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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의 물질인문학](9)하늘 훨훨 ‘비행 판타지’, 고대 그리스인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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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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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자동차 플라잉카가 2035년 우리나라에서도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뤼크 베송 감독,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제5원소>를 보면 금방 상상이 된다. 1997년 상영된 이 영화는 2259년 뉴욕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 사이를 누비는 수많은 비행 자동차가 인상적이었다. 이대로라면 거기보다 200여년을 앞서 빌딩숲을 플라잉카로 날아다닐 것이다.

■ 고대인이 상상한 자율주행 삼발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플라잉카는 그리스신화 시대부터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삼발이(tripod)가 바로 그것. 이 물건이 처음에는 세면대나 가마솥을 받치는 용도였다. 아주 고급스러운 것은 신전에 봉헌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델포이에 있던 뱀이 휘감긴 세발의자가 특이할 만하다. 아폴론신전의 여사제 피티아는 삼발이에 앉아 몰아에 빠져 혼미한 말로 신탁을 내렸다. 피티아는 이아손이 황금양피를 찾아 모험을 떠날 때 델포이 신전에 있던 삼발이 두 개를 건네주기도 했다. 귀환 중 위기에 빠졌을 때 이아손은 삼발이 중 하나를 제단에 봉헌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삼발이가 움직이진 않아도 영험함이 그 자체에 있었다.

그런데 고정된 삼발이가 사람이나 신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간다는 표현도 있다. 신기한 것은 삼발이가 자율주행용이 아닌 비행용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고대인들이 자율주행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주행은 아니지만 스스로 운행하는 삼발이가 나타난다.

헤파이스토스는 튼튼한 마루의 벽에다 세워 두기 위하여

전부 스무 개의 삼발이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마다 밑에 황금 바퀴를 달아

저절로 신들의 회의장으로 갔다가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보기에도 장관이었다.(호메로스, <일리아드> 18권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스무 개의 삼발이 밑에 황금 바퀴를 장착하고 신들의 식사 때마다 자신의 궁전에서 자동으로 음료를 배송하고 서빙한 후 돌아오게 하였다. 한마디로 물류용 자율운행 삼발이의 모습이다.

바퀴 달린 삼발이는 호메로스의 글에서만 나타날 뿐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원전 13세기에서 12세기에 발굴된 유물 중에서 물건을 나르는 용도로 쓰인 것은 네 개의 다리를 가진 것이 고작이었다. 또한 이 시대를 지나서도 지상의 운반용 삼발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퀴 달린 삼발이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 시기에 이르러 만들어졌지만 작동하지 않는 모형에 불과했다. 아마도 세대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발명들은 헤파이스토스의 자율운행 삼발이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율운행 삼발이에 대한 상상은 지상에서의 자율주행 삼발이로 발전하지 못하고 바로 하늘을 나는 자율비행 삼발이로 넘어간다.

■ 고대인들도 자율비행 삼발이를 선호했다

그리스신화 시대 삼발이, 자율주행용 아닌 비행용으로 그려

‘베를린 화가’ 도기에 자주 등장…당시 ‘상상’에 대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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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90년경 그리스 아티카 반도의 ‘베를린 화가’가 그린 ‘바다에서 삼발이를 타고 날아가고 있는 아폴론’의 도기 그림. 삼발이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양옆으로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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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비행 삼발이는 고대 그리스 도기에 다수 나타난다. 특히 ‘베를린 화가(the Berlin Painter)’의 도기 그림이 유명하다. 베를린 화가란 기원전 505년부터 465년경까지 아테네가 자리한 아티카 반도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도기 화가였다. 하지만 당대 화가들은 관례적으로 도기에 서명을 하지 않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후대 학자들은 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도기 화가 한 명에게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이때 ‘베를린 화가’란 이름이 붙는다. 그 화가가 그린 물주전자(hydra) 그림 중에 자율비행 삼발이가 나타난다.

이 삼발이는 의자인 것 같은데 아폴론 신이 앉은 데다 날개까지 달려 있다. 바다를 날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삼발이 양옆으로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영락없는 자율비행 삼발이를 그린 것이다. 고대인들이 가진 자율비행 기계에 대한 상상의 증거인 셈이다.

어쩌면 아폴론의 여사제인 피티아가 앉았던 세발의자는 아폴론이 타고 있는 이 삼발이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폴론과 같이 피티아 자신도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상상 속에서 예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폴론이 삼발이를 타고 비행한다는 것은 도기의 그림으로만 전할 뿐 문자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신화에 나오는 또 하나의 자율비행 기계는 비록 삼발이는 아니지만 트립톨레모스가 타고 다녔던 전차다. 신화에 따르면 날개 달린 뱀 두 마리가 끄는 이 전차를 타고 트립톨레모스는 대지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런데 도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날개 달린 뱀 두 마리가 이 전차를 날아가게 했다고 보기에는 날개가 너무 작다. 오히려 전차 자체가 스스로 날아다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차는 아폴론이 앉은 세발의자처럼 단순하게 그렸고 마치 프로펠러와 같은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다. 그저 단순한 의자에 불과한 이 전차는 큰 바퀴의 자율비행에 맡기고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도기 화가들은 이 그림에서처럼 자율비행 삼발이를 흉내 낸 자율비행 의자를 상상했던 것이다.

