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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브라질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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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아마존 리포트 (상)

광활한 목초지와 소떼, 벌판들

화재로 초원화된 아마존 목격

고속도로변에 불법 목재 공장

단속 없는 무법지대에서 횡행

벌목 뒤 값비싼 나무 팔고

남은 숲은 방화해 소·대두 키워

“목축 등 국제 무역시장 압박과

수혜국의 기회비용 부담 논의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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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아마존 개발 정책을 강화하고, 올해 사상 최악의 산불이 번지면서 아마존 열대우림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Sea Shepherd)에서 활동하는 김한민 작가가 아마존 현장을 취재했다. 포르투갈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환경과 관련한 글과 그림 작업을 해온 그는 삼림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월22일부터 10월1일까지 화재와 벌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브라질 북서부의 혼도니아주를 둘러봤다. 그의 아마존 방문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아마존은 멀다. 아무리 서둘러도 서울에서 꼬박 이틀 이상 걸린다. 심리적인 거리도 크다. 올해 아마존 화재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잠깐 반짝했다가 국내 이슈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나에겐 그곳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어릴 때부터 아마존은 내 상상 속의 성소였다. 나를 사로잡는 열대 동식물로 우글거리는 지구에 마지막 남은 야생, 꿈의 목적지였다. 고교 시절 아마존 산림 감시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벌목꾼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숲을 지키는 한 인간의 존재가 깊이 각인되었다. 그때 결심했다. 저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이며, 어른이 되면 저런 직업을 가지겠다고. 정확히 결심대로 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환경운동에 몸담게 되었고 아마존에 직접 가보는 행운까지 누렸다. 벌써 다섯번째 방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좋은 일로 가는 게 아니다.

초원화되어가는 열대우림

올해 두 개의 큰 화재가 국제적 화제가 됐다. 노트르담 성당과 아마존 숲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에 전세계가 허탈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런데 아마존의 경우 올해만 불이 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달라진 걸까? 일단 화재가 크게 늘었다. 올해 발생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나 늘어났다. 아마존에서 2700㎞ 떨어진 도시 상파울루까지 검은 연기가 몰려와 한낮이 일식같이 껌껌했다. 브라질인들도 놀란 전례없는 현상이었다. 올 1월 취임 전부터 아마존 개발을 공언하며 환경단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개발주의자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정책도 한몫했다. 그는 올 7월 아마존 산불 발생 횟수가 전년도 대비 278% 증가한 결과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립우주개발연구소(INPE) 소장을 해임시켰고, 아마존 관리 기관인 환경·재생가능 천연자원 연구소(IBAMA)와 국립원주민재단(FUNAI)의 예산을 대폭 삭감해버렸다.

가뜩이나 기후변화 위기와 탄소 배출이 국제적 이슈가 된 시국에, 탄소 저장에 크게 기여하는 아마존 보존에 관한 전지구적 차원의 우려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각국 정부끼리 긴밀한 국제 공조를 해도 속이 타는 판에, 정치인들은 소모적인 외교전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려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식민주의적 발상이라며 발끈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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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마존에 간다고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한 건 당연히 아니다. 너무 늦기 전에 가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멀리 사는 친구가 중병에 걸린 소식을 접할 때 무작정 곁에 가보려는 본능이랄까. 마침 삼림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브라질 아마존을 취재할 기회가 주어졌고, 드넓은 아마존에서 육로로 접근이 가능하면서도 화재와 벌목으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지역을 알아봤다. 브라질 북서부의 혼도니아(Rond?nia)주가 낙점되었다.

아마존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중 하나인 BR364를 수십시간 달렸다. 상파울루와 서부 아마존을 거쳐 페루 국경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내가 아는 아마존과 너무도 달랐다. 마치 녹지가 조금 많은 텍사스 같았다. 광활한 목초지와 그 안의 소 떼, 대두(콩) 재배가 가능하도록 석회 등을 이용해 토양의 산도를 교정 중인 벌판들, 광물 채취를 위해 파헤친 땅, 그리고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연기… 열대우림은 멀리 지평선에서 아른거렸다.

