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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홍대에 광고 전단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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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울 8곳 비교… 전단의 광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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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으로 북적이는 낮 12시 서울 광화문,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열 번 고개 숙이며 건네야 한 번 받는다"고 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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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 식당 갈 때나 한잔 더 하러 2차 갈 때 누군가 전단을 내민다. 거절하자니 거리에서 몇 시간째 나눠주는 수고가 신경 쓰인다. 받자니 수북한 전단을 손에 쥐고 식당에 도착하게 된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전단이 효과가 있을까. 그럼에도 전국 어디든 번화한 거리에는 전단이 있다.

'아무튼, 주말'이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서울 시내를 돌며 전단을 꼬박꼬박 받았다. 유동인구, 휴대전화 기지국 수, 언론 보도를 종합해 전단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덟 곳을 선정했다. 지역 특성에 따라 낮 12시, 오후 6시, 오후 9시로 나눠 거리를 걸었다. 1만평당 1시간에 받은 전단 장수로 체감 수치를 환산했다.

전단 크기와 내용이 지역 상권을 말해준다. 젊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작고 귀여운 느낌, 중장년 중심 상권은 크고 핵심 내용만 적혀 있었다. 직장인이 많은 곳에는 헬스클럽 전단이, 외국인이 찾는 관광지에는 고양이 카페 전단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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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전단 대신 가게 홍보 팻말을 메고 다니는 사람. / 조선일보 DB

광화문은 헬스, 여의도는 골프

전단이 가장 많은 곳은 명동이었다. 1만평당 1시간에 약 7.4장.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전단이 많았다. 외국어가 병기돼 있었고, 한글이 아예 없기도 했다. 13장 가운데 음식점 광고가 1장,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스파가 7장, 고양이 카페가 5장이었다. 한국 고양이 카페는 그루밍(털 관리)을 잘해서 서양인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음식점은 메뉴만 적힌 팻말이 전단을 대신했다. 팻말을 들고 호객하던 직원은 "전단에 적힌 음식 가격에 놀라서 오히려 손님이 줄어든다"며 "팻말을 들이밀면서 말로 홍보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종각 '젊음의 거리'와 광화문 일대도 전단이 흔했다. 각각 4.5장, 3.2 장. '젊음의 거리'는 전단을 가지고 오면 서비스로 사이드 메뉴를 주는 호프집이 많았다. 한 식당 주인은 "종각에서 맛집 찾는 손님은 드물다. 서비스로 손님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 직장가는 17장 중 10장이 피트니스 센터였다. 올해 초 개업했다는 피트니스 센터 관계자는 "센터만의 홍보 포인트가 마땅치 않다"며 "결국 가까운 거리나 싼 가격으로 끌어들여야 해 전단이 제격"이라고 했다.

강남역 일대와 여의도가 그 뒤를 이었다. 전단 아르바이트에게 "강남역은 유동인구 때문에 전단이 많을 줄 알았다"고 하자 "이 지역은 젊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로 미리 보고 온다. 전단 의뢰가 점점 적어지는 추세"라고 했다. 여의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골프 학원 전단이 많았다. 주변에 고소득 직장인이 많고 실내 골프장을 만들 만한 넓은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 여의도는 그 최적지였다. 지난달 입점했다는 골프 학원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의원 보좌관이 많이 찾는다"며 "실내 골프장 기술이 향상된 것도 골프 학원이 늘어난 배경"이라고 했다.

과거에 전단으로 명성 혹은 악명이 높던 건대 입구, 신촌(연세대 앞), 홍대 거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구청과 경찰이 거리 청결과 단속에 힘쓴 결과라고 한다. 담당자들은 "의지를 갖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저촉되지 않게, 홍보 팻말을 메고 다니는 '인간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인기가 높은 영등포역 인근, 이태원, 마포 상수동 등지도 가봤지만 전단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 명절, 핼러윈을 비롯해 특정 시기에만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지역 상인들은 말했다. 지속성이 부족해 이번 목록엔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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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의 광고학

전단은 광고학적으로 '회색 영역(gray zone·구분하기 힘든 영역)'에 속한다. 신문·방송 등 전통 매체 광고나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광고를 이용하기 어려운 소상공인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업주들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광고는 1년 이상 꾸준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전통 매체는 효과적이지만 예산이 부족하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한 달에 약 20만원을 들여 해당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전단으로 홍보한다.

전단을 활용하는 곳은 대부분 지역 내 동종 업체가 많았다. 기자가 받은 전단 81장 중 최근 유행하는 마라 식당이 12곳이었다. 홍대 거리에서 받은 유일한 전단도 마라탕 식당. 명동의 고양이 카페, 여의도의 골프 학원 등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업체의 전단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건물 고층이나 지하에 입주한 업체가 불리한 접근성을 만회하려고 전단을 배포했다.

전단을 받아주는 행인은 많지 않다. 나눠주는 사람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한다. 전단 아르바이트만의 노하우는 뭘까. 광화문 일대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진모(58)씨는 "여러 명이 함께 대화하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기습적으로 건네줘야 받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혼자 걸어오는 사람은 미리 거절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자기 내밀어야 얼결에 받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럿이 있을 때 전단을 받으면 착해 보일 것이라는 심리도 작동한다. 대부분의 전단 아르바이트는 말했다. "특별한 기술은 없다. 10번 고개 숙이며 건네야 1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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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로 해결 가능

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은 대부분 불법이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18조에 따르면 지자체장 등에게 허가받지 않은 광고물은 징역 또는 벌금형을 받거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자체 허가 도장이 찍혀 있어야 하는데, 받은 전단 중에서는 단 한 장에 불과했다. 버려지는 전단은 미관을 해친다. 거리 정화를 위해 전단을 줄이려 노력한다지만 "계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구청 관계자들은 전했다.

신촌, 홍대 거리는 불법 전단 퇴치를 위해 지자체와 관내 경찰이 노력한 결과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서울 서대문구는 신촌 일대에 직원 7명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번갈아 상주시킨다. 담당자 강호윤 주무관은 "전단 배포 업체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계도했다"고 말했다. 사용된 추가 예산은 연간 약 1700만원이다. 관심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홍대 거리를 담당하는 마포구청 관계자는 "'전단 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뒤로 몇 년간 꾸준히 노력했다"고 했다. 홍대 거리를 쓸던 환경미화원 김모(32)씨는 "올해 초부터 길거리에 전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 전단 사업이 법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만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종사자도 있다. 여의도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여성은 "하루 4시간 일해 2만4000원을 받는데, 이 중 1만원은 관리자에게 돌아간다"며 "거리에서 노숙하는 할머니들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법을 어겼으니 감옥에 가겠느냐, 이 돈이라도 받겠느냐'고 협박한다"고 했다. 해당 업체 관리자에게 사실을 캐묻자 답변을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사문화된 전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용 고려대 마케팅경영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광고 수단인 만큼 업주들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며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개수를 줄이기 위해 단속에 나선다는데 '허가를 받으면 전단을 나눠줄 수 있다'는 현행 제도는 모순"이라고 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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