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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악플' 100개 읽어보니…마음이 무너졌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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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무표정→화(火)→무기력'…그날 하루, 내 마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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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악플을 보는 남기자. 저러다 졸면 스마트폰과 얼굴이 만나게 된다. 그럼 잠이 확 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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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X같이 써놨네"


원색적인 비난에 낯이 확 달아올랐다. 짧은 문장이 뇌리에 확 박혔다. 몇 번이고 귓가에서 재생돼 맴맴 돌았다. 평소 같으면 휘릭 넘겼을 기사 댓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악성 댓글(이하 악플)'이었다. 그날은 달랐다.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11단락 남짓한 기사를, 그 말 한마디로 '쓰레기' 취급했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었다. 그래도 납득이 잘 안됐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곱씹을수록 불쾌해졌다.

누군지 궁금해도 알 길은 없었다. 작성자 이름엔 알파벳 네 글자, 그리고 '별표(*)' 4개만 있었다. 그는 철저히 숨어 있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답글로 응수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상대방을 모르고, 상대방은 나를 안다는 사실 때문에. 고작 할 수 있는 건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향해 있는, '비추천' 하나를 누르는 정도였다.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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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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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을 보고 있었다, 하루 내내.

애써 외면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안 본건 아닌데 스치듯 흘려보냈다. 악플 같다 싶으면 저절로 그렇게 됐다. 비유하자면 실눈을 뜨고 조심조심 본달까. 독자들이 궁금해 댓글을 보지만, 상처를 받고 싶진 않아서. 내게 '악플'은, '비판'과는 다른 거였다. 쓰디써도 피와 살이 되는 게 아니라, 근거 없이 헐뜯어 피만 흐르는.

여가수이자 여배우였던 그가 어느 날 떠났다(이젠 편히 보내주고 싶으니, 이름을 또 쓰진 않겠다). 그를 다룬 기사를, 그날 저녁 처음으로 썼다. 기사 제목엔 '당당한 여성'이란 수식어를 넣었다. 그렇게 불리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기사 몇 개를 쓰고 자정 무렵에 누웠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밤잠을 설쳤다. 눈 감으니 웃는 상(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 비웃는 댓글의 글자들이, 칼날처럼 형상화됐다. 생각이 많았단 뜻이다.

그 힘듦은 어떤 것이었을까.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따져보니, 내게도 꽤 오래 쌓인 '악플'이 많았다. 요즘 가장 많이 욕먹는 직업 아닌가. 차마 다 보지 못한, 송곳 같은 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악플'을 보기로 했다. 16일 하루로 정했다. 최소 100개 이상은 보고, 마음의 변화를 들여다보기로.



오전 8시 : 첫 악플의 추억 "형도야, 평생 수습이나 해"


기자 된 지 벌써 9년 차. 악플은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다.

8년 전에 본 악플이 생각났다. 수습 기자 때라 부서마다 1주씩 돌고 있었다. 문화부에 있을 때였다. '영구' 심형래 감독이 만든 '라스트 갓파더'란 영화가 있었는데, 선배가 그걸 보고 리뷰 기사를 쓰라 시켰다. 보고 느낀 대로 기사를 썼고, 그게 표출됐다. 기억하기론 첫 댓글이 달린 때였다. 열 몇 개 정도 달렸었다.

주로 "심 감독의 영화를 감히 평가하냐"는 거였다. 여러 악플이 있었는데, 그중에 '형도야, 너는 평생 수습이나 해라'란 댓글이 기억에 남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니, 그때 충격이 꽤 컸던 것 같다. 헛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창을 닫았다. '평생 수습', '평생 수습' 이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수습을 떼던 날에도 그 댓글 생각이 났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마음이 단단해졌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크게 두렵진 않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랬다. 악플을 봐도,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070 스팸 전화를 받고 기계음이 나오면, 그냥 끊으면 되는 것처럼. 그리 쉽게 생각했다.



오전 8시30분 : "개 같은 기자 X들, 퉤"



괜찮다고 센 척을 하면서, 무려 30분이나 머뭇거렸다. 마음속 무언가가 날 주저하게 했던 것 같다. 스마트폰을 괜스레 만지작만지작, 내 이름을 검색하고 날씨 기사를 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 기사는 최근에 쓴 '악플 관련 기획기사'였다. 몸풀기로 기자 여럿이 같이 쓴 기사를 선택했다. 욕을 혼자 먹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공감 비율 순으로 댓글을 정렬한 뒤, 맨 밑에 있는 것부터 봤다. 보통 그러면 악플을 볼 확률이 높다.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위에서부터 보다가, 안 좋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몸을 움츠리고 '뒤로 가기'를 누른다. 두려웠다.