물론 우리가 아마존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습한 열대우림만 아마존은 아니다. 아마존은 전체 면적이 인도의 약 2배에 이를 정도로 광활하며, 다양한 식생으로 이뤄진 생태계이다.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혼도니아주는 원래 이런 준초원 지대가 아니었다. 열대우림이 99%, 세하두(Cerrado)라 불리는 초원지대가 1%였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삼림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아마존이 초원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내 눈에는 초원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10년 넘게 일했지만 경찰 단속 없어”

“브라질에 지옥이 있다면 그건 아마존일 겁니다.”

취재 기간 내내 동행을 해준 현지 전문가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지옥이라. 이방인에겐 이 과격한 표현이 와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골프장에 소를 풀어놓은 듯한 이 기이한 정경에 이국적 매력마저 느낄지 모른다. 또 상당수의 눈엔 아마존 지역의 경제 발전을 가져오는 희망찬 개발의 전초기지들이 보이리라. 그러나 아마존 고유의 생태계를 오랜 시간 지켜보며 연구하고, 그 보존 가치를 아는 이에겐 처참한 자연 파괴의 현장,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때로는 보여서 괴롭다. 난개발 때문에 괴롭고, 이러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생태계가 회복 불능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괴롭고, 그럼에도 최종 책임자인 브라질 대통령이 앞장서서 개발의 무분별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현실에 괴롭다.

갑자기 뒷좌석에 있던 현지 가이드가 차를 멈추라고 한다. 이 인근에 불법 목재 공장이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바로 근처에 버젓이? 불법 벌목이 횡행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두 눈으로 목격할 기회는 흔치 않기에, 우리 일행은 잠시 의논 끝에 잠입 취재를 하기로 했다. 근처까지 도착한 뒤 안전상 일행 중 둘은 차에 남고, 나와 다른 한명은 각각 목재 수입 사업을 시작하려는 외국인 사업가와 통역을 사칭하기로 하고 공장으로 향했다.

경계 어린 시선을 던지는 공장 근로자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건물로 진입한 우리는 공장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잠시 후 중년의 다부진 체격의 공장장이 나왔다. 경직되었던 그의 표정이 이십여분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풀어진다. 나의 동행은 환경운동보다는 마약 밀매업이 훨씬 어울리는 인물이었는데, 그를 앞세운 점이 주효했다. 실제로 그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며 다이아몬드 불법 거래 관련 잠입 업무를 수행한 경력이 있어 능숙히 제 역할을 소화해냈다.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일면 굴욕적인 얘기지만, 아직까지 브라질에 온 아시아인은 관광객이 아니면 돈 벌러 온 사람으로 인식되지, 환경보호 진영에 속한다고는 상상도 못해 의심을 사지 않는단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고 영어를 썼다.

우리는 이 부근에 몇백 헥타르의 부지를 매입해 벌채를 한 다음 한국과 중국으로 판로를 뚫어보려고 한다는 사업 계획을 얘기했다. 동업이 가능하겠다고 여겼는지, 공장장은 정보를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 쪽 땅이 헐값이고 나무를 베기 좋으며 운반도 편리한지, 새벽 몇시쯤 이동해서 이 공장으로 가져오면 되는지, 위조 문서는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알짜 정보가 술술 나왔다. 마지막 질문은 내가 했다. “혹시… 경찰 단속은 없나요?”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공장장의 입가에 처음으로 비웃음이 스쳤다. “십년 넘게 이쪽 일을 했지만 단 한번도 없었소.” 우리는 다시 연락을 취하기로 약속하고, 이런 경우를 위해 마련한 여벌의 전화번호를 남기고 차로 돌아왔다. 위험한 짓이었다. 이들은 사업을 방해하는 자를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 섬뜩한 것은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 그 자체였다.

