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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원희복의 인물탐구]화성연쇄살인사건 재심 변호사 김칠준 “당시 경찰, 가혹·비과학 수사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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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칠준 변호사가 10월 1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심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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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발생한 경기 화성연쇄살인사건 주요 범인 이춘재가 범행사실을 줄줄이 자백하고 있다. 10번의 연쇄살인사건 중 3·4·5·7·9차 등 5개 사건에서 범인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범인은 8차 사건도 자신이 한 범죄라고 자백했다. 8차 사건은 윤모씨가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복역까지 마친 상태다. 그러나 윤씨는 ‘강압에 의한 자백’이었다며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 재심사건은 김칠준·박준영 변호사 등이 맡았다. 그 중 김칠준 변호사(61)는 2·7차, 4·5차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변론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그는 경찰의 비과학적이고 강압적 수사를 지적해 피의자의 결백함을 밝혀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경찰의 수사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변호사다. 지난 10월 10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인권문제를 들었다.

2·7차, 4·5차 사건 피의자 변론 경험

-윤씨가 재심청구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을 것인가.

“우리가 재심청구를 하면 법원이 재심사유가 되는지 여부를 따져 재심 개시결정을 한다. 이후 재심 본안재판을 한다.”

-재심사유는 판사가 직무상 범죄를 범했을 때, 증거가 위·변조됐을 때 등 법원은 재심사유를 워낙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이 정도면 윤씨의 재심사유로 충분한가.

“살인사건 증거로 진범이 ‘내가 했다’는 진술은 충분히 재심사유가 된다. 판결문을 보면 윤씨 진술이 대부분이고, ‘직접 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할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등의 표현이 나온다. 이는 고문으로 인한 자백 진술조서에 항상 나오는 어투다. 따라서 판결문에서 본인 진술 부분을 걷어내면 유일한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증거뿐인데 그것이 비과학적이었다.”

-진범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한 자백을 믿을 수 있나.

“자백도 자백이지만 현재 가장 정확한 과학수사는 DNA가 일치하는 것이다. 내가 맡았던 의뢰인은 법률적으로 30년 전에 누명을 벗었지만 내 마음 한편에 ‘혹시 진범을 변론한 것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있었다. 이제 그 찜찜함이 풀어졌다.”

-2·7차 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피의자를 무죄로 밝혀낸 경위를 설명해 달라.

“경찰서에 가서 범인을 접견했는데, 자백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더라. 외웠다는 의심이 들었다. 범인은 사건 일주일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 나는 강요에 의한 자백일 것으로 생각해 ‘아들이 살인자 아버지를 두었다는 고통에 살게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하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그는 주변 경찰을 물리쳐 달라고 하더니 ‘내가 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고 연쇄살인사건 사진첩을 반복해 보여주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기소하지 못했다.”

-4·5차 사건은 심령술사의 계시로 범인을 지목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라고 했다. 그런 증거로 기소가 가능한가.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 ‘꿈속에서 계시를 받았다’면서 ‘이 사람이다’라고 주장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 없는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수사했다. 당연히 증거 채택이 안 되고, 결국 ‘혐의없음’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이 4·5차 사건에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고문 후유증과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수사 대상자 2만1280명, 연행자 수만 3000명이 넘었으니 그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얼마나 많이 발생했을까. 김 변호사는 시국사건을 많이 맡은 민변 출신이지만 특이하게 살인사건을 30여차례 변호했다. 그 중 수원역전파 살인사건이라고 있었다. 조직폭력배 7명이 살인혐의로 기소된 사건 변론을 맡았는데 그는 피고인들이 거꾸로 매달리는 등 고문받은 사실을 법정에서 폭로했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수원지검 강력부가 그에게 ‘조폭의 강력사건을 공안사건 변론하듯이 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조폭은 인권도 없느냐’고 항변한 적이 있다고 한다.

특진·상금으로 인한 강압수사의 유혹

김 변호사는 1992년 김기웅 순경 살인사건을 예로 들었다. 현직 경찰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순경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1심에서 유죄, 고등법원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경찰이 설마 가혹행위로 자백을 했을까 생각했다”면서 “대법원에 상고된 상태에서 판결을 얼마 앞두고 진범이 잡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인권 수사’ 판례를 남긴 1981년 ‘김시훈 사건’을 예로 들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노동을 하던 김시운은 재판 내내 “나는 고문으로 거짓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고문의 증거가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고, 고등법원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를 불과 이틀 앞두고 진범이 잡혔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서 한 진술은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가 안 된다’는 형사사건의 금자탑 같은 판례가 나왔다”면서 “형사사건에서 인권 보호장치는 인권변호사의 치열한 헌신이나 판사의 ‘갱신의 노력’이 아니라 우연히 진범이 붙잡힌 결과”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형사법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판례라고 한다. 그는 요즘은 일반화됐지만 미란다 원칙 고지, 변호사 선임권 고지 등도 비슷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인권의 신장이 인권운동가·인권학자·인권변호사·인권을 신봉한 판사의 노력이 아닌 많은 오판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