그리고 악플이 보였다.

"개 같은 기자 X들, 퉤."

"깨끗한 척 기사 쓰는 거 역겹다."

"기자들이 살인마들."

처음 든 마음은 이랬다. '불쾌하다. 내가 왜 이런 얘길 들어야 하지?' 악플을 개선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기사였다. 나름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썼다. 근데 돌아온 얘기는 '살인마'라니.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 한 마디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나마 그건 나았다. 같이 쓴 기사라서.


오전 8시50분 : "꼭 머니투데이 수준의 기사!!!"


자주 보는 부류의 악플은 회사를 거론하는 것. 해석하기에 따라 칭찬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난 적극적으로 그리 생각한다. 이 기사를 대표와 편집국장도 볼지 모르니.

남기자의 체헐리즘 뒷이야기에서, 가까운 이들에게 '피드백'을 했던 얘길 썼었다. 장모님 반찬에 맛있다고 하고, 아내가 한 빨래가 참 깨끗하고 뽀송뽀송해 고맙다고.

그랬더니 이런 악플이 달려 있었다.

'꼭 머니투데이 수준의 기사!!!'

무려 느낌표가 3개나 붙어 있었다. 뭔가 울컥했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아무 설명도 없이, 회사 전체 기자들이 쓴 기사를 낮춰보는 게 아닌가. 늘, 그리고 모두가 잘 쓸 순 없지만 그 정도 낮잡아 얘길 들을 만큼 막 쓰진 않았다. 적어도 주위에서 보는 선배와 동료와 후배들은 그랬다.

바꿔서 좋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직 그 정도 마음의 여유는 있었다. '꼭 원빈 수준의 얼굴!!!', '꼭 제주도 수준의 감귤!!!', '꼭 흑돼지 수준의 삼겹살!!!'이라고 하면 뉘앙스는 묘하지만, 뭐 칭찬이 아닐까 싶어서.



오전 9시30분: "별 내용도 없는데 XX 길게 썼네"


아무도 안 하는 일,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했었다. 그리고 기사를 썼었다. 명동 한복판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닦고, 비 오는 날 광화문 사거리에 우산을 놨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시각 장애인용 신호등이 고장 난 걸 신고했었다.

기획과 취재, 기사 마감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별 내용도 없는데 XX 길게 썼네."

"이딴 거 타이핑 치면 자괴감 안 드나ㅋ 그래서 어쩌라고?"

"열심히 해라, 거지야ㅋ"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수기에서 찬물 한 컵을 마실 참이었다. 가는 길에, 앞머리를 천천히 위로 쓸어 올렸다. 물을 받고 멍하니 있다가, 그만 넘칠 뻔했다. 찬물을 천천히 마시고, 거울 앞에서 잠시 얼굴을 봤다. 표정이 멈춰 있었다.



오전 10시 : 화(火)가 올라왔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악플을 보기 시작했다.

폐지 줍는 체험을 했었다. 중식 주방장이던 최진철씨는 당뇨와 뇌경색으로 건강이 무너졌다. 그도 한때는 잘 나갔었다. 우연히 그리됐을 뿐이었다. 폐지 손수레를 최씨와 함께 끌며 그 뒷모습이 참 커 보였었다. 무거운 삶에 무너지지 않았음에, 두 아이의 자랑스런 아버지라는 것에.

그런데 거기엔 이런 댓글이 있었다. 기사가 나간 지 9개월 만에 처음 봤다.

"폐지나 줍고 사냐? 이 한심한 인생아. 불쌍하구나."

순간 뒷골이 확 당겼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아' 하고 한숨이 나왔다.

잘 다스려 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쓸 수 있나. 기사는 한 줄이라도 읽은 걸까. 최소한의 예의도 없나. 대관절 어떤 삶을 살면 이런 말이 나올까.'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 만나서 따지고 싶었다. '당신이 정말 인간이냐고.'

진심으로 화가 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릴 물었다. 차마 폐지 아저씨를 떠올릴 순 없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호흡이 빨라졌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오전 11시30분 : "남형도, 이 기레기 XX"


갈수록 가관이었다. 정확히 몰랐을 뿐이었다.

