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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시리아 휴전'은 이름뿐?...터키군에 안전지대 관리 맡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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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7일(현지 시각)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한 대표단이 휴전을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미국 내에서는 이번 합의가 사실상 터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터키를 방문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후 양측이 5일 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시리아 북동부 ‘안전지대’에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의 철수를 돕는 120시간, 즉 5일 동안 터키가 군사공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YPG의 철수 완료 후 터키가 모든 군사 작전을 종료하면 미국의 추가 제재도 철회된다.

펜스 부통령은 또 이미 SDF와 접촉하고 있으며, 그들의 철수를 돕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라고 자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터키에서 대단한 뉴스가 있다. 미국에 대단한 날이다. 터키에 대단한 날이다. 쿠르드에 대단한 날이다. 전세계에 대단한 날"이라며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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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장에 도착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Sky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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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이번 합의가 터키가 원하는 요구를 모두 들어준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거주지에서 쫓겨나는 쿠르드족의 피해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앞서 터키군은 테러 통로를 없애고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지난 9일 쿠르드군의 거점지인 시리아 북동부를 침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북부 지역에 주둔하던 미군 철수를 결정한지 이틀 만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수니파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의 동맹이었던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안전지대는 시리아 북동부 국경선에 접한 너비 30㎞ 정도의 땅으로, YPG를 주축으로 구성된 ‘시리아민주군(SDF)’의 거점 지역이다. SDF를 테러 세력으로 간주하는 터키는 안전지대를 구축해 국경에서 SDF를 몰아내고, 이곳에 자국 내 시리아 난민 200만 명을 강제 이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과 터키는 지난 8월 안전지대 설치에 합의했다.

미국과 터키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 따르면 추후 안전지대 관리는 터키군이 맡게 된다. 결국 터키의 요구가 전면 수용된 셈이다. 한 터키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미국과 회담에서 정확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이번 합의는 터키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고, YPG가 없는 안전지대를 제공하는 등 터키가 원하는 것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쿠르드족은 이제 120시간 이내에 그들의 영토를 떠나야 한다"며 "이미 상당한 피해를 발생했다. 수백 명의 쿠르드족이 살해당하고 수천 명이 쫓겨났으며 1000여 명의 ISIS(이슬람국가의 옛 이름) 포로가 탈출했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트 롬니 상원의원은 이날 상원 본회의 연설에서 "오늘의 발표는 승리로 묘사되고 있지만,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며 쿠르드족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은 우리의 가장 신성한 의무 중 하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했다. 그는 "그것은 미국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에게 한 일은 미국 역사에 피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도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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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쿠르드족을 겨냥한 터키군의 공격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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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칭찬받을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의 목표에 ‘종전’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에르도안)는 여전히 쿠르드족을 제거하고 ‘안전지대’를 만들 계획이며, 쿠르드족에 최후통첩을 하고 있다. 그들(쿠르드족)은 자발적으로 떠나거나 남아서 죽을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날 민주당의 크리스 반 홀렌 의원 등과 주도한 터키 추가 제재 법안을 예정대로 발의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법안 발의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만큼, 나는 일관성을 갖고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진행 중인 과정을 계속하면 국가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며 "소중한 동맹을 버고 IS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초당적 법안을 환영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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