강압수사가 이뤄지는 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범인을 검거함으로써 얻는 ‘승진’ 혹은 기타 이득 때문이다. 시국사건에서 정치적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찰이나 검찰 당사자들은 특진이나 상금과 같은 보상을 받았다. 과거 간첩을 조작했던 경찰·검사들이 청와대 고위직을 지내고 국회의원까지 된 사람이 숱하다. 결국 과거사위에서 진실이 밝혀져 피해자에게 수천억 원이 배상금으로 지출됐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이 낸 세금이다. 사건을 조작해 이득을 챙긴 사람이 지금 떵떵거리고 사는 것은 사회정의 관점에서도 맞지 않는다.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많이 드러났지만, 범죄를 조작해 승진이나 서훈을 받은 전직 경찰·검사는 서훈을 박탈하거나 연금을 삭감해야 하지 않나. 최소한 국가가 배상한 금액의 일부라도 구상권을 행사해 환수해야 무리한 수사가 없어지지 않을까.

“가장 먼저 인권수사와 과학수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에 관한 원칙 등이 좀 더 촘촘하고 명확하게 개선돼야 한다. 수사관은 본능적으로 범인을 잡으려는 욕망에 ‘네가 죽이지 않았느냐’고 자백을 강요한다.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고지하라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욕망을 인정하다 보면 ‘과잉수사’ ‘조작’은 영원히 극복하지 못한다.

“국민은 모순된 것을 요구한다. 연쇄살인사건이 나면 ‘왜 못잡느냐’며 무능한 경찰을 비난한다. 큰 사건인 경우 ‘그놈의 인권 때문에 수사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인권·증거·과학수사를 포기해선 안 된다. 언론도 인권 친화적 마인드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사후에 재심의 엄격함을 완화해야 한다.”

-그런 지적은 지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 양태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당연하다.”

-현재 경찰청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 수사에서 어떤 점을 보완했는가.

“경찰청 인권위의 기본 역할은 경찰의 각종 정책·제 규정에 대해 인권 평가를 하고 경찰청장에게 의견을 낸다. 우리가 개선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범인 체포시 수갑을 뒤로 채우지 않고 앞으로 채우게 했다. 또 경찰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할 때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도록 했다.”

김 변호사는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국가인권위의 축소·파행을 견디다 2009년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가 권고하면 대부분 수용하거나 수용하지 않으면 그 사유를 문서로 인권위와 청와대에 보고하도록 해 인권위에 상당한 역할이 부여됐다”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인권위 조사도 쉽지 않고, 개선권고를 해도 ‘수용불가’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현 문재인 정부의 인권친화적 노력을 평가했다. 그러나 국민정서라는 압도적 다수의 반인권의식, 예를 들면 성소수자의 문제나 장애·성별·종교·인종 등의 완전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권이 부담스러워 하고, 인권위도 주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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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준 변호사가 10월 10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심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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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김칠준 변호사는 1958년 전북 군산 출신이다. 군산중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를 거쳐 1976년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청계천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대학시절에는 학생운동을 할 형편이 되질 못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고시를 준비, 1987년 사법시험·행정고시·법원사무관 시험 모두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노동법학회장을 지냈고, 1992년 경기 수원에서 ‘다산법률합동사무소’를 열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 한편에 ‘노동센터’를 운영했다. 그는 “당시 우리는 ‘변호사도 노동·인권 현장으로 가라’는 분위기였다”면서 “이재명은 성남, 문병호는 부천, 전해철은 창원, 나는 수원으로 가 학생·시국·노동사건을 상담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1999년부터 7년간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본부장을 지내고 1998년 경기방송 시사프로그램 <시사21>과 99년 CBS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변호인 단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대한변협 인권위원, 인권재단 사람 이사장,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 경찰청 인권위원장, 민변 부회장을 지내는 등 인권문제에 대해 거의 독보적 ‘전문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적극·진보적 인권을 강조했다.

“나는 자유권적 인권만 아닌, 진보·생존권적 인권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몰락으로 대안적 이데올로기가 없어지자 사회주의적 이슈가 인권의 틀 안으로 들어왔다. 진보적 인권이란 인간인 이상 잘나든 못나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동등한 사회적 조건을 누리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정에서 피의자를 보호하는 방어논리만이 아니라 삶의 목표가 되기 부족함이 없는 담론이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같이 가야 할 구체적 기준이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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