하면 되는데 아내는 갈 곳이 없잖아요. 갓난아기 업고 낮에 버스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계속 이동하며 시간을 보냈대요."

―실패는 없었나요?

"많았죠. 손오공으로 법인 전환하고 만든 첫 작품인 '영혼기병 라젠카'(1997년작)가 완전히 망했지요. 신해철씨가 부른 주제가만 히트했어요."

―2001년 완구와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로는 1조 매출을 달성했는데요.

"끈끈이가 성공하면서 완구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일본 완구회사 '다카라'가 투자한 출판만화 '탑블레이드(팽이 대전의 최강자를 가리는 이야기)' 속 팽이에 끌렸고요. 전 팽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장난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카라는 그 이후 분야 확장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그래서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 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지요. 완구 팽이 제작도 저희가 하고요. 이 애니메이션이 2001~02년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 팽이 매출만 1조원이 된 거예요. 당시 우리나라 완구 시장 전체 규모가 5000억원이었으니 대단했지요."

―연탄불로 녹여 만들다가 1조원이라는 매출을 올리면 어떤 느낌인가요?

"전 그 돈을 그대로 다시 투자했어요.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도 제가 투자한 거예요. 인터넷 게임회사 '블리자드'와 협약했다가 실패도 하고. 돈을 즐기진 못했어요. 돈을 많이 벌면 여자 유혹이 진짜 많아요. 그런데 전 그런 유혹에는 한 번도 안 넘어갔어요. 제가 힘들 때 여관 생활을 했었잖아요. 거기서 살다 보면 진짜 지저분한 거 많이 보거든요."

―이후에는 TV 애니메이션 '헬로카봇' '터닝메카드' 등이 잇따라 성공했지요.

"제 자부심은 이겁니다. 나는 콘텐츠 개발, 애니메이션 제작, 완구 제작까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가 작품을 구상할 때 고려하는 첫 조건은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에요. 제 아이디어는 다 어릴 적 외로움에서 나왔어요. 혼자 집에 있으면 힘있는 어떤 존재가 절 지켜주길 원해요. 그리고 어머니 옆으로 데려다 주길 원해요. 그게 '헬로카봇'이에요. '터닝메카드'는 어머니 따라다닐 때 봤던 새점(훈련된 새가 점괘 적힌 종이를 뽑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은 거고요."

―아직 현역인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날마다 복싱을 해요. 2000년에 집에 7인조 강도가 들어서 죽었다 살아났거든요. 집에 있던 마누라는 기절하고. 전 맨손으로 칼 잡고 저항해 살았어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요. 항상 무언가를 만들다 죽고 싶어요. 지금 제 직함도 총감독이에요."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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