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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나랏빚 9년 뒤 1490조···“최근 재정지출, 위기 때나 봤던 이상징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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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나랏돈(재정) 관리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나랏빚이 앞으로 9년 새 750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2028년 국가 채무 규모가 올해의 2배를 넘는 15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이 탄탄해 확장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나랏빚 증가로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는 계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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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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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21일 열린 건전재정포럼에서 “지난해부터 내년도 예산안까지 재정지출 증가율이 명목 경제성장률(경상성장률)의 2배를 크게 초과하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등 3차례에 불과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한국의 총재정지출 증가율은 2015년~2017년에는 경상성장률(5.5%)보다 낮은 4%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경상성장률(3.1%)의 2.2배인 7.1%를 기록했다. 총 재정지출 증가율은 올해에도 경상성장률의 3.6배, 내년 예산안에서도 2.1배를 웃돌고 있다. 최근 나랏돈 지출 증가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과거 경제위기 때나 볼 수 있는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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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경상성장률 2배 초과한 재정지출 증가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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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럽연합(EU)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등 12개 재정지표를 분석해 만든 ‘재정위기 종합위험지수 측정 모형’을 한국에 적용하면 지수는 지난해 0.31에서 올해 0.38로 올라간다. 재정이 위험한 상태임을 알려주는 임계치(0.46)에 빠르게 근접해가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이처럼 나랏돈 씀씀이가 커지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국가 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올해 734조8000억원, 내년 811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에 1000조원(1074조3000억원)을 돌파한 뒤 2028년에는 1490조6000억원까지 늘어난다. 9년 뒤 국가 채무가 올해의 2배를 넘을 정도로 폭증한다는 얘기다. 총수입의 증가율(연평균 3.8%)이 사회보험(6.6%)·공적연금(8.4%) 등 복지 분야 의무지출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다.

한국의 국가 채무가 2000년 111조원으로 처음 100조원을 넘어선 뒤, 3~4년간의 기간을 두고 100조원씩 늘어나면서 2016년 600조원(626조9000억원)을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이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올해 38.0%에서 내년 40.5%로 늘어난 뒤, 2028년 56.7%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평균 증가율은 8.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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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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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설명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국가 재정건전성 우려에 대해 “OECD 선진국은 국가채무비율이 110%를 넘고 일본은 220%를 넘는다”며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절대 규모로 봤을 땐 안정적이고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현재 국가 정책이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연 3조원), 아동수당(연 3조원),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연 2조원), 문재인 케어(연 5~8조원), 공무원 17만4000명 확충에 인건비 연 3조원과 공무원연금 국고보전금 21조원(2018년~2088년) 등을 추가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통일 대비 등 재정이 늘어날 요인은 수두룩하다.

특히 인구 고령화에 따른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은 2017년 기준 GDP 대비 10.6%로 EU 27개국 평균(25.4%)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2060년에는 EU 평균(27%)보다 높은 28.6%에 달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미 2000∼2017년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가운데 4번째로 높다.

박형수 교수는 “과거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악화는 경기 침체로 인한 일시적인 세입 감소와 경기 부양을 위한 일시적인 세출 확대에 기인했기 때문에 경기만 회복되면 재정 악화 문제가 해소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정부의) 재정 운영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추진한 박근혜 정부 때처럼 재정 건전성 회복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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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60년 GDP 대비 고령화 복지지출 증가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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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빚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로 돌아간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격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의 국민총부담률은 조세부담률(GDP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 21.9%와 사회보험부담률(GDP에서 국민연금ㆍ건강보험 등 공적 사회보험이 차지하는 비율) 7.8%를 합친 29.7%다.

2050년이면 조세부담률 24.6%와 사회보험부담률 13.1%를 합한 37.7%로 증가한다. 이는 2017년 OECD 평균 국민부담률 34.2%를 뛰어넘는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돈을 걷으면 민간의 경제 주체들이 쓸 수 있는 돈은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김용하 교수는 “저성장ㆍ고령화 시대에 맞춰 기존 지출을 효율화해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국민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을 기금 제도로 전환해 적절한 비용 통제 방안을 시행하고, 국민연금 보험료율도 미래세대의 비용 부담을 가중하지 않도록 적정 수준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김도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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