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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고려 대몽항쟁 상징' 강화중성서 성벽·등성시설 확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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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맞서 수도 천도 후 건립…남산리 일대 성곽 조사

연합뉴스

고려 강화중성 1지점 성벽 중심부 조성 모습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고려가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로 옮긴 뒤 조성한 강화중성에서 성벽과 등성시설이 확인됐다. 등성시설은 성 안에서 성벽 위나 성문 문루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강화중성 서쪽에 해당하는 남산의 남쪽 경사면 일대 성곽을 조사한 결과 산사면 구간에서 성벽의 새로운 축조방식과 등성시설로 추정되는 계단시설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고려사' 등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는 몽골 2차 침입 직전인 1232년(고종 19년) 6월에 개경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겼고 외성, 내성에 이어 1250년 중성을 축조했다.

강화중성 둘레는 2천960칸이며 크고 작은 성문 17개를 뒀다. 오늘날 남아있는 강화중성은 강화읍을 디귿자 형태로 둘러싸며 길이는 11.39㎞가량이다.

이번 조사에서 성벽은 토성 중심부에 기초 석렬(石列)을 쌓고 안쪽에 흙을 여러 겹 다져 올린 뒤, 안과 밖에 흙을 덧대 완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은 성곽 중심부 너비는 4.7~5m, 높이는 2.2m, 성곽 전체 너비는 13∼14m다.

석렬은 경사면을 따라 한단씩 높아지거나 혹은 경사지게 조성됐다. 토성 중심의 석렬을 계단식으로 조성한 형태는 강화중성에서는 처음 확인됐다. 이는 구간에 따라 축조방식을 달리했음을 보여준다.

조사구역 최상단부에서는 성 내부에서 성벽 상부로 오르도록 계단 형태로 된 등성시설이 처음 발견됐다. 토성 중심부에 잇대어 성곽 안쪽에 폭 3.8m로 쌓은 등성시설은 긴 돌로 6단 이상 조성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는 강화중성의 다양한 축조방식과 성곽에 부설된 시설물을 새롭게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고려 성곽 연구와 유적의 정비·복원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고려 때 지은 강화중성 4지점 등성시설 근경
[문화재청 제공]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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