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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日 최대 야쿠자 ‘넘버2’ 출소…‘유혈 참극’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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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6시, 일본 도쿄 후추(府中) 교도소 앞.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검은색 고급 밴 한 대가 가는 빗줄기를 뚫고 빠져나갔습니다. 뒷좌석에는 형기를 마친 고령의 수형수가 타고 있었습니다. 건설업체로부터 현금 4억여 원을 갈취한 혐의(공갈)로 징역 6년을 산 인물입니다. 차량은 1시간여를 달려 도쿄 시나가와(品川) 역에 멈춰 섰습니다. 경찰이 뒤를 쫓았습니다. 공갈범은 이후 제3의 도시 나고야(名古屋)행 신칸센에 몸을 실었습니다. 도착지에선 이미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고, 일부 방송사는 그의 이동 과정을 실시간 생중계했습니다. '성대한 출소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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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의 제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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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완성된 '넘버 1+2' 조합

올해 73살의 다카야마 키요시(高山清司). 그는 일본 최대 규모의 지정 폭력단(야쿠자),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넘버 2'입니다. 나고야에 거점을 둔 조직 내 최대 파벌, '고도카이'(弘道会) 출신입니다. 야마구치구미 하부 단체 중 하나였던 '고도카이'는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77·가명 츠카사 시노부)를 제6대 두목으로 배출하면서 일약 '중핵(中核) 세력'이 됐습니다.

시노다는 2005년 7월, 일본 간사이(関西) 이외의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조직 출신으론 처음으로 야마구치구미 '오야붕'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몸을 아끼지 않는 무력 투쟁 끝에 '일극'에 올랐고, 가장 먼저 같은 '고도카이' 출신인 다카야마를 2인자로 발탁했습니다. 그러나 권좌에 오르자마자 권총 공동 소지 혐의 등으로 체포돼 복역(2005년~2011년)했고, 그를 대신해 조직을 단속한 인물이 바로, '2인자' 다카야마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번 다카야마의 출소로 15년 만에 '넘버 1+2'의 조합이 처음 완성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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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구미 대분열, 그 내막’이란 제목을 단 일본 잡지 ‘액세스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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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부재에 조직 3등분

야마구치구미는 1915년 일본 고베항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를 규합해 처음 결성됐습니다. 1950~60년대 전국적으로 세를 불리며 최대 폭력단으로 성장했죠. 하지만 90년대 '폭력단 대책법', '폭력단 배제 조례에 의한 단속법' 등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힘이 빠졌습니다. 이후 간사이를 중심으로 나고야 '고도카이' 출신 중심의 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고, 조직은 결국 분열의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다카야마가 수감된 이듬해인 2015년 8월, '고베(神戸) 야마구치구미'란 이름으로 조직원들이 떨어져 나왔습니다. 2년 뒤 4월에는 일부 세력이 '고베 야마구치구미'에서 또다시 이탈해 '닝교(任侠·남자답고 용감함) 야마구치파'를 결성했습니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회원과 준 구성원 등을 합친 조직원은 지난해 말 현재 ▲ 6대 야마구치구미 1만여 명 ▲ 고베 야마구치구미 5천여 명 ▲ 닝교 야마구치파 460여 명입니다. 분열은 곧 극심한 유혈 참극으로 이어졌습니다. NHK는 이들 3개 단체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지난 16일까지 129건(사망 9명)이라고 전했습니다. 8월에는 '고베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고도카이' 사무실 앞에서 권총을 난사했고, 반대로 지난 10일에는 '고베 야마구치구미' 폭력단원 2명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고도카이' 조직원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다카야마의 출소를 앞두고 벌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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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일본 고베에서 ‘고베 야마구치구미’ 폭력단원들을 상대로 벌어진 총격 현장 (출처:SUN-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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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공안위원장, "총, 칼 충돌 막겠다"

일본 경찰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막강한 영향력이 가진 다카야마의 출소로 조직 간 보복 충돌이 한층 격화할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야마구치구미에서 이탈한 간부 중에는 다카야마의 조직 운영 방침에 반발한 인물도 상당수였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다카야마가 조만간 야마구치구미에서 떨어져 나간 2개의 단체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고, 반면에 이탈 간부들은 다카야마가 시노다에 이어 제7대 야마구치구미 두목에 오르는 걸 저지하기 위해 제거를 시도할 거란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일본 공안위원장은 다카야마 출소 직후인 18일 기자회견에서 "칼이나 권총을 사용한 사건이 속출해 지역 사회에 큰 불안을 주고 있다"면서 "(세 조직의) 대립 구조를 막는 데 필요한 경계와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이미 '야마구치 구미'와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사무소 20여 곳에 대해 건물 사용을 제한하는 임시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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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출소한 야마구치구미 2인자 다카야마 키요시가 미소를 띠고 있다. (출처:마이니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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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출소에 日 사회 불안감 확산

야마구치구미가 분열하기 전, 다시 말해 다카야마가 구속되기 직전인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분석한 조직의 연 매출은 무려 800억 달러, 우리 돈 96조 원이었습니다. 마피아를 비롯한 '세계 5대 범죄조직' 중 세계 최대 규모였죠. 당시 한국의 대표기업 가운데 야마구치구미의 연 매출을 누를 수 있는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다카야마가 속한 '고도카이'는 "경찰과 만나지 않는다", "경찰이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게 한다" "경찰에게 정보를 주지 않는다" 등 철저한 '비타협 노선'(3불 원칙)을 표방해 왔습니다. 두목 쓰카사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출소 이후 다카야마의 활동 공간은 한층 커진 상황입니다. '고도카이 방식'을 고집해 경찰과의 마찰이 더 심해질 것인지, 아니면 대대적인 변신을 꾀할 것인지, 일본 사회가 불안한 눈으로 다카야마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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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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