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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이어온 일왕 즉위 의식, 이번엔 간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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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성왕족 계속 줄어 현재 2명뿐… 해외 왕족 공항 영접-배웅 안 하기로

동아일보

아키히토 전 일왕이 1990년 11월 12일 해외 약 160개국 대표와 일본 고위 인사들 앞에서 일왕 즉위를 선언하고 있다(위쪽 사진). 즉위식 후 아키히토 전 일왕 내외는 11만7000여 명의 축하객 속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일본 공동취재단


일본 왕실의 즉위 의식은 10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왕실 전문가들은 제대로 형태를 갖춘 즉위 의식은 헤이안(平安) 시대 초기인 서기 800년대부터 실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각종 문헌 기록에 따르면 당시 관료들이 정렬한 가운데 일왕이 ‘다카미쿠라(高御座)’란 단상에 올라 즉위를 선언했다. 해외에서 온 축하 사절도 참석했다. 지금도 큰 틀에서는 이런 형식이 유지되고 있다.

18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무인들이 정권을 잡았던 막부 시대(1185∼1868년)에는 일왕의 권위가 약해져 즉위식도 조용히 치러졌다. 1868년 메이지유신 후 일왕은 다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가 됐다. 메이지 정권은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일본 왕실도 서구 왕실처럼 화려한 즉위식을 열기를 원했다.

다카기 히로시(高木博志)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메이지 정권은 대영제국,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러시아 왕조 등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열강들의 왕위 계승 의식을 참고해 일왕 즉위식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국왕의 머리 위에 왕관을 얹어 왕위에 올랐음을 만방에 알린 서구의 대관식이 일왕 즉위식의 교과서였던 셈이다.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도 190여 개국에서 정상급 인사가 대거 참석한다.

1915년 다이쇼(大正) 일왕 즉위식부터 범죄자 사면이 이뤄졌다. 역시 러시아 차르가 대관식 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회를 베풀던 관례를 참고했다. 이번에도 무려 55만 명이 사면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왕의 지위는 크게 바뀌었다. 1946년 헌법을 통해 최고 권력자가 아닌 상징적 존재로만 자리매김했다. 패전 후 첫 즉위식은 1990년 나루히토 일왕의 부친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 때 열렸다. 160여 개국 대표가 참석했고 60개국 이상에서 정상급 인사가 일본을 찾았다. 26개국은 왕족을 보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왕실의 국제화에도 힘썼다. 그는 2012년 79세의 고령에 심장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2011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사망했을 때 1박 2일간 조문도 다녀왔다.

22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은 과거에 비해선 다소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니치신문은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해외 왕족의 공항 영접 및 배웅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공항 영접 및 배웅은 왕가의 남성 인사가 담당했다. 1990년 아키히토 전 일왕 즉위식 당시에는 성인 남성 왕족이 7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후미히토 왕세제, 후미히토의 아들인 히사히토 왕자 단둘뿐이다. 남성 왕족의 수가 줄어 간소화가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