■ 자율주행차의 한계

삼발이가 자율주행차 건너 ‘플라잉카’로 넘어간 이유?

고대인들이 자율주행차의 한계를 내다본 것일까?


고대인들은 현대인들보다 더 자유로운 상상을 한 것일까? 삼발이가 자율주행차를 거치지 않고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자율주행차가 주요 도로에서 상용화되는 시기는 2027년이라고 한다. 현재 자율주행차의 물체 인식 기술, 그러니까 레이더, 라이더, 고해상도 카메라, 이미지센서 등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상용화가 늦어지는 이유는 도심이 워낙 혼잡해 돌발적인 물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기술이 아직 미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출퇴근 시간 도심의 교통 체증을 해결할 수는 없다.

반면 플라잉카는 지상보다 변수가 훨씬 적고 덜 혼잡한 공중에서 운행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교통 체증도 피할 수 있다. 플라잉카를 개발 중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설명에 따르면 “김포에서 잠실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거리가 플라잉카로는 단 12분이면 도착”이라고 한다. 또한 수직 이착륙의 플라잉카는 활주로가 필요 없어 도심 빌딩에 터미널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용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대인들은 자율주행차의 한계를 미리 내다본 것일까? 도심의 한계 때문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도 되기 전에 플라잉카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때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했던 청동기 시대에 분명 자율비행만큼이나 자율주행에 대한 상상력도 풍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율운반 삼발이는 있어도 자율주행은 없고 자율비행으로 바로 넘어간 고대인들의 상상이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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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카들이 고층 빌딩 사이를 누비는 영화 <제5원소>의 한 장면.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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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잉카 시장

현재 보잉(포르쉐), 에어버스, 테슬라, 아마존, 현대차, 우버 등 항공사와 자동차 회사를 비롯해 대형 물류 기업 70여개가 130여종의 플라잉카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이들 중 에어버스, 우버 등은 플라잉카를 통해 대중교통의 비전을 밝혔다. 특히 아마존을 비롯한 물류 기업들은 배송 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른바 플라잉카 사업은 블루오션이다.

마치 포드자동차가 대중화를 발표했을 때 그건 꿈속에서나 가능하다고 했던 이동의 편의성이 곧 실현됐던 것처럼, 머지않아 플라잉카도 현실화될 것이다. 물론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의 상공에서 벌어지는 항공 사고는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혼잡한 도시 환경 위에 머물 수 있는 항공교통 관리 시스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비행 차량, 고강력 전지와 충전소, 이착륙장과 같은 도심 기반시설 계획도 시급하다 하겠다.

■ 아테네 ‘삼발이거리’는 플라잉카에 대한 ‘상상마당’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고전기로 들어오면서 삼발이는 비극경연대회 시상품이 되었다. 아니, 경연대회 시상품이 고작 삼발이라니? 더군다나 그 시상품들을 전시하는 ‘삼발이거리(the Street of Tripods)’까지 만들었다니 그 의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동쪽 플라카(Plaka) 지역에 ‘삼발이거리’가 있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서 아테네에서는 성대한 디오니소스축제가 있었다. 그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비극경연대회였는데, 우승한 코러스의 후원인에게는 삼발이가 수여됐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든 시민들이 오고가는 거리에 시상받은 삼발이를 12m 원통으로 된 기둥 위에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오늘날 원통 기둥만 남았지만 삼발이까지 맨 위에 올려놓으면 13m가 넘는 고공 전시물들로 즐비했다.

그리스인들은 지금의 4·5층 정도 높이에 전시된 삼발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은 신들이 있는 올림푸스 연회에 자율배송하고 서빙하는 물류용 삼발이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 더 기발한 상상을 했다. ‘삼발이거리’를 걸었을 고대 아테네인들 머릿속에는 자신들 13m 상공 위로 날아다니는 자율비행 삼발이, 플라잉카가 윙윙거렸다. 정작 본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도보로 힘겹게 걸었을 테지만 비행 판타지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옛날 아테네 거리에 전시되었을 삼발이를 상상하면서 플라잉카를 그려본다. 때로는 돌고래가 뛰어노는 바다 위를 날아보기도 한다. 비록 신화시대는 지났어도 그 판타지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니까, 그러다 보면 자율비행 너머의 판타지가 생길 것이고 또 그러다가 우주의 시대가 열릴 테니까…. 성서 잠언에 있는 말을 조금 바꾸면 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이 된다. 판타지 없는 백성은 망한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어떤 판타지가 있는가?

■ 필자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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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로마 수사학을 공부했고, 현재 고려대 대학원에서 플라톤과 키케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철학아카데미, 푸른역사아카데미 등에서 라틴어 원전 강독 및 그리스어·라틴어를 강의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인문 분야 화제의 방송이었던 ‘별별명언’을 진행했으며,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브랜드 인문학> 등을 출간했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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