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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달 착륙 넘어 거주하기 위해선 움직이기 편한 새 옷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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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추진 맞춰…NASA, 우주복 활동성 강화 나서

관절 움직여지는 제품 잇단 공개

민간 부문 참여 적극 독려하기도

경향신문

신형 우주복을 입고 월면에서 장비 설치를 하는 우주인 상상도. 무릎을 굽히는 등의 동작이 편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신형 우주복(원 안)은 어깨 움직임이 훨씬 편하게 설계가 변경됐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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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은 침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지구에 갇혀 있던 인류의 생활 영역이 우주로 확대됐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회색빛 돌과 흙이 펼쳐진 황무지에 착륙한 우주인들은 1972년까지 월면 여기저기에서 과학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성조기를 꽂고, 월석을 채취했다.

그런데 이들이 달에서 활동하는 데는 적지 않은 불편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검색하면 1972년 아폴로 17호 승무원으로 월면에 내린 해리슨 슈미트가 장비 설치 작업을 하다 쓰러진 뒤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한참을 버둥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달 표면의 저중력도 문제였지만 더 큰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둔한 우주복이 문제였다. 대기가 없어 극한의 더위와 추위가 공존하는 달에서 우주인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선 10겹이 넘는 각종 섬유층으로 겹겹이 싸인 우주복을 입는 게 불가피했다. 이는 두꺼운 이불을 몸 전체에 두르고 움직이는 것과 비슷했다.

이런 우주복의 문제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주과학계에선 섣불리 최신 기술을 도입해 실용화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압력과 온도 변화가 공존하는 우주선 발사는 워낙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 나온 기술보다는 오랫동안 써서 신뢰성이 높은 기술을 선호했다. 인간의 생명을 보장하는 우주복 제작에서 신뢰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지난 5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추진을 선언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의 쌍둥이 여동생으로, 1969년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낸 아폴로 계획의 후속 프로그램 격이다.

이번엔 아폴로 계획과 본질적으로 다른 게 있다. 아폴로 계획은 인간을 달에 보낸 뒤 단기간에 지구로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 달 체류 시간은 몇 시간에서 며칠을 넘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달에서 거주하는 게 목표다. 정착지를 만들어 과학 탐사를 하고 자원을 채굴하며, 중장기적으로 화성 등으로 향할 수 있는 우주선 터미널도 건설할 계획이다.

정착지를 만들려면 일을 해야 한다. 흙을 나르고 벽돌을 올리고, 기지 내부에 전자장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동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배를 만드는 조선 산업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을 해야 선박을 진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일반화돼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달 체류 계획은 불과 5년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등 각국의 계획대로라면 달 기지 건설은 2030년대에 상당한 성과를 만들어낼 텐데 이때까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세밀한 노동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향신문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15일(현지 시간) 공개한 새 우주복.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팔을 휘돌리는 동작도 가능하게 개선됐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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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사람이 편하게 입고 활동할 수 있는 새 우주복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NASA 홍보대사인 폴 윤 미국 엘카미노대 수학과 교수는 “새 우주복 개발의 핵심은 기능성 강화”라고 말했다. 달에서 망치질하고 드릴을 작동시키고, 무거운 물건을 허리를 숙여 들어올린 뒤 무릎을 굽혀 내려놓는 일이 가능하도록 개발이 진행 중이다.

편한 우주복에 대한 의식은 일정 수준의 과학적 고증이 필요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션>에 등장하는 우주인은 거위털 점퍼보다 얇은 우주복을 입고 화성에서 자신을 태우고 떠날 로켓에서 불필요한 부품을 손과 드릴로 떼어내는 작업을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복을 입은 두 인물이 얼음판에서 뒤엉켜 격투까지 벌인다. 상대를 떠미는 동작조차 쉽지 않은 현재의 우주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NASA는 지난 8월부터 새 우주복의 시험판 사진을 잇따라 선보이더니 지난주에는 언론을 대상으로 한 실물 공개 행사를 열었다. 이 우주복의 특징은 우선 관절 부위의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신경을 쓴 것이다. 어깨와 팔, 무릎 등에서 인간의 관절 가동 범위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게끔 했다. 아폴로 우주인들의 우주복은 팔을 위로 들어올리는 정도가 가능했지만 이번 우주복은 자유롭게 휘돌릴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과거 우주복 개선은 NASA가 혼자 해결할 문제였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우주 관련 매체 스페이스닷컴은 NASA가 새 우주복 개발에 민간 부문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1958년부터 머큐리와 제미니, 아폴로 계획을 차례로 추진하며 우주복의 운동성 강화에 노력해왔다. 처음엔 아예 관절을 움직이기가 어려워 조종석에 앉아 있는 형태로 우주복을 제작하기까지 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사정이 좀 나아진 뒤에도 여전히 다리와 무릎은 유연하게 구부러지지 않았다. 이 문제점은 1970년대 이후 예산 압박 등으로 인간의 우주 활동 범위가 지구 궤도에 묶이면서 개선될 기회를 놓쳤다. 그런 기회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찾아온 셈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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