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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잊혀가는 국군포로… 2011년 이후 귀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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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에 자력으로 탈북 힘들어 / 94년 이후 北서 80명 돌아와 / 2000년대 초·중반엔 귀환 활발 / 2010년 1명 끝으로 소식 ‘감감’ / “‘잊지 않고 있다’ 메시지 중요 / 국가 나서 송환 서둘러야” 지적

세계일보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된 장병들의 귀환이 2011년 이후 9년 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9년의 ‘귀환 부재’는 국군 포로의 고령화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우리 당국의 미흡한 조치가 9년의 공백 사태를 야기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이 21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994년 고 조창호 소위가 귀환한 이후 최근 4반세기 동안 우리 측으로 귀환한 국군 포로는 80명이다. 80명 중 생존자는 지난 9월 기준으로 24명이다. 국군포로 귀환이 그나마 활발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이었다. 귀환 국군포로 숫자는 1994∼1999년 8명에 불과했지만 2000년 한 해에 9명으로 늘었다. 이후 2001년과 2002년엔 각기 6명이었다. 2004년엔 14명에 달했다. 2005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명을 끝으로 국군포로가 귀환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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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측은 국군포로 귀환이 10년 가까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1953년 정전협정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60년 넘게 세월이 흘러 국군포로들의 연령이 대부분 고령일 것”이라며 “이런 이유 등으로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귀환은 이전보다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 군사 전문가도 국군포로 귀환 공백 사태와 관련해“이명박정부 후반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때 우리 정부의 태도보다는 포로들의 고령화 문제가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등에 따르면 1990∼2000년대에는 국군포로들이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귀환하기도 했다. 2010년 이후로는 국군포로들의 연령이 90세 안팎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돼 이런 흐름은 끊기게 됐다. 자력으로 제3국을 통해 귀환할 여력이 없는 셈이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국군포로 송환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한 이유다.

국방부는 ‘최근 5년간 국군포로 송환을 북한에 요청한 적이 있는가’라는 세계일보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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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간 북한에 붙잡혔다 귀환한 국군포로 13명이 2017년 3월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통일부를 방문해 홍용표 장관의 발언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군 소식통은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 정부가 포로 귀환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벌여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봉환하고,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천명의 참전용사들을 상대로 증언을 청취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정전협정 직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규모와 생사 여부, 북한군이나 건설대 편입 여부, 사망한 포로의 매장지 확인 등을 통해 국군포로 귀환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직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숫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51년 휴전협상 당시엔 한국군과 유엔군이 한국군 실종자 및 포로를 8만여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53년 포로교환 당시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300여명에 불과했다. 북한에서 송환하지 않은 포로들이 적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를 비롯한 국방 관련 연구기관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돌아오지 못한 포로들은 건설대에 편입돼 북한의 전후복구에 투입되거나 함경도 광산 등에서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월남가족 등과 함께 사회적으로 최하위 계층에 속해 각종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내 통제가 느슨해지면서 중국과 인접한 함경도 탄광에서 일하던 국군포로들을 중심으로 탈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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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 연합뉴스


김중로 의원은 “국군포로 귀환은 장병들에게 ‘국가는 끝까지 너희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며 “그들을 가족 품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정부는 고령으로 하루하루 생사를 넘나들고 계실 국군포로 귀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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