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영상] 25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아직도 기억해, 그리고 사랑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탁한 한강물 위에 간신히 떠있는 콘크리트 상판 위에 뒤집힌 채 처박힌 16번 시내버스는 종이조각처럼 구겨져 있었다. 주변에는 피해자들이 흘린 피가 흥건히 고여있었고 10여구의 시체는 버스 밖으로 튕겨져 나와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사망자들은 모두 좌석에 앉은 채 압사했다”며 “부상자들도 찌그러진 차체 내부 구조물에 끼여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승용차를 몰고 다리를 지나다 10여m 앞에서 시내버스 등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류모(당시 42세)씨는 “핸드폰으로 112와 119에 신고를 했으나 상황실 근무자들은 ‘어디입니까, 정말입니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성수대교 양쪽의 한강대로 부근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구조작업을 애타게 지켜보다가 사망자들의 시체가 나올 때마다 탄식했다. 시민들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느냐. 정부 관계자와 건설회사 관계자들을 모두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승용차와 함께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극적으로 살아난 안암국민학교 교사 김모(당시 38세)씨는 “꽝 소리와 함께 차가 좌우로 요동을 치다 갑자기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앞이 깜깜해 졌다” 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김씨가 탄 차량에는 3년째 함께 출근 하던 동료 3명이 더 있었지만 그 중 두 사람은 그 날이 마지막 출근길이 됐다.) 1994년 10월 22일자 한국일보 29면.

잔잔한 일상 가운데 툭 불거져,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그날의 참사 현장. 그 다리 위를 오늘도 수많은 차들이 무심한 듯 지나고 있었다. 25년이 흐른 2019년 10월 21일 오전, 삭아가는 기억을 붙들기라도 하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강 성수대교 북단 둔치에 모였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찾은 유가족들이다. 남은 가족들은 저마다의 94년 10월 21일, 비 내리던 오전 7시 44분의 순간을 박제한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았다. 위령비 한 켠에 ‘엄마는 여전히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해’라고 적힌 유가족의 노란 꽃무늬 플래카드가 가을 바람에 나풀거렸다. 김학윤 유족 대표는 추도사에서 “조금만 더 관심과 기본에 충실했다면 아직 꿈 많은 학생들과 그의 부모와 다른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가족들의 단 한가지 소망은, 다시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4분 발생했다. 5, 6번 교각 사이 상부 구조물인 트러스가 주저 앉은 것이다. 16번 서울 시내버스가 트러스 경계를 달리다 추락해 뒤집혔다. 승용차 4대와 경찰 승합차 1대도 그 때 추락했다. 차량 6대에 타고 있었던 시민 49명 가운데 32명이 명을 달리했다. 그 중 9명은 강 건너 편에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무학여중ㆍ여고 학생이었다. 부상자는 17명에 달했다.

사고 발생 1년 6개월여 전에 긴급 보수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서울시가 묵살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분노했다. 성수대교는 1979년 개통 이후 단 한 차례의 교량 유지ㆍ보수 작업도 없었다. 사고 직전에도 먼저 다리를 건넌 시민이 이상 징후를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한다. 성수대교 시공사였던 동아건설의 부실로 처음부터 통행 차량 하중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 후 성수대교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됐다. 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월 17일 경기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 사고까지.

이날 25주기 위령제는 유족 최진영씨 위령비 비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구천의 영령들이시여 부디 고이 잠드소서. 아직도 눈먼 자 여기 와 새 다짐 불지피라. 저 강물 무심치만 우리 가슴 아리우는 넋이여.”

김용식 PD yskit@hamkookilbo.com

노희진 인턴PD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