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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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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주년 앞두고… '월간 샘터' 12월호로 사실상 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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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법정·최인호·이해인 등 '스타 필자'들로 사랑받은 교양지

年 3억원 적자 누적으로 무기휴간… 출판계 "남의 일 아니다" 충격

"샘터의 가치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분 있다면 넘길 뜻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잡지 월간 '샘터'가 올 12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休刊)에 들어간다. 내년 창간 50주년을 목전에 두고 사실상 '폐간'과 다름없는 결정이어서 국내 출판잡지계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20일 본지와 통화에서 "90년대 후반부터 매년 3억원씩 적자를 봐 왔다. 자칫하다간 직원들 퇴직금도 못 주겠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며 "50주년을 기념해 내년 1월호 표지까지 다 만들어 놓았는데 발간을 못 하게 돼 참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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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38년간 샘터 사옥으로 쓰였던 서울 동숭동 건물.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붉은색 벽돌 건물은 2017년 한 투자사에 매각됐다. /사진가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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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주년 앞두고 무기한 휴간

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했다. 김 발행인 부친인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이었던 1965년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준비를 맡았던 것이 동기가 돼 창간했다. 김 전 의장은 생전 본지 인터뷰에서 "선수들을 만나봤더니 신바람 나서 일해야 할 이들이 하나같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다. 이들에게 어떻게 용기와 보람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평범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잡지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창간 당시 가격은 100원.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것이 권당 3500원인 현재까지 가격 책정의 원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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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창간호


올 11월호가 통권 597호. 그간 명사(名士)부터 촌부(村婦)까지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샘물처럼 차고 넘쳤다. 글 쓰는 일이 업인 이들에겐 원고를 청탁하고, 이름은 알려졌는데 글을 안 쓰는 이들은 인터뷰하고, 글도 쓸 줄 모르고 이름도 없는 이들은 직접 찾아가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땀과 눈물이 밴 삶의 현장과 깨달음이 어우러진 이야기들이 감동에 목말라 있던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때 매달 독자 투고만 300~400여 통이 들어왔다.

당대의 글쟁이들이 필봉(筆鋒)을 휘두른 무대이기도 했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작가 정채봉, 장영희 교수 등 쟁쟁한 '스타 필자'들이 '샘터'의 상징이 됐다. 법정의 '산방한담'과 이해인의 '꽃삽', 최인호 연재소설 '가족'이 특히 사랑받았다. 장욱진, 천경자, 이종상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표지 그림과 삽화로도 유명하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도 '샘터' 기자 출신이다.

◇출판계 충격… "뜻 있는 분 지원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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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의 휴간 소식을 출판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역사가 깊고 많은 사람을 위로해온 '샘터'가 발간을 멈춘다니 너무나 안타깝다"면서 "모바일 시대에 대중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라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광영 한국잡지협회장은 "스마트폰 유행 등으로 종이 잡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서 광고 시장이 많이 어려워졌다. 오래된 잡지들이 무기한 휴간 내지는 폐간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간 '샘터'의 경우 1970년대 중반엔 광고가 없어도 50만 부까지 발행했는데 최근엔 월 2만 부를 채 팔지 못하고 있다.

월간 '샘터'는 휴간하지만 단행본은 계속해서 출간한다. 김성구 발행인은 "그간 잡지 적자를 단행본 수익으로 메워 왔다. 300만 부 팔린 'TV동화 행복한 세상' 순수익이 20억원이 넘은 덕에 6년 정도를 버틸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단행본 시장도 나빠지면서 매년 매출이 전년의 절반으로 줄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발행인은 "월간 '샘터'가 지향하는 가치를 누군가라도 이어서 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아무리 처지가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보다 더 처지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가치를 지속시키고 잘 끌어갈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도움을 받거나 '샘터'를 넘길 뜻이 있다"고 밝혔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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