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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14년차 女디자이너, 37살에 늦깎이 경찰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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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희 순경 "아버지 쓰러지신 날, 손잡아 준 형사님"

"경찰이 따뜻한 사람이란 걸 처음 알게됐죠"

뉴스1

동천파출소 주윤희 순경이 21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 청사에서 열린 제74주년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한 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광주서부경찰서 제공) 2019.10.21 /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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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장 형사님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14년 차 의상 디자이너 주윤희씨는 37살의 나이로 지난 3월 당당히 대한민국 경찰이 됐다.

21일 오전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열린 제74주년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동천파출소 주윤희 순경(37·여)은 경찰이 된 뒤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장 형사님'을 꼽았다.

주 순경은 "만약 형사님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너무 떨릴 것 같습니다. 형사님 명함도 있고 직원 조회도 해볼 순 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계속 망설여집니다"고 말했다.

주 순경과 장 형사의 인연은 2년 전인,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9월 광주에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약물 중독 증상 때문이었다.

주씨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부모님을 떠나 타지생활을 해왔다.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해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지내왔다.

일 년에 한 두 번 광주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던 것이 전부였고 당연히 아버지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서울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내가 바쁜데 명절이고 연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죠. 집에도 거의 안 내려오고 일만 했는데 막상 아버지가 이 지경인데 몰랐다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주씨 아버지는 혹시나 타지 생활하는 자식들에게 피해가 될까 몸이 불편해도 가족들에게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매번 어딘가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을 가셨고 그때마다 진통제, 종합감기약 등으로 통증을 억누르며 지냈다.

아플 때마다 먹던 약은 도가 지나쳐버렸다. 결국 약물 중독까지 갔지만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약물 중독 증상으로 손발을 떨고 거동이 불편해 잘 걷지 못했다. 그러다 2년 전 이맘때쯤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날 주씨는 한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버님이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좀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장 형사님'이었다.

길에 쓰러진 주씨 아버지를 최초 발견하고 병원까지 함께 가준 사람이 '장 형사님'이었다.

주씨가 급하게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광주 한 대학병원을 찾았을 때도 너무 놀라 경황이 없던 주씨를 위로하고 안심시켜 준 사람이었다.

주씨는 "장 형사님을 통해 처음으로 '경찰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느끼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경찰은 죄를 지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너무 무섭고 힘들 때 따뜻하게 위로해주셔서 감사함을 평생 잊지 못하죠"라고 말했다.

주씨는 "아버지한테 너무 죄송하고 '아버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난 뭐 했나'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장 형사님이 '앞으로 잘하면 된다'며 손을 꼭 잡아주셨는데 그 손을 붙잡고 펑펑 울어버렸죠"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윤희씨는 그 날 이후 아버지 간호를 위해 6개월 동안 휴가를 내 광주에서 부모님과 지내게 됐다. 그러면서 차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엄마 나 경찰할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주씨는 '장 형사님과 같은 경찰이 되고 싶다.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1년 6개월여의 수험생활 끝에 당당히 경찰공무원에 합격했다.

주 순경은 "하루빨리 파출소 생활에 적응해 어딘가에서 또 다른 주 순경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계실 장형사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북부서에서 근무하신 장 형사님 정말 보고싶습니다. 만나 뵙게되면 형사님 덕분에 경찰이 됐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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