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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TF현장] "재판장께는 비밀입니다"…어떤 판사의 은밀한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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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지난 2018년 9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닫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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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당 재판 청탁 의혹' 이민걸 전 실장 공판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지난 7월 10일 대법원 1부(주심 박선화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선숙,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3년을 끌었던 '국민의 당 리베이트 의혹'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국민의 당은 2018년 2월 바른정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이 됐다.

2016년 여름만해도 분위기는 긴박했다. 검찰은 박선숙, 김수민 두 의원을 리베이트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두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같은 혐의로 구속된 왕주현 국민의 당 사무부총장은 여전히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국민의 당은 소속 의원의 구속은 피했지만 1심 판결을 가늠할 수 없어 좌불안석이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판에서는 모두의 시계가 3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당시 마음이 급했던 쪽은 국민의 당 뿐이 아니었다. 1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법의 나모 기획법관은 그 누구보다도 왕주현 부총장의 보석 결과는 물론 '리베이트 의혹' 재판에 신경을 써야했다.

재판부도 아닌 법원 행정을 담당하는 기획법관이 왜 그랬을까.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으로 임종헌 기획조정실장의 지휘를 받았다. 나 판사가 행정처를 떠난 뒤 임종헌 실장은 차장으로 승진하고 이민걸 기조실장이 부임했다.

이민걸 실장은 2016년 10월 나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왕주현 부총장의 보석이 허용될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뒤 나 판사는 이 실장에게 "주심판사에게 물었더니 보석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이후 12월 12일 결심이 예정됐고 1월 14일 이전 1심 선고가 끝날 수 있다는 등 재판 진행 계획도 알려줬다. 재판부가 피고인(박선숙·김수민 의원) 쪽에 긍정적인 심증을 갖고 있다는 정보도 전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국민의 당 리베이트 사건' 1심 주심판사인 유모 판사는 2016년 11월말 쯤으로 기억했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온 나 판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민의 당 사건 진행하느라 고생하시죠."

그 뒤 증인은 많은지, 왕주현 부총장의 보석과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될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 판사는 왜 이런 걸 묻는지 의아하게 여겨 말을 아꼈지만 나 판사는 사무실에서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피고인 주장이 검토 여지는 있는 것 같아요."

나 판사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공보에 필요하기도 할 것 같아서였다. 이후 유 판사는 나 판사에게 피고인의 주장과 재판에서 합의된 진행 절차를 정리한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장인 김모 부장판사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나 판사 역시 신신당부 했다. "재판장님께는 말씀드리지 마세요."

이후 실제 1심 재판부는 박, 김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 당 관계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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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2017년 7월 1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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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당시 대법원이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 과정에 국민의 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비밀 재판'의 원칙을 깨고 재판 정보를 제공했다고 본다.

이민걸 전 실장은 당시 국정감사 중이라 국회 출입이 잦았고 국민의 당 쪽이 왕 부총장의 보석과 재판 전망을 궁금해 해서 국회 대응 차원에서 나 판사에게 알아본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재판부에 직접 알아보라는 지시는 하지않았다고 강조한다. 다만 재판 정보를 물었던 국민의 당 의원이 누구인지는 함구하고 있다. "관심을 가졌던 의원이 한두 명이 아니라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민걸 전 실장 쪽은 나 판사의 검찰 조서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 검찰의 공소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다.

'사법농단' 사태의 한 축인 이민걸 전 실장의 재판은 국민의 당 리베이트 사건 외에도 통합진보당 행정소송·헌법재판소 한정위헌·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방안 등의 쟁점으로 법정 공방이 펼쳐진다. 다음 공판은 11월 20일 오전 10시에 속행된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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