정치 관련 기사엔 악플이 특히 심했다. 지지하는 당 등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달려들어 마구 물어뜯었다. 어느 한쪽 편을 든 적이 없는데도. 이성이 마비됐나 싶을 정도로, 섬뜩할 정도였다.

특히 이름을 거론하며 막말을 해댔다. 기사에 이름이 있는 건, 그만큼 책임 있게 쓰겠단 의미다. 함부로 욕하라고 적은 게 아녔다.

그런데 악플이 이랬다.

"남형도 진짜 웃기고 있네."

"기레기 이름이 남형도구나? 남형도 기레기."

"형도야, 이딴 글도 기사라고 여론몰이 중이냐?"

"기레기 소설 잘 쓰네ㅋ 등단이나 해라."



정오 : '입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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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뻥튀기와 커피로 때우고, 식욕이 별로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오전만 지났는데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악플은 '궁금증'과 '괴로움' 사이 어디쯤 있었다. 괴로워 멈추기엔 궁금했고, 궁금해 더 보기엔 괴로웠다. 한 번 올라가니 멈추기 힘든 줄타기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이 뻑뻑하고 입이 말랐다. 그런데도 몸은 노트북 앞으로 자꾸 기울어졌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 허기가 밀려왔다. 근데 애써 뭘 먹고 싶진 않았다. 입맛이 별로 없었다. 몸이 아플 때도, 식욕은 괜찮았었는데.

현미 뻥튀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배는 억지로 채우고 정신을 깨울 참이었다.




오후 1시 : '여자들한테 표 얻고 싶냐? X역겹네'


남녀 성(性) 갈등에 대해선 안타까운 맘이 컸었다. 다른 것인데 틀린 거라고 공격했다. 그래서 서로를 좀 더 이해했으면 싶었다.

지난해 여름, 브래지어 체험도 그런 맘으로 했었다. 이틀 동안 브래지어를 입고 여성들의 불편을 체험했었다. 생각보다 더 갑갑하고 힘들었다. 더운 여름이라 더 그랬다. 집에 오자마자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두통약과 소화제까지 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 기사에 남아 있었던, 뒤늦게 본 악플은 이랬다.

"너 변태냐? 여자한테 표 얻고 싶냐?"

"X역겹네, 토 나온다 돼지야."

"남자 XX가 그걸 왜 쳐 입어. 찐따 인정하네."

"더러운 기자 XX야, X 같다."

뻥튀기 하나를 먹고, 배가 안 고픈데 또 집었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먹고 있단 걸 문득 깨달았다. '그만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이런 댓글들을 보다 나도 모르게 또 하나를 먹었다.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컵은 이미 바닥을 보였다. 이유도 잘 몰랐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사소한 광경이, 내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오후 2시30분: 낮잠과 악몽


창밖의 가을 하늘은 파랬다. 고요한 와중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다. 평화로운 오후인데, 신경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머리가 점점 조여오고, 피로할 대로 피로해졌다.

악플을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표정했다가, 화가 났다가,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대신 뭔가 무기력했다. 힘이 쭉 빠졌다.

체온이 내려간 건지, 가을이 물씬 다가온 건지, 한기가 느껴졌다. 겉옷 하나를 걸치고 수면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 한동안 악플을 더 봤다.

몇 번이고 눕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가, 결국 소파에 뻗어버렸다. 안경을 벗어 버리고, 푹신한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모든 게 깜깜해졌다. 계절을 착각한 가을 매미가 '맴맴'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마저도 시끄럽게 느껴졌다.

몸은 멈췄어도, 마음에 남은 시끄러운 소린 쉬이 멎지 않았다. 여태껏 봤던 악플의 잔상이었다. 몹시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았다.

얼마간 뒤척이다 낮잠을 잤다. 생생한 꿈을 꿨다. 집에 누군가 들어와 있는 꿈이었다. 그를 쫓아내려 힘을 잔뜩 주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잠에서 깼다. 악몽이었다.




오후 3시20분: 칭찬은 속삭임처럼, 비난은 천둥소리처럼


자는 새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친한 취재원이 보낸 거였다.

기고를 하나 쓴 적이 있는데, 그걸 잘 봤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고가 담긴 링크와 박수 치는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왔다. 그러면서 "고생한 보람이 있겠다", "멋지다"고 했다.

