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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동백꽃’ 휴머니즘 담은 ‘그릇이 대짜’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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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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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한국방송2)은 <백희가 돌아왔다> <쌈, 마이웨이>를 썼던 임상춘 작가의 신작으로, 코믹한 분위기에 젠더의식과 휴머니즘을 담아내는 솜씨가 여전하다. 인물들의 속마음이 담긴 내레이션을 활용하고, 충청도 말맛을 살린 대사가 일품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개성 있는 캐릭터를 살려내는 배우들이다. 공효진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야 워낙 검증된 것이지만,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강하늘의 연기는 매회 감탄을 자아낸다. 오정세, 손담비, 아역 김강훈의 연기도 놀랍다.

드라마는 미혼모 동백(공효진)과 순박한 경찰 용식(강하늘)의 로맨스에 연쇄살인사건 수사를 버무린다. 코미디와 로맨스와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희한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여기에 젠더적인 차별과 공포를 녹여내며, 사랑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한다.

6년 전 ‘옹산’의 게장 골목에 동백이 술집을 차린다. 씨족사회 같은 작은 동네에서 외지인 동백의 술집은 금세 남자들의 휴게소가 된다. 술과 안주를 팔 뿐 다른 서비스는 없지만, 동백을 향한 이웃의 시선은 곱지 않다. 7살에 엄마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동백은 이런 시선에 익숙하지만,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연쇄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것이다. 피해자들을 ‘직업여성’으로 싸잡는 기사와 댓글에 시달리고, 경찰 수사가 장사를 방해했다. 하지만 동백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가게를 지켰다. 겨우 자리를 잡았나 싶었는데, 연쇄살인범의 그림자가 다시 동백을 위협한다.

동백의 상황은 편견과 차별과 공포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지 잘 보여준다. 고아로 병균 취급을 당하고, 미혼모에 술을 판다고 ‘행실’을 의심받으며, 범죄 피해자이면서도 손가락질을 당한다. 동백은 낙인과 폭력의 피해자지만, 오히려 ‘내 가정을 깰 위험을 지닌’ 잠재적 가해자인 양 기피 대상이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자가 겪는 이중고이다.

보통 로맨틱 코미디는 여주인공의 수난을 전시한 뒤, ‘멋진 남자’와의 로맨스로 이를 봉합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의 일반 공식을 따르되, 절반만 따르고 절반은 새로운 길을 간다. 차별성은 여성 간의 연대와 동백의 각성을 강조하고, ‘멋진 남자’의 기준을 다르게 제시하는 데 있다.

동백에게는 6년간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준 덕순(고두심)이 있다. 남편 없이 장사하며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고충을 잘 아는 덕순은 상가번영회 회장으로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준다. 홍자영 변호사(염혜란)도 의외의 원군이 된다. 그는 용렬한 남편과 사는 잘난 여자로, “남편 기를 죽인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동백을 남편의 내연녀로 오인했던 홍자영은 남편의 성희롱과 ‘갑질’을 고소하겠다는 동백을 보고, 오히려 무료 법률자문을 해주겠다고 나선다. 뒤늦게 나타난 엄마(이정은)는 치매 노인을 가장해 동백의 곁을 지킨다. 드라마는 엄마에 대한 동백의 애증을 급속한 화해로 푸는 대신, 미스터리한 설정과 조금씩 변하는 관계로 서서히 풀어나간다.

동백의 가게 ‘알바’인 향미(손담비)는 묘한 존재다. 그는 소위 ‘꽃뱀’이라 불리는 ‘돈을 뜯는 여자’다. 동백에게 덧씌워진 ‘여혐’의 근거가 될 만한 ‘나쁜 여자’지만, 드라마가 향미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남성의 지질한 욕망이다. 허세와 열등감에 찌든 노 사장(오정세)이 동백에게 특별대우를 요구하다 거절당하고, 향미의 “존경한다” 한마디에 넘어가 돈을 뜯기는 꼴이라니! 향미는 스스로를 “착한 남자 눈에는 안 보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꽃뱀’이야말로 남성의 지질한 욕망을 되비추는 반사경인 셈이다.

용식의 사랑은 용감하지만, 가부장적이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동백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노 사장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모습에 반한다. 즉 동백을 ‘팔자 나쁜 여자’로 보기에 동정하는 게 아니라, ‘강하고 멋진 인간’으로 보기에 사랑한다. 그는 동백을 존대하며, 동백의 인격과 선택을 존중한다. 가령 동백이 아들의 친부인 종렬(김지석)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 용식은 여느 드라마 속 남자들처럼 동백의 손목을 끌고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손목을 팔랑거리며 동백에게 빨리 손잡아달라고 간청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종렬과 대조적이다. 종렬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일방적이다. 아들과 동백을 향한 제 기분에 빠져 자기 입장만 늘어놓는다. 그는 “아비로서 책임” 운운하며 질척대지만, 동백을 자신의 부속물로 여기는 시각은 여전하다. 과거에 그는 동백을 자기 뒷바라지하는 존재로 여기며 사랑했고, 지금도 저 때문에 신세 망친 불행한 여자로 동정할 뿐이다. 동백이 스스로 인생을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백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용식에 의해 자신이 강하고 ‘그릇이 대짜’임을 각성한 동백은 종렬의 재결합 제안을 뿌리친다.

아쉬운 점도 있다. 미혼모가 친부에게 양육비를 받는 것이 ‘치사한 일’인 양 그려지고, 동백과 제시카를 대비해 모성 수행을 착한 여자의 필수 미덕으로 등치시키는 구도는 한계적이다. 그러나 남성 주체의 지질한 욕망을 극한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가부장적이지 않은 귀여운 순정남을 ‘멋진 남자’의 모델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젠더적인 가치는 충분하다. 동백과 용식의 사랑이 ‘오래도록 뜨뜻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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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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