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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복궁 근정전 ‘석견’,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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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석상과 똑같은 것을 오래전 창덕궁 안에서 본 적이 있다."

두 달 전, 경복궁 동십자각에 있었던 동물 조각상이 창덕궁 안에 버려져(?) 있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전해드렸습니다. 이렇게 원래 자리와 내력이 잊힌 채 사실상 버려진 석상이 궁궐 곳곳에 꽤 많이 있다는 사실도 당시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동십자각을 계기로 더 많은 석상을 재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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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서수가족상과 왼쪽 동물 가슴에 매달린 새끼를 확대한 모습. [사진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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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월대(목조 건물 아래 돌로 만든 구조물)에는 십이지신상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동물 석상이 있는데 그중에 암수 한 쌍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서수가족상'이 있습니다.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瑞獸)'는 해태처럼 전통문화 속 상상의 동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서수가족상과 똑같이 생긴 석상이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에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겁니다.

동십자각 서수상을 찾았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제보에 관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꽤 많은 직원이 동원돼 궁궐 이곳저곳을 확인한 결과, 찾아냈다는 답이 왔습니다. 그런데 위치가 창덕궁이 아니라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였습니다. 기사 첫머리에 있는 사진이 수장고에서 찾아낸 또 다른 서수가족상입니다.

박물관 수장고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언론사 기자는 물론이고 '국회의원이 와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서수상 덕분에 수장고에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근정전 석상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수 한 쌍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모습이 워낙 독특한 데다, 석상의 구조도 근정전 석상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석상 아래 길게 뻗어 나온 부분은 어딘가 다른 구조물에 끼워 넣었던 흔적입니다. 현재 근정전 석상에도 아랫부분이 길게 나와 월대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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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석상의 내력은 모른다"…문헌에서 확인되는 단서

서수가족상은 언제 어떻게 고궁박물관 수장고에 들어왔을까? 박물관의 답은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궁궐 곳곳에 흩어져있던 석상 등의 유물을 일괄적으로 박물관에 이관했다"면서 "서수가족상은 2005년 9월 창덕궁에서 이관된 기록만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창덕궁에서 봤다.'는 제보와도 일치하는 셈인데, 문제는 그 이전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정전에 있던 것이 맞는지도 알 수 없고, 근정전에 있었던 석상이 2005년에 경복궁도 아닌 창덕궁까지 가 있었던 이유는 또 뭔지 박물관도, 문화재청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수장고 석상이 근정전 것이 맞는지에 대한 단서는 옛 문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영묘조구궐진작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영조 연간인 1767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근정전의 빈터에서 왕족과 신하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 속 근정전 월대 모서리에 석상이 보입니다. 현재 서수가족상과 마찬가지로 월대 하단 전면부 양쪽 모서리에 두 마리씩 그려져 있습니다. 왕이나 왕실을 주제로 한 회화는 문서처럼 엄격한 기록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 근정전 빈터에 서수가족상이 있었다는 분명한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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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조구궐진작도(‘의령남씨가전화첩’ 수록)와 서수가족상을 확대한 모습.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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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문집에서 확인됩니다. 유득공 문집에 수록된 <춘성유기 春城遊記>라는 글은 봄날 도성을 유람한 기행문입니다. 여기에 "근정전 옛터에는 암수 한 쌍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돌로 된 개(석견, 石犬)이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유득공은 또 "새끼까지 대를 이어가며 남쪽의 왜구를 지키라는 뜻으로 무학대사가 만든 것"이라며 당시에 떠돌던 속설도 적어 놓았습니다. 당시에도 서수가족상은 꽤 유명세(?)를 탄 것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 근정전이 불에 타 사라진 뒤에도 서수가족상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또 다른 근거입니다.

"최소한 임진왜란 이전, 멀게는 태조 때 유물일 수도"

《홍순민의 한양읽기 : 궁궐》의 저자인 홍순민 명지대 교수는 취재진이 촬영한 수장고 석상과 문헌 자료를 검토한 뒤 "수장고 석상은 원래 근정전에 있던 것으로 고종 연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 이후 버려져 있던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수가족상을 새것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홍 교수는 "빼낸 석상을 어디 버릴 수는 없고 그리 중요하지 않게 보관했다가 창덕궁까지 흘러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습니다. 수장고 석상의 형태가 월대와 같은 구조물의 일부인데 근정전을 제외한 다른 궁궐 건물에서는 계단과 난간을 갖춘 월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 같은 판단의 주된 근거였습니다.

홍 교수는 "임진왜란 전의 궁궐 구조는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서수가족상을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도 근정전에 상당한 규모의 월대가 조성돼 있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득공이 전한 속설처럼 무학대사가 만든 것이라면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경복궁을 지을 때의 유물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문화재청은 근정전의 원래 석상일 가능성이 크다며 전문가 자문 등 추가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근정전 석상이 맞다면 짧게는 20년 가까이 멀게는 백여 년 동안 동십자각 서수상처럼 알아봐 주는 이 없이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셈입니다. 문화재청이나 박물관 탓만 하기엔 제도적인 공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십자각이나 근정전처럼 건물에 딸린 특정한 석상이 따로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없습니다. 더구나 서수가족상처럼 똑같은 석상이 2점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 건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당분간 수장고 석상은 박물관에 계속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경복궁 근정전에 가면 고종 때 만든 서수가족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계단 아래 남쪽 모서리에 가면 앙증맞은 새끼가 매달려 있는 한 쌍의 동물 조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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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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