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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취재일기]70대 노인 고소한 조국, 한겨레 기자 고소한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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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 당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70대 노인이 25일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황모(73)씨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조국(청와대 민정수석)의 인물분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조 전 장관은 블로그 글 내용이 허위라며 지난해 3월 황씨를 경찰에 직접 고소했다. 수사기관은 황씨를 수사해 곧장 재판에 넘겼다. 고위공직자가 낸 고소장이 70대 노인 수사의 발단이었다.

조 전 장관의 고소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드러난 이후 민정수석의 고소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달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법을 다루는 가장 중요한 자리인 민정수석이 본인에 대한 이의제기에 대해 그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정부나 고위공직자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따지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수사를 결정한 윤석열(59) 검찰총장은 지난 11일 한겨레 기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조 전 장관과 윤 총장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의뢰했다는 점에서 접점을 갖게 됐다. 물론 윤 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접대받은 의혹이 있다는 한겨레 1면 보도 내용은 취재 결과 사실과 다르다.

윤 총장과 조 전 장관의 고소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일단 고소 대상이 다르다. 윤 총장은 유력 종합일간지인 한겨레를 상대로 고소했다. 조 전 장관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무직의 노인을 상대했다. 종합일간지와 블로그는 영향력 면에서 차이가 크다.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는 글의 성격도 다르다. 황씨는 재판 과정에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복사해 ‘놈’이라는 표현을 ‘자’로 순화했을 뿐이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3명 이상의 취재원을 인용하면서 기자가 기사를 직접 작성했다. 블로그 글보단 기사의 비난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나 민정수석이었던 조 전 장관이 모두 수사기관과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고 윤 총장은 검찰 조직의 수장이다. 해당 고소 사건 수사에 간섭하지 않고 손을 뗀다고 하지만 그 직위가 주는 간접적 영향력을 무시하긴 힘들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검찰총장이 특정인을 검찰에 고소했다면 자신이 고소인으로서 ‘수사 대상인 개인’에 해당해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허위 사실에 의해 명예가 훼손됐다면 국민으로서 권리 구제를 수사기관에 맡길 수 있지만 국민은 공직자에게 일반 시민 이상의 관용을 바란다. 금태섭 의원은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에게 “검사는 고소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며 고소 취하를 제안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검사가 안 그래 보여도 민원인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참 많이 당한다”며 “그래도 법적인 조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워왔다”고 말했다.

국회는 정치 분쟁을 해결하지 못해 수사를 의뢰하고 정부는 검찰이 ‘타다’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동안 손을 놓았다. “법대로 하자”는 일상 단골 멘트가 정치권까지 퍼진 상황에서 이를 잠재우기 위해 사회적 책무가 있는 고위공직자라도 법 밖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면 어떨까. 고소당한 사람은 생각보다 절박하다. 황씨는 어제도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정진호 사회1팀 기자

중앙일보

정진호 사회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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