행복한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실제론 무표정했다. 별로 기운이 나질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정말 그랬다. 애를 써봐도.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칭찬은 속삭임처럼 듣고, 비난은 천둥소리처럼 듣는다'고. 좋은 말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안 좋은 말은 그렇지 않단 거였다.

마음 아픈 말은 오래도록 크게 남는다는 것. 그때 기분이 그랬다.



오후 4시30분 : '무기력'해졌다


촘촘하게 마음의 변화를 기록하려 했는데, 영 의욕이 안 났다.

굉장히 낯선 기분이었다. 낮잠을 잤는데도 무기력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달까. 악플을 너무 집중해서 본 탓인가 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눕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했다. 억지로 의자에 몸을 앉혔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금세 까먹곤 했다. '양치질을 하자' 생각하고 실행하는데 무려 10분이나 걸렸다. 바깥 풍경을 보는 게 편했다. 나도 모르게 초점이 자꾸 나갔다.

마음이 맘 같지 않아 두려움이 엄습했다. 잠깐이지만, 이 체험을 무리해서 괜히 구상했나 생각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이걸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과장이 아니다. 정말 그랬다.



저녁 7시: "너 같은 것 낳고" 더는 볼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노을이 예쁘게 들었다.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본 것 중 가장 참기 힘든 댓글을 봤다.

아주 드물게, 가족을 들먹이는 악플까지 있었다. 어떤 기사라 차마 말하고 싶지도 않다. 잘 못 쓴 기사도 아녔고, 왜 그런 게 달렸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유 같은 건 이미 찾지 않기로 했다.

하여튼, 그렇게 적혀 있었다. "네 XX가 너 같은 X 낳고 미역국 먹었냐? 기레기야."

그게 그날 본 마지막 악플이었다. 더는 볼 수 없었다.



저녁 8시: "그만해, 걱정되니까" 아내의 말


퇴근한 아내를 보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내는 "악플 보는 것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아, 할 만했다"고 티를 안 내려 했다.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하루 고생한 아내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누워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쉬었다.

아내가 말을 꺼냈다. "그만해, 심리적으로 이상해 보여. 평소랑 다른 것 같아.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악플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냐?"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고 했다.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솔직히 다 얘기했다. 그날 느꼈던 기분이 어땠는지. 자신만만했다가, 화가 잔뜩 났다가, 무기력하다가, 이젠 마음이 낯설어 두렵다고.

아내는 걱정했고, 왜 했냐고 나무랐고,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다 털어놓고 나니 차라리 속이 시원하고 개운했다. 묵직했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하루, 마음에 벌어진 일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마음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신체적인 폭력과 똑같단다. 칼로 찌른다거나, 주먹질을 하거나 그런 것.

차라리 맞는 게 낫단다. 언어로 된 폭력은, 기억에 남아 오래갈 수 있단다. 오프라인에선 수천명이 날 헐뜯으려 모이진 않는데, 온라인상에선 그게 가능하단다. 집단성이 강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악플을 쓰는 거라고.

그 고통이 엄청난 게 당연한 거라고 했다. 두려움이 커지고, 바깥에 나가기 싫어지고, 날 이상하게 보나 싶고, 대인관계를 기피하다 우울증까지 간다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포감이다.

악플을 올리는 사람 입장에선 한 번씩 툭툭 친다 생각해 죄책감을 못 느낄 거라고. 그러나 당하는 사람은 트라우마고, 엄청난 고통이라고.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얘기해주는데,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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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에 붙어 있는 나비. 이쪽에선 저쪽을 훤히 보고, 저쪽에선 이쪽을 못 본다. 악플을 보고 떠올린 생각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토요일 자정이 넘어서야 애써 여기까지 썼다.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한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반복했다.

기사를 쓰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악플이 남긴 상처인 듯싶다. 어떤 반응일지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게 상당히 불편해졌다. 키보드에 손가락이 묶인 듯.

시원스레 나아가지 않아 한숨만 푹푹 쉬다가, 가을밤 산책을 하며 열을 식혔다. 가로등이 있는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거기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쪽에선 보이지 않고, 저쪽에선 날 훤히 보겠지. 작은 몸짓, 미세한 표정까지도. 바깥은 짙은 어둠이니까.

그리고 다시 짐작해봤다. 얼마 전 불현듯 떠나간 그를.

밤공기가 차가워서인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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