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100년 성당서 50년간 종을 친 마지막 종지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전 대흥동성당 100주년 기념 전시장에서 만난 조정형씨

경향신문

마지막 종지기 조정형씨가 대전 대흥동성당 종지기로 있을 때 종을 치던 모습. 조정형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0년 된 성당에서 50년 동안 종을 쳤다. 대전 대흥동성당의 ‘마지막 종지기’ 조정형씨(73)의 이야기다. 조씨는 지난달 22일 종을 친 것을 끝으로 종탑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그의 종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대흥동성당 건너편 대전창작센터에 가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그의 종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31일까지 여기서 열리는 대흥동성동 건립 100주년 기념전시회 ‘100년의 시간’의 2층 전시실에는 조씨가 온몸을 던져 종을 치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자전거 타면서 여유롭게 지내요.”

50년 종지기를 끝낸 그는 요즘 자전거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전시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도 그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성당이나 주변에서는 그를 세례명인 ‘방지거(프란치스코) 할아버지’로 부른다.

하루 두 차례 정해진 시간 타종

성지순례로 다른 이가 종 치자

소리가 달라졌다 민원도 생겨

조씨 은퇴 후엔 전자식으로


그가 성당에서 종을 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10월.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성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하루에 3번 종을 쳤다. 오전 6시, 정오, 오후 7시 어김없이 종탑에 올라 종을 쳤다. 하지만 성당 주변의 도시화 속에 새벽종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면서 새벽 종은 치지 않게 됐다.

그가 매번 종을 치는 시간은 1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20분 전쯤부터 종 칠 준비를 했다. 120개 계단을 따라 종탑에 올라간 그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시계에 의존하다가 갑작스러운 고장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성당과 교회가 종을 아예 치지 않거나 녹음된 종소리를 틀어주는 시대에 그가 만들어낸 아날로그 종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종소리가 달라졌어요. 소리가 좀 이상해요.”

조씨가 10년 전쯤 열흘 넘게 이스라엘·이집트 등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동안 다른 사람이 종을 쳤더니 주변에서 나온 말들이다. 40년간 들어온 조씨의 종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종 치는 사람이 바뀐 사실을 알아채고 섭섭함을 표시해 왔다.

“이제 매인 시간에서 풀려나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 보내”


50년간 성당의 종소리를 책임지면서 그는 개인생활을 포기했다. 성지순례를 빼고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 기억이 없다. 성당 구내에 있는 사택에서 생활하는 그는 청소와 문단속 등의 일도 해왔다. 종지기에서 은퇴한 지금도 문단속 등의 일은 계속하고 있다.

“6층 높이의 종탑을 매일 올라다닌 덕분에 몸은 건강합니다. 이제 종을 치지는 않지만, 성당과 종을 지켜가고 싶은 마음은 예전과 똑같아요.”

1919년 설립된 천주교 대흥동성당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대흥동성당이 대전의 등대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종지기이자 등대지기였네요.”

‘100년의 시간’ 전시장에서 조씨의 전시코너를 살펴보던 한 관람객은 그를 등대지기로 불렀다.

조씨가 내려온 대흥동성당의 종지기 자리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이어받았다. 조씨가 은퇴한 이후 성당의 타종이 전자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사람들 중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식으로 바뀐 뒤 종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조씨에게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씩 한 번 웃었을 뿐이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