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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충무로에서] 입시가 대통령 말씀으로 정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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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금 영어·수학 준비하면 이미 늦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애 엄마가 학원 상담을 다녀와서 씩씩거렸다. 별 생각 없이 '우리 애도 특목고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상담 매니저는 "특목고는 늦어도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녀 교육에 왜 이렇게 무관심했느냐"며 무안을 주더란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학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녀 학업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루하루 가정과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며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교육제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가 불거졌을 때도 학부모들은 그런 마음이었다. 사회 특권층의 불공정에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늘 바쁜 구실로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시정연설에서 "국민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고 단정했다. 누구 때문에 불거진 교육 불공정 논란인지는 쏙 뺐다. 그러면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와 고교 서열화 해소,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제시했다.

놀라운 건 대통령이 "입시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한 다음이다. 정시 확대에 유보적이던 교육부는 이날 오후 참고자료를 내고 "많은 국민이 정시가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서울 수도권 일부 주요 대학의 학종 선발 비율이 높아 정시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을 당정청이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님이 시정연설에서 말씀하신 큰 방향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입제도를 비롯한 교육정책은 '일관성과 안정성, 예측 가능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통령이 말한 입시제도 개편안이 교육 '공정성'을 얼마나 더 제고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문제는 정권의 국정운영 지표인 '공정'을 입시제도 개편의 잣대로 제시한 것이다. 입시제도가 채용비리 문제나 탈세, 병역, 직장 내 차별처럼 공정성을 바로세워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당장 한국교총은 "대입제도 개편은 정치적 요구나 예단에 의해 일방적·졸속적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전교조 등 교사단체들은 "정시 비중을 상향하는 것이 교육 불공정성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여론과 선거에 관심을 더 갖는 집단이다. '일관성과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입시제도가 정치권에 휘둘릴 때 힘든 건 학생·학부모이고, 사교육에는 큰 기회의 장이 열린다. 정시 비중을 몇 % 더 올리면 더 공정하다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는지 궁금하다.

[사회부 = 서찬동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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