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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쿠르드, 떠나는 미군에 썩은 과일 던지며 "배신자"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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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美 합의한 휴전 오늘 종료… 시리아 북부 주둔 미군 철수

터키, 또다시 쿠르드 공격 위협

터키와 미국이 합의한 닷새간의 조건부 휴전이 22일 오후 10시(현지 시각·한국 시각으로 23일 오전 4시)를 기해 종료되면서 시리아 북부에서 또다시 쿠르드족의 대량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석유만 지키면 된다"며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던 미군을 이라크 서부 등으로 철수시켰다. 믿었던 동맹 미국에 발등을 찍힌 쿠르드 주민들은 분노했다.

영국 가디언과 쿠르드 매체 '안하 하와르' 등에 따르면 21일 오전 쿠르드족이 대거 거주하는 시리아 북부 카미슐리시에서 성난 쿠르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라크로 철수하는 미군 차량 행렬에 돌과 감자, 썩은 과일을 던졌다. 이들은 미군을 향해 "가라 이 배신자들아" "거짓말쟁이 미국"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쿠르드족인 칼리 오마르는 "우리는 아이들까지 나서 IS(이슬람국가)와 싸웠는데, 미국은 우리를 버렸다"며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구성된 시리아민주군(SDF) 등은 지난 2014년부터 미국과 함께 IS와 시리아 정부군에 맞서 싸웠고, 이 과정에서 약 1만명이 전사했다. 쿠르드 전사자가 많았던 건 그들이 지상군 역할을 맡고 미군은 공중 폭격과 포격 지원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만 지키면 된다"며 자신의 철군 결정을 정당화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석유를 지키는 것 외에 (병력 주둔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어떠한 병력도 매우 위험한 지역(시리아 북부)에 남기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유는 지키고 미군의 총알받이 역할을 한 쿠르드의 안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동맹을 배신했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우리가 중동에 남아서 쿠르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합의가 어디 있느냐. 미국은 400년간 쿠르드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던 약 1000명의 미군 중 700명은 이라크 서부로 철수시키고, 나머지는 시리아 남부 탐프 기지에 잔류시킬 방침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IS나 다른 무장 세력이 시리아 북부 유전을 장악하는 걸 막기 위해 시리아 북부 도시 두어 곳에 일부 병력을 계속 잔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이 물러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위협은 더 강해졌다. 휴전 종료를 하루 앞둔 이날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영 TRT방송 행사에서 에르도안은 "지난 17년간 테러 단체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가 테러 단체라고 주장하는 시리아 내 쿠르드 민병대가 터키가 제시한 철수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재차 공세에 나서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터키는 동서로 444㎞에 이르는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에서 쿠르드 민병대가 전면 철수하고, 이들이 소지한 중무기를 양도하고 요새 등 군사시설을 스스로 파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쿠르드 민병대 등은 조건부 휴전을 수용하는 의미로 지난 20일 시리아 북부 도시 라스 알아인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하지만 쿠르드 측은 터키가 주장하는 안전지대 전부가 아닌 120㎞ 구간만 안전지대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조건부 휴전 기간 중에도 시리아 북부에서 양측 간 소규모 교전이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휴전이 종료되고 터키군의 대규모 공세가 재개될 경우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인명 피해도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터키 공격 이후 휴전 합의 전날까지 9일 동안 시리아 북동부에서 민간인 218명이 죽고 650명 이상이 다쳤다고 쿠르드 측은 주장했다. 피란길에 오른 쿠르드족 민간인만 약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군이 빠진 자리엔 러시아가 빠르게 대체해 들어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휴전 종료 시한 직전인 22일 에르도안 대통령을 러시아 소치로 초청해 시리아 북부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 및 시리아 정부군과 터키군 간의 충돌을 피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군 기지가 있던 시리아 북부 요충지 락까주(州)의 탑까 군비행장에도 최근 러시아 공군 헬기들이 배치됐다고 이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이 보도했다. IS가 점령하고 있던 곳을 쿠르드족이 주축인 SDF가 탈환한 뒤 미군 기지가 들어와 있었으나, 미군이 떠난 뒤 러시아군이 들어온 것이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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