문제는 화재 아닌 삼림 파괴

브라질 정부가 항상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까지만 해도 거의 원형을 간직하던 아마존은 70년대부터 삼림 파괴를 겪기 시작해 점점 강도가 심해지다가, 200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었지만, 2004~2012년 사이에 강화된 보호정책으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다 진보 정권이 부패 스캔들로 탄핵당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등장한 보수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가 집권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해 새로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사실상 삼림 파괴의 역사는 이미 반세기가 넘은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목축업으로, 벌채의 80~90%가 소를 키우거나 가축 사료용 대두를 재배할 땅 확보를 위해 이뤄진다. 이는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회고해보면 이미 20년 전, 내가 대학을 다닐 때부터도 축구장 크기의 아마존 밀림이 몇 분마다 사라지는 이유가 맥도널드 버거에 들어가는 패티 때문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이 모든 파괴의 대부분이 먼 나라의 누군가가 햄버거를 먹기 위해 자행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 평원에서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는 흰 소를 보면 참을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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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환경 연구소’(IPAM)의 크리스치나 아모링 연구원이 통상적인 삼림파괴 과정을 요약해줬다. 먼저 벌목이 이뤄진다. 값비싼 나무를 챙겨 팔고 나머지 숲은 방화를 해 초지로 만든다. 소를 키우거나 대두를 재배한다. 토양이 양분을 잃으면 새로운 숲을 벤다. 이것이 반복되고 확장된다. “핵심은 화재보다도 삼림 파괴입니다. 화재는 그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죠.”

삼림 파괴를 촉진하는 목축업, 목재업, 광업 등에 대한 제한 없이 아마존 보호는 불가능하다. 브라질은 세계적인 육류, 대두, 목재 수출국이다. 즉, 수입국 조치나 소비자 운동과 같이 국제 무역시장을 통한 압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동시에 당근을 마련해야 한다. 브라질이 아마존을 개발하지 않는 대가로 전세계에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s)를 제공한다면, 수혜국들은 어떻게 공동으로 그 기회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2007년, 에콰도르 정부가 유사한 개념의 제안(‘야수니-이테테 이니셔티브’: Yasuni-ITT Initiative)을 한 적이 있다. 에콰도르 국립공원 내의 유전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 기금 지원을 내걸었으나 목표액에 미달되어 불발되었다. 이 사례를 거울삼아 한층 보완된 정책과 관심이 필요하겠다.

김한민 작가



핵심 빗나간 KBS뉴스

아마존 화재가 이슈가 되면서 가짜 뉴스도 많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마존 현지 취재를 한 <한국방송> 기사(지난 9월2일치 ‘[특파원 리포트] 죽어가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누가 불지르나 봤더니’)도 문제의 핵심을 빗나갔다. 특파원이 화재의 주요 배후인 것처럼 비중 있게 다룬 무토지 운동 조직 및 비정부기구(NGO)의 방화설은 현지 팩트체크 플랫폼을 통해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을 뿐만 아니라 지엽적인 설이었다.

그런데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유포한 소문(“엔지오가 불을 냈다”)과 역시 이에 편승한 농민의 말을 마치 유효한 주장인 것처럼 시간을 할애해 보도하고, 반박 내용은 생략하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편집했다.

특히, 아마존 보호 시민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와 돈을 노리고 방화했다는 농민의 주장은 사실과 어긋나며 자칫 큰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발언인데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철저한 검증 과정 없는 ‘~카더라’ 식 기사로 시청자에게 혼란을 초래하면서, 정작 아마존 삼림 파괴의 근본 원인이자 우리와 관련된 축산업과 육류 수요 문제, 한국의 가축 사료용 대두(콩) 수입 문제 등 ‘불편한 사실’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존 화재가 안타까우면 육류 섭취를 줄이라’는 기사들이 <시엔엔> <가디언> <재팬 타임스> 등 세계 언론에 연일 보도된 것과 대조적이다.

김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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