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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7시간 고문당한 것 같다"···매년 수능이 겁나는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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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단체 “수능 장시간 감독은 인권침해, 인권위에 진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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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외고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초조한 얼굴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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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째 고교 수학교사로 근무하는 문화일(55)씨는 매년 대입 수능이 다가오면 겁이 난다. “온종일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힘든 감독관 업무 때문이다. 수능 당일 그는 아침 6시에 고사장이 있는 학교에 도착해 5교시 답안지와 시험지를 걷어 고사본부에 제출할 때까지 하루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에 시달린다.

총 5개 교시 중 2~3개 교시를 교대로 들어가는데, 고사장 감독만 최대 7시간에 이른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포하고 걷을 때를 제외하면 정감독관은 교실 앞, 부감독관은 뒤편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집중에 방해된다’는 수험생의 항의가 나올까 봐 발소리, 숨소리마저 조심한다.

문씨는 “임신, 출산, 딸이 고3일 때를 빼곤 20여년 넘게 감독관으로 일했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수능 감독을 하고 나면 녹초가 돼 다음 주말까지 아무 일도 못 한다”고 말했다.

수능 감독 업무에 대한 교사의 원성이 높아가는 가운데, 교원단체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19일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은 “교육부가 교사들이 요구하는 수능 감독 업무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다음 주 중 국가인권위에 교육부를 상대로 진정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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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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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의 정성식 회장은 “혹시 수험생들에게 지장을 줄까 봐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 앉을 자리조차 없이 장시간 서서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모든 부담을 주고 교육부와 대학은 뒷짐만 지고 있다”며 “교사들이 당하는 부당한 인권침해를 국가인권위에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실천교육교사모임, 한국교총, 전교조, 교사노조연맹,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좋은교사운동 등 6개 교원단체는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에 건의서를 전달했다. 수능 감독 중 발생하는 분쟁에 대한 법률‧재정적 지원, 장시간 서서 감독해야 하는 감독관을 위한 키 높이 의자의 비치, 교사 1인당 2개 교시 이내의 감독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 단체가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서명운동엔 교사 3만2295명이 참여했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작은 소리에도 항의받기 일쑤인 환경인 데다, 수험생의 부정행위를 발견해 조치한 경우 크고 작은 분쟁에 휘말리거나 소송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길게는 꼬박 7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 근무여건을 고려해 서 있을 필요가 없는 경우 앉은 상태로 감독할 수 있게 키 높이 의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교육부는 법률적인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교사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단체보험에 가입하고, 감독관 수당을 올해 13만원에서 내년 14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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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4일 2019학년도 수능을 하루 앞둔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고에서 교직원들이 고사장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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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자 제공엔 난색을 보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감독 교사들이 의자에 앉아 감독하면 학생이나 학부모가 ‘부실 감독’으로 항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능 1개 교시당 2~3명의 교사가 감독하는데, 의자를 비치하면 고사장 공간과 인력의 문제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감독관 의자를 제공하려면 교실 앞쪽과 뒤쪽에 각각 의자를 둬야 하는데, 현행 고사장의 좌석 배치로는 교실 뒤쪽엔 의자를 둘 공간이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험생에게 지장을 주지 않고 뒤쪽에 의자를 두려면 한 교실의 수험생을 현재(교실당 28명)보다 줄여야 한다”며 “이 경우 고사장과 감독 인원이 30% 이상 더 필요해 오히려 교사의 업무가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일반직 공무원 중 희망자를 고사장 업무에 배치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이들을 고사장 본부 운영, 복도 감독 등에 활용하고, 기존 인력은 고사장 감독에 투입해 교대 근무를 늘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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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입 수능을 이틀 앞둔 지난해 11월 13일 인천교육청에서 교육청관계자들이 수능 당일 각 고사장으로 배부할 수능문답지를 보관소로 옮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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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관계자는 “가급적 2개 교시 이내에서 교대 근무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미 중고교 교사 30% 이상이 수능 근무를 하는 상황이라 교사 수를 늘리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의자 배치가 무산됐다는 소식에 교사들은 반발했다. 중학교 체육 교사인 김민식(30)씨는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두 번 받은 적 있지만 매년 수능 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제자리에서 감독하는 건 똑같은데 ‘의자에 앉으면 해이해진다’‘민원이 늘어난 것’이란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와 교원단체들은 대학과 정부가 할 일을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성식 회장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입학사무는 대학의 업무인데도 대학과 교육부는 뒷짐만 지고 모든 부담을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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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국 광주 교육감이 지난해 11월 15일 광주시교육청에서 고사장으로 배송을 앞두고 차량에 실린 시험지 상자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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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교육부 관계자는 “논술, 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는 대학의 업무이지만 대입 진학을 위한 수능은 국가 사무로, 국가직 공무원인 교사가 맡는 게 관련 법령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설령 대학이 인력을 제공한다고 해도 대학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수능 고사장에서 감독과 업무를 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천인성 기자, 박지영 인턴기자(고려대 한국사)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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