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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文, 공정 27번 언급…"보수·진보 실용적 조화 이뤄야 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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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대통령 시정연설 ◆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33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무려 27회나 언급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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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에서 진행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은 '공정'으로 시작해 '공정'으로 끝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조국 사태'의 여진이 여전한 가운데 열린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며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또한 이날 연설에서 공정의 바탕 위에 혁신, 포용, 평화가 존재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전후해 터져나온 제도적·합법적 불공정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불만과 거부감을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다. 다음달 9일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진행된 이번 연설을 통해 '공정'이라는 재료로 기초 골조공사를 다시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날 연설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는 총 27번 언급돼 지난해 10번 대비 2.7배 늘어났다. 예산안 설명이라는 특성상 '경제'(29번)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언급된 셈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미묘한 철학의 변화가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3대 경제정책 축(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이었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이날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한 번 언급됐지만 올해는 사라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혁신·포용 등에 나눠서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경제, 혁신성장은 꾸준히 거론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간 거센 반격에 직면했던 이 정책에 대해 조심스럽게 변화를 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혁신은 지난해 12회에서 올해 20회로 크게 늘어났다.

재계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변화 기류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내년에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 시행됨에 따라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 그래야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경제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친(親)기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문 대통령의 경제 관련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는 "이제 우리 정부의 남은 2년 반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며 "혁신적이고, 포용적이고, 공정하고, 평화적인 경제로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보수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생각이 실용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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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탈세, 병역, 직장 내 차별 등 국민의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불공정을 과감하게 개선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사회적 불공정을 만드는 1차적 요인인 교육과 취업 문제를 우선적으로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고교서열화 문제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대입제도 개선과 관련해 정시 전형 비중 상향 등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취업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채용비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강도 높은 조사와 엄정한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면서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무수한 논란 속에서 조국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인사권자로서 국민과 국회에 에둘러 유감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면서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느낀 공정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사회 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주의 확산 등 한국 경제 앞에 놓인 엄중한 상황을 지적하며 과감한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용범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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